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직접 헤드셋을 착용하고 '소리 조각'을 감상하는 모습. 눈을 감은 채 공간 속에서 손을 움직이면, 모양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전달된다.
기자가 직접 헤드셋을 착용하고 '소리 조각'을 감상하는 모습. 눈을 감은 채 공간 속에서 손을 움직이면, 모양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전달된다.

 

 송예슬 작가 ‘보이지 않는 조각’
 예술·기술 결합 뉴미디어 아트
 온기·공기·소리 조각 등 시리즈

 입장할 때 옷에 붙여주는 스티커
‘김해의 향’ 배어 있는 냄새 조각
 관람객 작품 빚어보고 전시도 해
 
 지역 시각장애인 10인 초청도
 오는 8월 29일까지 전시 이어져



많은 예술계가 '모두를 위한 예술'을 표방하지만, 진정한 '모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오늘의 안녕을 기약하기 어려운 팬데믹 상황 속에서 미술관이 관람객을 만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시시각각; 잊다있다'는 바로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 전시다.
 
'시시각각; 잊다있다'는 미술관이 최초로 선보이는 참여형 뉴미디어 아트 전시이자 교육 프로젝트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매체를 다루는 기법이다. 기존 미디어 아트처럼 쉽게 정의되진 않지만, 그래서 더 무궁무진한 세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송예슬 작가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다. 송 작가는 2018년 이후 미술관과 예술 시장을 메운 시각 중심 예술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기, 온기, 소리 등을 활용한 '비물질 조각'들을 만들어 왔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뉴미디어 아트는 바로 '보이지 않는 조각 시리즈'이다. 지역성을 반영,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 유물의 형상을 미학적으로 분석·재해석한 작품이다.
 
입장을 위한 스티커를 옷 어딘가에 붙이면 전시 관람이 시작된다. 전시장은 기존 미술관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은 '보이지 않는 조각' 시리즈 중 '소리 조각'으로 헤드셋과 둥근 박스처럼 생긴 공간뿐이다. 헤드셋을 착용한 채 공간 속에서 손을 움직이면 토기 유물의 형태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전달된다.
 

'온기 조각' 전시에 참여 중인 송예슬 작가. 열화상 카메라로 작품·관람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온기 조각' 전시에 참여 중인 송예슬 작가. 열화상 카메라로 작품·관람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온도차의 미묘한 그러데이션(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해 가는 농도의 단계)을 활용한 '온기 조각'과 공기의 진동과 세기로 그 모양을 가늠할 수 있는 '공기 조각'이 있다. 또한 작품 '보이지 않는 숲'에서는 어둡고 텅 빈 공간 속에서 오직 조명과 안개를 통해 숲을 체험할 수 있다.
 
다음은 '생각 조각'이다. 원형의 공간 아래 서면 머리 위 스피커에서 조각의 모양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고, 물처럼 느리게 밀려오는 음성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조각의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지막 '냄새 조각'은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상 속 송 작가는 잘 익은 두리안을 잘라 뉴욕 시내 한복판으로 나선다. 두리안은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가진 과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두리안을 든 송 작가를 눈에 띄게 피하고 그를 보며 연신 키득거린다. 그 거리에서 송 작가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공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송 작가는 영상을 통해 모든 관람객이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하나의 작품임을 설명한다.
 
비밀은 바로 처음 입장할 때 옷에 붙인 스티커다. 스티커에선 송 작가와 조향사가 협업해 만들어낸 '김해의 향'이 난다. 첫 입장부터 지금까지, 스티커를 붙인 채 향기를 내뿜은 관람객 모두가 '냄새 조각'이었던 것.
 
전시 관람을 마치면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 자유롭게 빚어볼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관람객들의 '보이지 않는 조각'이 전시장 한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웠다.
 
미술관과 송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 결과물이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공유하는 데에 큰 의의를 뒀다.
 

관람자들이 직접 빚어 만든 각양각색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김미동 기자
관람자들이 직접 빚어 만든 각양각색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김미동 기자

 

송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는 늘 현존하는 경계들이 있다. 작품을 통해 그 경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며 "내 작품은 차가운 기술을 통해 부드러운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전시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할 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지윤 대리는 "관람객이 참여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공공미술관으로서 시민과 미술관의 관계 형성에 대한 오랜 고민을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최근 경남시각장애인협회 김해지부에서 총 10명의 시각장애인을 전시장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송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조각'을 관람하던 시각장애인분들의 모습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전시 '시시각각; 잊다있다'는 오는 8월 29일까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큐빅하우스 갤러리4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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