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광장은 무엇인가?
 
광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어린이들이 모이고, 젊은이들이 모여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또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인들, 이 모든 눈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시청 앞 광장은 한때 시위의 주요처가 되었고, 시위대가 흩어져도 더 무서운 침묵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그때 광장 앞에서 무엇을 했던가? 텅 빈 광장을 지나가면서 내 젊은 날을 돌아본다.
 
광장 속에 존재했던 함성들, 침묵들, 모두가 공존의 뿌리를 두지 못하고 생기는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분 서로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최인훈의 <광장>은 타락한 밀실 위주의 남한 사회와 타락한 광장 위주의 북한 사회에서 실망하고 절망한 청년 이명준이 제 3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투신자살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린 작품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의 대립 속에서 가까스로 피어나는 인간성 회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명준이 택한 바다가 바로 유토피아적 광장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투쟁으로 얻어지는 행복은 또 다른 투쟁으로 잃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유토피아적인 세상은 즉, 가족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폭넓고 풍부한 인간애가 유토피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리라.
 
나는 최인훈의 <광장>을 아직도 서성거리고 있다. 그 광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유토피아적인 생각이 현실도피적이고 적극적이지 못한 생각이라 여기겠지만, 개인적이고 배려가 부족한 요즘 나는 광장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이상세계를 꿈꾸고 있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포로 교환 시 조국을 택하지 않고, 중립국인 인도를 선택하여 배를 타고 떠났다. 명준이 겪은 남과 북의 현실이 이상향의 세계가 아님을 판단하고, 제3국으로 가는 것이다. 남지나해를 지나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를 보면서 명준은 사랑했던 사람 은혜와 가족을 생각해 낸다. 명준은 지난날의 회한과 그 환영을 보고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을 택하고 만다. 여기서 바다는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제 3의 새로운 공간을 의미한다. 바다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안식의 자리, 그 광장의 의미를 나는 아직도 되새기고 있다.
 
명준은 밀실과 야합의 부도덕한 사회만 있을 뿐, 정의와 사랑이 구현되는 푸른 광장이 없는 세계에 절망했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한 젊은이의 절규가 아니라, 내 지난날 삶의 의미를 투영해 보기에 충분했다.
 
내가 밀실에서 고함쳤던 말들과 광장에서 침묵으로 흘렸던 말들. 사람들이 토해내는 모든 말들이 이념의 잣대가 되어가는 요즘 세상에서 '광장'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오래 전 읽은 <광장>에 혼돈과 갈등, 대립의 젊은날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적(詩的)인 환상들이 무한정 모여들고 있다.


>>김용권 씨는
시인. 경남 창녕 남지에서 태어났으며, 경상남도문인협회·김해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석필' '영남시' 동인이며, 현재 김해이야기제작소 두레박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시집 <수지도를 읽다>를 '서정시학'에서 펴냈다. 동서식품(주) 재직 중.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