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동유적 남단에서 최초로 가야시대 선박의 부재가 발견됐다. 발굴조사팀이 출토된 노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김해시

"'해상 왕국' 가야의 배가 실제로 출토됐다!"
 
가야 시대에 바다를 항해했던 배의 부재(부품)가 봉황동유적(국가사적 제2호) 남단 끝부분에서 최초로 출토됐다. 선체의 일부뿐만 아니라, 노와 닻으로 추정되는 돌도 각각 1점씩 출토됐다.
 
봉황동유적 남단 끝부분 건축지서 선체 일부와 노·닻 추정 돌 1점씩
배 길이 30m·폭 10m 이상 추정
바다 항해 실물 부재 출토 최초
봉황동 일대 항구유적 입증 탄력


이번 발굴조사는 연립주택 건립 예정지인 봉황동 119-1 일원에서 (재)동양문물연구원이 지난 2월 6일부터 현재까지 진행해왔다.
 
지난 5월 24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진영 2지구 택지개발 사업지구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현장에서 가야시대 배 모양 토기 1점을 발굴한 데 이어, 실제 배의 부재가 발견되자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야의 배는, 신석기시대 비봉리 유적(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유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존재하던 '사국 시대'의 선박유물로는, 1975년 경주 안압지 유적에서 발굴된 목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는 작은 목선이고, 실제 바다를 항해했던 선박의 부재가 실물로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출토된 선박의 부재는 길이 약 3m40㎝, 폭 약 60㎝ 크기이다. 발굴조사팀은 배의 한쪽 격벽(선체의 내부를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누는 칸막이벽)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또한 출토된 부재의 크기로 보아 배의 전체적인 규모는 대략 길이 30m, 폭 10m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출토된 선박 부재를 근거로 선박의 규모도 추정할 수 있다.
대성동고분박물관 운영자인 송원영 김해시 문화재과 계장은 "배의 전체가 출토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가야의 우수한 선박제조 기술을 엿볼 수 있다"며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배의 전모가 드러나고, 그 안에서 유물이 출토되면 항구의 규모까지 짐작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 계장은 "가야가 해상왕국이었음을 증명할 획기적인 자료가 발견된 것"이라며 "이번 조사가 가야사 연구에 큰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지난 2000년 봉황동유적 서편 일대에서 발굴된 가야시대 대규모 창고유적과 함께, 이 곳에 가야의 주요 항구유적이 있었음도 증명할 것으로 보인다. 송 계장은 "고려시대 이전의 항구유적으로는 국내에서는 장유 관동리에서 발굴된 선착장이 있다"며 "봉황동유적에서 항구유적이 증명되면, 두 곳의 중요한 항구유적이 모두 김해에서 발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시는 옛 봉황초등학교 운동장 등의 터에 선박부재와 항구 시설 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발굴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발굴된 선박부재 등은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후 정밀실측 등을 통해 선박 전체의 규모와 구조를 복원할 예정이며, 향후 이를 토대로 봉황동유적 남서쪽 일대를 가야시대 대규모 항구 유적으로 정비복원 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패총, 가야의 주거 형태인 고상건물지(바닥면이 지면보다 높게 지어진 집), 방파제 혹은 짐승 우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Y자형 목책시설, 현재도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토제방울(흙으로 만들어 구운 방울) 등이 발견됐다. 이들 유물은 봉황동유적의 분포 범위를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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