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경영 측면에서 보면 감기환자는 종합병원에서는 계륵(鷄肋)이다. 환자 수는 많지만 큰 규모의 병원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소위 객단가(客單價)가 낮다. 민폐도 끼친다. 병원의 중환자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항암치료 환자한테 감기는 역병만큼 무섭다. 그렇다고 대충 진료할 수도 없다. 감기 증상이 중병의 초기 증상일 때도 있는데다 또 감기환자들이 병원 친절에 대해 입소문을 낸다.
 
아주 큰 종합병원을 하는 후배가 감기 걸리고 한 얘기. "나이 들어 감기 걸리니깐 죽겠드만. 스무살 때 하고 달라. 응급실에다 '당신들 감기환자 대충 보지 말고 중환자 대하듯 하라'고 했어."
 
그런데 치료 받으면 정말 빨리 나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감기는 버티면 7일, 약 먹으면 1주일'이라는 말이 있다. 수십 년 전까지는 의사들만 알았는데 이제는 아는 사람이 꽤 많다. 지식 독점이 파괴됐다. 앓는 기간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라는 논문도 있다. 1989년 미국 뉴욕대학 소아과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두환자한테 타이레놀을 먹였더니 6일이면 끝날 걸 하루 더 끌었다고 한다. 좀 심각해 보이는 부작용도 있다. 2007년 미국 FDA에서 발표한 논문인데 2세 이전에 해열제를 먹인 아이들이 알레르기가 50% 더 많다는 것.
 
경험상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게 꼭 면역력 약화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심한 급성편도염은 입원까지 하지만 주로 20~30대에서 그렇고 중년 이후는 별로 못 봤다. 면역력이 강한 젊은이는 단 하나의 바이러스 침입을 용서 못하지만 노화로 면역력이 약해지면 귀찮아서 못 본 척 할 수 있다.
 
사실 감기 증상은 바이러스의 직접 공격의 피해가 아니다. 인체의 방어 증상 때문에 고통스럽다. 열은 바이러스를 '삶아 죽이려다' 생기고 기침은 '돌풍으로 바이러스를 몰아내려'는 것이고 콧물은 '을지문덕 살수대첩'이다. 실제로 병원 감기 치료는 적군 섬멸이 아니라 아군 무장해제다. 독감 아니면 항바이러스제 처방은 없다.
 
물론 병원치료는 증상을 덜어준다. 해열제 먹으면 열이 떨어지고 이전과는 '인생관'도 달라진다. 링거에 영양제까지 맞으면 좋을 것이고. 때만 되면 월급은 나온다는데 시간 가면 감기는 낫는다. 감기가 만병의 근원? 의사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어쨌든 병원에 도움 되는 얘기다. 물론 심각한 질환의 초기 증상이 감기와 혼동되지만 감기는 감기일 뿐.
 
감기는 사람을 고통에 시달리게 하지만 교훈이 있다. 후배는 감기 덕분에 환자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각성을 했다. 감기에 걸리면 자기를 돌볼 사람이 가족밖에 없다는 것도 느낀다. 내가 바쁘게만 살아온 게 잘한 일인가? 삶을 잠깐 되돌아보게 만드는 데는 감기만한 것도 없다. 인생의 어느 때쯤 찾아올지 모를 고통을 연습하는 일도 된다. 고통은 있지만 대부분 별 탈 없이 낫는다. 심한 매질도 아니다. 그리고 감기는 자주도 걸린다. 그만큼 반복학습을 시킨다. 좋은 기회 너무나들 없애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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