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랙(RACK)이라는 통갈비를 사용한 왕갈비와 갈빗살, 향신료 쯔란과 10여가지 이상 재료를 섞어 만든 양념(왼쪽 사진)을 묻혀 구워낸 양꼬치가 먹음직스럽다. 사진/김병찬 기자 kbc@gimhaenews.co.kr
세상에는 종교적 혹은 문화적인 이유로 식용을 금지하는 육류가 더러 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돼지고기를, 힌두교에서는 쇠고기를, 유럽인들은 개고기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딱히 금기시하는 육류가 없다. 그럼에도 양고기는 유독 인기가 없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육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랬던 한국인들이 양고기 맛을 알기 시작했다.

재중동포, 중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들을 위해 생겨난 양고기 전문점들이 이제는 한국인 고객들로 북적거린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가 하면 양고기 전문점 수십 곳이 모인 특화거리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덩달아 수입 물량도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4년 2천870t에 불과했던 국내 양고기 수입량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4천992t에 이르러 7년 새 73.9%나 늘었다. 일부 대형마트가 지난 2007년 양고기를 들여놓았다가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매년 판매량이
증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원래 음식이란 게 그렇다. 안 먹기 시작하면 죽어도 안 먹지만, 일단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이후부터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양고기 소비량과 양고기 전문점의 수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돼지·소·닭' 중심의 육식 소비에 '양'이 당당히 한 자리를 꿰어찰 날도 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날이 오기 전에 양고기 맛 좀 보기로 하자. 김해시 삼계동 다래정(多來情)에 가면 여느 전문점 못지 않은 다양한 양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왕갈비 구이.
우선 양고기에 대한 오해부터 풀고 시작하자. 양고기를 싫어하는 한결같은 이유는 냄새가 고약하고 고기가 질기다는 것이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소의 새끼를 송아지라 하고, 말의 새끼를 망아지라 하듯 양에도 이런 구분이 있다. 태어난 지 1년 미만의 양은 '램(Lamb)', 1년 이상 자란 양은 '머튼(Mutton)'이라고 한다. 램에서 머튼이 되면 앞니에 있던 유치(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난다. 영구치가 나기 시작하면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육질이 질겨지고, 지방에 독특한 노린내가 쌓이게 된다. 양고기라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국내 혹은 외국에서 처음 접했던 양고기는 '머튼'일 확률이 높다. 이 머튼은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도 심하고 육질도 질기다. 하지만 어린 램은 냄새도 거의 없고 육질 또한 부드럽다. 현재 국내의 양고기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양고기는 거의 대부분 램이다.
 
양고기 맛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의외의 사건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009년 MBC '무한도전'에서는 비빔밥 특집을 진행했다. 비빔밥을 들고 뉴욕에 진출해 한국의 맛을 알렸고 뉴욕타임스에 '오늘 점심 비빔밥 어때요?(How about BIBIMBAP for lunch today?)'란 광고까지 실었다. 이를 두고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언론인이자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는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는 칼럼을 통해 "비빔밥은 보기에는 좋지만 먹을 때는 깜짝 놀라게 된다. 한국인의 식습관 중에는 뭐든지 섞어 먹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광고의 사진을 보고 비빔밥을 먹으러 간 미국인이 '양두구육'에 놀라진 않을지 걱정된다"고 비꼬았다.
 
▲ 꼬치구이.
구로다의 칼럼에 대해 대다수 한국인과 언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헌데 이 와중에 이전까지는 거의 생소했던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고사성어에 관심이 쏠렸다. 좋은 물건을 내세워서 나쁜 물건을 팔거나, 겉은 그럴 듯한데 속은 형편없는 것을 뜻하는 양두구육을 직역하면 '양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가 된다. 공개적으로 기호를 드러내지 못하던 많은 개고기 애호가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양고기가 그렇게 맛있단 말이냐?'며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실제로 양고기의 육질은 개고기와 가장 비슷하다. 보들보들하면서 육즙이 풍부하다. 돼지고기나 쇠고기에 비해 칼로리가 낮고 콜레스테롤은 적은 대신 단백질과 칼슘 함량은 높다.
 
양고기 소비의 일등 공신은 양꼬치다. 중국어로 양러우촨(羊肉串)인 양꼬치는 중국 서북부 신장지역에 사는 위구르족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위구르족이 일자리를 찾아 중국 각지로 퍼져 살면서 양꼬치도 따라 퍼졌다. 지금은 중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중국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한국으로 전파된 경로 역시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 재중동포들이 모여 살던 허름한 동네에서 시작됐다. 노동의 힘겨움과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에 저렴한 양꼬치만한 것이 없었다. 재중동포는 물론이고 중국인 노동자와 유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양꼬치집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고객의 거의 대부분을 한국인이 차지할 정도로 주객이 전도됐다. 불과 10여 년 남짓한 세월 동안의 변화다. 양을 키우며 이동하던 유목민들로부터 시작된 음식이다보니 전파 속도 또한 그만큼 빠른가 보다.
 
▲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한 양념으로 양꼬치를 구워내고 있는 '김해 아줌마' 다래정 대표 이복금 씨.
삼계동 '다래정'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거친 양고기 전문점이다. 재중동포 3세로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출신인 이복금(43) 대표는 지난 1985년 한국으로 시집왔다. 부유하기로 소문난 회계사 집안의 금지옥엽같은 맏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가겠다고 하니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동네 주민들까지 나서 결혼을 말렸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 생활이 어언 17년. 이제 그녀는 어엿한 한국, 아니 김해사람이다. 인제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문화센터 강사, 김해중부경찰서 통역요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문화도시 김해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아줌마'인 셈이다. 그런 그가 운영하는 양고기 전문점이니 맛 또한 각별하다. 어느 전문점이든 양고기는 어차피 호주 아니면 뉴질랜드산이다. 자고로 고기 맛은 먹어 본 사람이 안다 했다. 같은 고기라면 일상적으로 먹어왔던 사람이 잘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소와 돼지의 경우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버리는 부위가 없지만, 양은 식용으로 쓸 수 있는 부위가 제한적이다. 등심, 안심, 갈빗살, 넓적다리살, 발골하고 남은 잡육 정도가 고작이다. 다래정의 경우 양꼬치는 넓적다리살을, 석쇠구이는 갈빗살을, 왕갈비는 랙(RACK)이라는 통갈비를 사용한다.
 
양고기 전문점의 승패는 우선 양꼬치에서 난다. 양고기를 처음 먹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양꼬치부터 시작한다. 비결은 양념에 있다. 고춧가루, 소금, 후추, 참깨를 기본으로 적게는 10여 가지에서 많게는 30여 가지의 재료를 사용한다. 구체적인 재료와 배합 비율은 양고기 전문점의 '1급 비밀'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마법의 가루'로 통하는 라면 수프를 넣는 집도 있다. 다래정의 양꼬치는 자극적이지 않고 고소하다. 그래 서 많이 먹게 된다. 일부의 경우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몇 개 먹다보면 텁텁한 느낌이 드는데, 다래정의 양꼬치는 몇 개를 먹어도 입안이 개운하다. 비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힌트 정도는 알려 주십사 여쭈었더니 들깨가루와 콩가루를 섞는다고 한다.
 
양꼬치 양념의 숨은 주역은 쯔란(孜然)이다. 쯔란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인 커민의 씨로 만든 향신료다. 어느 양꼬치집이건 양념에는 쯔란 가루가 반드시 들어간다. 양꼬치에서 느끼는 독특한 향은 쯔란 덕분이다. 이 매력적인 향신료에 빠져 양고기에 입문하는 사람도 있다. 양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양념에 섞인 쯔란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 따로 주문한다.
 
▲ 갈빗살 구이.
쇠고기 늑간살과 같은 부위인 갈빗살은 양념 없이 불판에 구워 먹는다. 이를 소금과 쯔란에 찍어 먹으면 양고기 본연의 맛과 육질을 유감 없이 느낄 수 있다.
 
양꼬치와 갈빗살에 익숙해 졌다면 양고기 궁극의 맛이라 할 수 있는 왕갈비에 도전해 보실 것을 권한다. 양의 가슴 부분 갈비를 랙(Rack)이라 하고, 랙에서 뼈를 손질한 부분을 프렌치랙(Frenched)이라 한다. 왕갈비구이는 바로 이 프렌치랙을 숯불에 굽는 것이다. 흔히 고급 레스토랑에서 양갈비스테이크에 사용되는 부위 역시 프렌치랙이다. 레스토랑에서야 포크와 나이프를 써서 점잖 떨며 '썰어야' 하지만 다래정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뼈의 끝부분을 들고 '뜯으면' 된다. 한 입 덥석 베어물면 입안 가득 육즙이 스며들고 부드러운 듯 쫄깃한 육질이 씹는 맛을 더한다. 프렌치랙은 그러니까 질 좋은 한우의 안심과 등심을 섞어 놓은 느낌이다. 육즙은 등심에 가깝고 살코기의 부드러움은 안심에 가깝다. 바로 이러한 매력 때문에 양고기를 쇠고기보다 한 수 위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 양구이와 안성맞춤 세트인 칭다오맥주. 세계 3대 맥주로 꼽힐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맛있는 고기는 그에 어울리는 술과 만날 때 진정한 매력을 발산한다. 양꼬치에는 마치 공식처럼 칭다오 맥주가 곁들여진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칭다오 맥주는 중국 내 브랜드 파워 1위 제품이자 세계 3대 맥주로 꼽힐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좀 더 강한 술을 원할 때는 수수로 만든 증류주인 고량주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다래정에서는 '고량구배'라는 한 컵 사이즈의 고량주를 2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고기는 거의 모든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과 더할 나위 없는 짝을 이룬다. 와인과 양갈비의 궁합이 궁금하신 분은 다래정에 가실 때 한병 쯤 챙겨가 보시기 바란다.
 
여느 양고기 전문점과 마찬가지로 다래정 역시 요즘은 고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그중에서도 외국에 오래 거주했거나 출장이 잦은 직장인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은 양고기에 익숙치 않은 김해 시민들을 위해 양꼬치, 갈빗살, 왕갈비를 고루 맛 볼 수 있는 모듬구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내고 있다. 또한 '훠궈'라는 중국식 양고기 샤브샤브와 한국인의 입맞에 맞게 개발한 양전골 등도 선택할 수 있다.
 
술은 한잔 해야겠고 술안주는 마땅찮을 때, 돼지고기는 너무 자주 먹었고 쇠고기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때, 양고기구이는 어떨까?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 그리고 쯔란의 알싸하고 매혹적인 향이 술을 사정없이 당긴다.

▶메뉴:양꼬치(1인분 9천원), 왕갈비(2대 1만8천원), 모듬구이(3만5천원)
▶위치:김해시 삼계동 1507-1
▶연락처:055-331-1184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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