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의도서관 구석구석에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설계한 재미있는 공간이 가득하다.
온가족이 각자 좋아하는 책 들고 좋아하는 장소에서 책 읽다가
카페에 모여 도시락 함께 먹은 뒤 다시 책 읽으러 자유롭게 흩어져
억지로 책 읽기 강요하지 않아도 어느새 책 속에 빠져든 아이 보며
부모들도 사서들도 "기적 같아"

"두 아이에게 뭘 해줘야 하나, 하는 고민을 '기적의도서관'이 덜어주었습니다. 매주 토·일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으며 가족의 사랑과 더불어 지혜를 익혀가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공간입니다." 장유면에서 10여 년 째 살고 있는 40대 가장이 '기적의 도서관'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장유면 율하에서 전국 11번째로 문을 연 '김해기적의도서관'이 지난 3일자로 개관 200일을 기록했다. 이 도서관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 봤다.
 
'책 읽는 공간, 책이 중심이 되는 행사로 도서관을 꾸려가겠다', '시험공부 하는 독서실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백화점식 문화강좌를 하지 않겠다'…. 개관 초, '기적의도서관'이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한 약속들이다.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는 듯하다. 김은엽 사서는 "처음엔 참고서를 들고 와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다"면서 "도서관은 학과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곳이란 사실을 학생들이 깨우쳐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온 가족이 각자 좋아하는 책을 빼들고, 좋아하는 장소로 흩어져 책을 읽다가, 점심시간에 카페에 모여 도시락을 먹은 뒤 다시 책을 읽으러 가는 모습도 발견되고 있다.
 

▲ "나, 저 책 볼래!" "형아, 힘 내!" 기적의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책을 즐기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기적의도서관을 설계한 고 정기용 건축가는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세계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자라면서 '국민'이 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차 몰개성한 '사회인'이 되어 나온다. 나는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책 속에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때 '세계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주고 되살려 주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임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전문도서관이다.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뽑아 들고 도서관 곳곳에 조성된 공간을 찾아가 드러눕거나, 앉거나, 자신이 원하는 자세로 책을 읽는 어린이들. 행복하다. 처음에는 '똑바로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지 않는다'며 놀라는 어른들도 있었고, 아이들의 소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항의를 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왜 다른 도서관처럼 학습실이나 자습실이 없느냐'며 항의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모두 기적의도서관을 이해했고, 적응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한 주부는 "우리 아이는 처음엔 도서관에 놀러왔다. 여기 저기 돌아보며 놀더니, 도서관 공간이 익숙해진 다음에는 어느 순간 책을 뽑아 읽기 시작하더라. 아이에게 책을 억지로 읽히려 하지 말고, 책이 많은 공간에 방치해두라는 말을 전문가한테서 들은 적이 있는데, 기적의도서관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고 전했다.
 
5년 정도 외국에 살다 최근 귀국한 다른 주부는 "외국에서 돌아온 뒤 가장 크게 놀란 게 '기적의도서관'의 존재"라고 털어놓았다.
 
어린이전문도서관이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모임도 구성돼 있다. 매주 열리는 '동화 읽는 엄마 모임'과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좋은 아빠 모임'은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했던 부모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지난 6월에는 성인 이용자 30명을 대상으로 경주 양동마을에서 '전통 건축 속의 삶과 사상'이라는 주제의 현장답사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모두 제대로 된 건축인문학을 접했다며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도서관 관계자들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기혜 계장은 "기적의도서관에서 매일 매일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공무원 생활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은엽 사서 역시 "사서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매 순간 기적의도서관이 생산하는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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