▶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도널드 노먼 지음, 이지현·이춘희 옮김/교보문고/295p/1만3천원)

모든 것은 발자국을 남긴다. 실생활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흔적이 남는다. 기술의 도움 없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아무리 간단한 행위라도 자취가 남는다. 복도를 걸으면 CCTV가 녹화한다.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무엇을 샀는지, 얼마나 썼는지, 어디에서 언제 구매했는지가 기록된다. 정보를 검색하면 당신이 요청한 기록 뿐만 아니라 바로 전에 한 활동, 이어서 한 질문까지 기록된다. 음성 메시지나 다른 메시지 전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메시지가 수취인에게 전달되기 전에 저장부터 된다. 전송되고 나면 송신자와 수신자가 완전히 삭제하려고 해도 흔적이 남는다. 우리가 남긴 이런 흔적들은 우리 자신의 행동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오늘날 이런 상호 연결로 생기는 네트워크(사람 대 사람, 장소, 시스템, 회사 등)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흔적들은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 수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본문157p)
 
이 책은 인지과학의 대부이자〈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도널드 노먼이 인간의 삶과 행동양식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디자인이 이런 복잡성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잘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문학동네/275p/1만2천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서울을 다녀간 적이 있었다. 늙고 키 작은 여인이 낡은 고무신을 끌고 무려 아홉 시간을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야 하는 여행이었다. 이홉 시간 동안의 긴 여정을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어머니가 표지판이나 로드 사인을 읽는 일.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버스에 승차하는 일. 낯선 소도시에 도착해서 또 어디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일. 대합실에 가서 시간을 기다려 어느 출구로 가야 지정된 기차를 탈 수 있는지 알아내는 일. 다행히 지정된 기차에 올랐다 하더라도 당신이 탄 기차가 서울 청량리역에 정확히 도착하는 시간 따위를 알아내는 일. 기차가 연착했을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 알아내는 일. 기차에서 내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 아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찾아가는 일… 그런 잡다하고 낭비적인 일정들이 어머니에겐 번거로움을 넘어서서 위험이었고 공포였을 것이다. 한국전쟁 때 전쟁의 포화를 피해 피난길을 나섰을 때도 태어난 마을에서 이십킬로미터 이상을 벗어난 적이 결코 없었던 어머니의 서울길은, 당신 몸뚱이 전체를 담보로 한 일생일대의 모험일 수도 있었다.(본문 12p)
 
작가 김주영이 등단 41년 만에 처음 부르는 사모곡. 등단 41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어머니에 대한 작품은 처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 이야기를 별다른 소설적 가공 없이 이 작품에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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