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립미술관이 지난 25일 새롭게 막을 올린 전시 ‘황혜홀혜’ 전시장 현장.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전통 민화와 현대미술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김미동 기자
경남도립미술관이 지난 25일 새롭게 막을 올린 전시 ‘황혜홀혜’ 전시장 현장.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전통 민화와 현대미술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김미동 기자

 

19세기 가장 자유로운 화풍 ‘민화’
이상향·희망·세속적 시선 등 표현

전통과 현대 각양각색으로 담아내
설치미술로 기복신앙 나타내기도
다양한 이미지 전복시켜 재미 더해


 

서양화가 양달석의 생애 재해석
좌절·슬픔·희망·의지·부성애 등
어두운 시대 예술가·가장 삶 투영

천진난만한 작품에 시대상황 대변
사회적 저항 의식 그림에서 드러나



예술이 전통과 현대를 잇는 방식은 무엇인가? 예술의 존재 가치는 어떤 순간들에서 빛을 발하는가? 시대와 사회권력 아래 예술가의 삶이란 얼마나 안타깝고 찬란한가?
 
경남도립미술관(이하 미술관)은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시로서 대신한다. 미술관은 지난 25일 하반기 전시 '황혜홀혜', '여산 양달석'의 막을 올렸다. 두 전시는 각각 '민화'와 '양달석 작가'를 주제로 구성됐다. 누군가에겐 예스럽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주제일지 모르나, 들여다보면 그 이상의 넓이와 깊이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두 전시를 살펴봤다.
 
 
■민화와 현대미술의 연결, '황혜홀혜' = 전통과 현대의 공명,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 미술관 1~2층에서 진행 중인 전시 '황혜홀혜' 속에서 관람객은 이와 같은 키워드를 꺼내볼 수 있다. '황혜홀혜'란 노자 도덕경 21장에 나오는 구절로, '황(恍)하고 홀(惚)한 가운데 형상이 있다'는 뜻이다. 미술관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과 민화를 각양각색으로 배치·혼용해 전통과 현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150여 년 전 가장 자유로운 화풍이었으나 미술사에서 소외돼온 '민화' 속 이상향, 기복신앙, 희망, 아울러 세속적 시선이 지금 시대에선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총 4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두 개의 태양'은 김지평 작가의 작품 '묘-향'에서 시작된다. 김 작가는 전통의 차용을 넘어 전통 속 현대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산수화 '묘-향'은 가족의 고향인 북한 묘향산을 그려낸 것으로, 작가가 고지도와 구글어스 등을 수집해 완성한 작품이다. 김 작가는 이를 통해 갈 수 없는 '이상향'을 시각화했다.
 

양아치 작가의 작품 ‘신용(Credit)’.
양아치 작가의 작품 ‘신용(Credit)’.

 

전혜림 작가의 ‘이어진 산수#2(캡쳐, 패치, 픽쳐)’.
전혜림 작가의 ‘이어진 산수#2(캡쳐, 패치, 픽쳐)’.

이어 펼쳐지는 전혜림 작가와 양아치 작가의 작품들은 현대의 이미지, 뉴미디어 등이 어떻게 전통 민화와 이어지는 지에 대한 질문을 야기한다. 특히 양아치 작가의 '신용'은 전 세계 동전과 돌을 활용해 기복신앙과 같은 민화적 요소를 설치미술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오늘날 예술가들이 전통을 말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류성실, 최하늘, 원성원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준비됐다. 이들의 작품세계 속에선 이미지가 전복돼 뒤섞이거나 민화 속 이상향이 '키치(속악한 것, 가짜 또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사이비 등을 뜻하는 미술 용어)'하게 드러난다. 계획된 것과 계획되지 않은 결과물이 서로 다르지 않고 오히려 계획되지 않은 것이 더 인간적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이들 속 곳곳에 19세기 작가미상의 민화 작품들이 함께 병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합은 예스럽게만 느껴지던 '민화'에 대한 감상을 조각내 재해석하도록 한다.
 
이어지는 '산을 나는 바다'에선 우리 조상들이 나라가 어려울수록 오히려 더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어갔음을 전통과 현대의 시선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선 뚜렷하고 화려한 색감, 부드럽거나 거친 그림체의 대조 등을 통해 민화언어가 150여 년을 먼저 온 이 땅의 현대미술임을 역설한다.
 
특히 이승희 작가의 '붉은 대나무밭'은 대나무의 묘한 색감을 도자기로 표현해냈으며, 이와 함께 전시된 산신도가 붉은 대나무와 섞여들며 전통과 현대가 이어져 있음을 넌지시 전달한다.
 
'수수복복'은 전정우·이진경 작가가 작품으로서 이야기하는 '수(壽)'와 '복(福)'을, '문자와 책의 향과 기'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문자도와 책가도를 표현했다. 특히 '수수복복' 속 전정우 작가는 두 단어를 100가지 형태의 문자로 제작했으며, 이진경 작가는 제주의 꽃, 방어, 고등어, 미역 등을 활용해 '수(壽)'라는 글자로 재탄생시킨 데 의의가 있다.
 
 

전시 ‘여산 양달석’ 속 양달석 작가의 작품 ‘잠시’.
전시 ‘여산 양달석’ 속 양달석 작가의 작품 ‘잠시’.

■시대 소음 아래 예술가의 삶, '여산 양달석' = 예술가의 화풍은 어떻게 건축될까? 또 한 예술가를 오직 단면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서양화가 '여산 양달석'은 소와 목동을 즐겨 그리며 평화롭고 동심이 깃든 향토적 그림을 그려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진정으로 평화와 동심뿐일까?
 
경남근현대작가조명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여산 양달석'은 양달석 작가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해석하는 전시다. 미술관은 여산의 생전 회고록에서 좌절, 슬픔, 희망, 예술가로서의 의지와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발췌해 전시를 구성했다.
 
양달석 작가의 호 '여산'은 새벽녘 희뿌옇고 어스름한 산이라는 뜻으로, 어둡기만 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도 그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그려왔음을 역설한다. 여산은 향토적 소재에 서양의 색감으로 동화적 감성을 이끌어내 미술가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실제 '전업작가'이자 일곱 식구를 책임져야했던 가장으로서의 여산은 늘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점에 근거해 미술관은 시대 권력 속 '예술가로서의 양달석'과 '아버지 양달석'을 테마로 전시를 이어간다.
 

양달석 작가의 1950년 이전 초기 작품 ‘목동’.
양달석 작가의 1950년 이전 초기 작품 ‘목동’.

 

전시는 여산의 대표작 '소와 목동'을 포함해 익히 알려진 그의 작품들로 시작된다. 그러나 전시는 천진난만한 그의 작품 속에 남북 분단의 아픔과 여산의 유년시절이 담겨 있음을 주목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초기 화풍은 각진 얼굴형, 안개가 낀 듯 탁한 색감으로 어려운 시대상황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 시절 어렵게 살아온 민중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의 화풍이 점차 변하게 된 계기 역시 전시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없는 살림과 부주의로 인해 두 아들을 잃은 양달석은 회고록을 통해 "나는 결국 그림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 둘을 희생시킨 셈이 되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미진했던 작품 판매와 관객들의 냉소적 반응, 시대의 소음들, 가장이자 전업작가로서의 삶은 그의 화풍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까지나 예술가였으며, 화풍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사회적 저항의식과 희망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러한 의식은 전시 속 여산의 작품 '잠시'와 '해방이여'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잠시'는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강인한 농민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것으로, 밝은 색감과 굵은 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시 '여산 양달석'은 작고 전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 양달석, 자식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 양달석에 대해 유족 인터뷰 영상과 작가의 회고록, 신문기사,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두 전시는 오는 10월 1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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