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죠? 과연 이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요? 폭염에 지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배부른 고민일까요. 이 더위를 견디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이 삶 그 자체인 사람들입니다. 그들 앞에서는 "덥다"는 말이 무색해집니다. 섭씨 45도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농민,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섭씨 1천 도가 넘는 열기를 견디는 용접공, 뜨거운 연탄불 앞에서 여름 보양식 장어를 구워내는 주방장이 있습니다. <김해뉴스>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숨막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는 송세구 씨.
방울토마토 하우스 재배 농업인 송세구 씨
한낮 하우스 온도 45도 넘어도
보석 같은 요놈들 따는 재미에

"피서요? 매일 따야 할 토마토를 두고 놀러 다닐 수가 있습니까. 피서는 꿈도 못 꿉니다."
 
방울토마토 재배 하우스 안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송세구(58·대동면 예안리 신명마을) 씨가 말했다.
 
한여름 낮 기온이 무려 45℃까지 올라간다는 하우스 안이지만, 정성을 다해 키운 토마토를 따는 손길은 분주하고 날렵했다.
 
송 씨는 총 5천940㎡(1천800평) 규모의 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 중 '유니콘' 품종을 양액재배(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수용액으로 만들어 재배하는 방법)방식으로 생산한다. 오전 4시 30분께 일어나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6시부터 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따기 시작한다. 6월 초에 모종을 심는데, 한 달만 지나면 따기 시작해, 9월까지 수확하는 하기작 방울토마토이다. 여름에는 빨리 자라니, 빨리 따야 한다.
 
다 익은 방울토마토는 주황색 보석처럼 예쁘고, 아직 익지 않은 것은 투명한 연두색이다. 어른 키를 넘을만큼 자란 방울토마토 대는 한 뼘씩 자랄 때마다 집게로 고정해야 하고, 한 알 한 알 조심스레 따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줄지어 늘어선 방울토마토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특수제작된 좁고 긴 밀차는 뒷쪽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받침대가 있고, 앞쪽에 바구니를 얹을 수 있는 구조다. 그 밀차를 밀고 가면서 방울토마토를 따는 송 씨. 그의 눈빛은 지금 따야 할 것과 내일 쯤 따야 할 것,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할 것 등을 순식간에 읽어내는 듯하다. "매일 이 놈들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보는 순간 언제 따야할지 느낌이 온다"는 송 씨의 말에서 자식 키우듯 방울토마토를 생산해 내는 귀한 마음이 느껴졌다.
 
송 씨는 방울토마토를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 조건이 까다로워 제때 따지 않으면 안 되니, 여름 한 철 내내 방울토마토 수확에 매달려야 한다. "많이 익으면 토마토가 터져버려요. 한 알 한 알 지켜보면서 제때 따야 해요." 송 씨의 손길은 어김없이 분주하다.
 
"밖에 있다가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힌다"고 푸념하는 송 씨는 일을 할 때면 얼음조끼를 입는다. 수시로 수분 섭취를 해야 하니 하우스 안에는 얼음냉수가 담긴 바구니가 따로 준비되어 있다. 새참으로 수박도 먹고, 콩국도 마시면서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그래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낮에는 두 시간쯤 쉬기도 한다.
 
화훼농사를 짓다가 지난 1999년부터 방울토마토 농사를 시작했다는 송 씨는 "30여 년 째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농사는 사람의 힘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있고, 자연이 하는 일이 있죠. 그렇게 수확하는 겁니다. 많이 먹어주세요"라며 방울토마토를 양손 가득 들어보였다. 송 씨가 흘리는 굵은 땀방울이 주황색 보석 방울토마토처럼 빛났다. /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 선풍기의 바람조차 용납되지 않는 작업현장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이현종 씨.
26년째 용접일로 여름과 싸우는 이현종 씨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
1000도 불꽃과 뜨거운 싸움

"여름에는 더위와 싸워 이긴다는 생각으로 일을 합니다."
 
플렉시블 생산 전문업체인 주촌면 내삼리 태성후렉시블의 용접팀장 이현종(50) 씨는 26년째 용접일을 하고 있다. 이 씨는 0.4㎜ 두께의 스테인리스 판을 떼울 수 있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보유한 실력자이다.
 
"이 일이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용접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이 씨는 군복무를 마친 뒤 이 일을 시작했다. 전북 순창이 고향인 이 씨는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 쓰던 특별할 것 없던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갔다. 그리고 용접일을 시작했다.
 
"이게 대충해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용접은 그저 기술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씨는 관련 책을 사 보면서 공부를 했다. 물론 힘든 시간은 있었다. 지금은 밥 먹는 일처럼 익숙한 게 용접일이지만, 처음 기술을 배울 때만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아 판에 구멍만 냈다. 너무 어려운 일을 택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숙련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왕 칼을 빼들었으니 끝까지 가보자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이 분야에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생겼고, 용접일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용접을 할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 불똥이 튀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긴소매 옷과 긴바지를 입고 장갑을 껴야 한다. 용접을 시작하면 불의 온도만 1천℃가 넘는다. 잠시만 옆에 서 있어도 땀이 난다. 스테인리스가 거울 구실을 해 용접을 할 때면 열이 반사돼 나오기도 한다. 가스가 바람에 날리면 용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선풍기도 틀지 못한다. 5~6명이 한 작업장 안에서 용접을 할 때면 그 온도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사계절 내내 두꺼운 옷을 입고 불과 씨름을 해야 하는 용접일. 여름 한철을 나고 나면 적게는 3~4㎏에서 많게는 7~8㎏까지 살이 빠진다고 한다. 한 겨울은 시원해서 좋다고 여길 정도다.
 
두 세 시간은 기본적으로 쪼그리고 앉아 용접을 하니 체력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용접일만큼이나 체력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 씨는 매일 저녁마다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산을 타면서 체력을 기른다.
 
"열이 많이 나지만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 해요. 덥다고 생각하면 더 덥거든요. 더위와 한몸이 돼 일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용접공들은 많이 더우면 잠깐 일어나 바깥공기를 쐬는 것 외에는 달리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여름에는 더위와 더불어 혹은 싸워서 이긴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용접이란 게 뭔가'라는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이 씨는 '용접은 나의 친구'라고 대답했다. "용접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어요. 매일 같이 붙어 있고, 함께 생활하고 있으니 용접은 이제 저의 친구나 마찬가집니다." / 구민주 기자 kmj27@


▲ 맛있는 장어구이를 제공하기 위해 뜨거운 연탄화덕 앞을 지키고 있는 오창식 씨.
연탄화덕 앞에서 궁극의 장어 맛 구워내는 오창식 씨
양말까지 땀으로 흠뻑 젖기 일쑤
하루에도 너댓 번 옷 갈아입죠

"마지막으로 수영을 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연탄화덕 앞에서 장어를 구워내는 오창식(49) 씨. 불암동 '향옥정' 주방 옆에 따로 마련된 10㎡(3평) 남짓한 공간은 후끈하다. 장어 초벌구이에 쓰는 기계의 열기와 화덕의 열기가 합해져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환풍기가 돌아가고 선풍기 한 대가 문쪽을 향해 연신 열기를 빼내고 있다. 두 개의 화덕 옆에는 뜨거운 물을 담은 대야도 있다. 장어를 뜨거운 접시에 담아 손님상에 내기 위해서다.
 
"여름에는 장어구이를 드시러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요. 다른 계절의 배입니다. 그러니 향옥정 식구들은 모두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바쁩니다."
 
오 씨는 하루에 옷을 너댓 번 갈아입는다. 양말까지. 모두 땀으로 흠뻑 젖기 때문이다. 오 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 팔에서 모래같은 게 버석거리는 느낌이 들어 쓸어보면 땀이 말라붙은 소금이 만져지곤 한다"고 말했다.
 
옆에 물병을 두고 있지만 물 마실 시간도 없다. 장어를 구울 때 잠깐 방심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장어가 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오 씨를 지켜보는 게 안타까운지 중간중간에 주방 아주머니들이 냉동실에 얼려둔 수건을 꺼내 오 씨의 목에 걸어주기도 한다. 찬 얼음수건 하나 본인이 챙기러 갈 틈도 없으니 이런 서비스도 감지덕지다.
 
화덕 앞에 앉아 장어를 굽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만 일해도 화덕의 열기 때문에 무릎과 다리에 열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얼마나 뜨거운 환경인지 짐작이 간다. 손님이 뜸한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잠깐 바깥에 나가 선풍기 바람을 쐬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시원하다고 한다.
 
"여름 휴가요? 다른 사람들이 쉴 때 장사를 하니까 제대로 휴가를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두 딸에게 너무 미안해요. 우리 딸들에겐 아빠하고 함께 보낸 여름 추억이 제대로 없어요."
 
오 씨는 가족에게 미안해 했다. 오 씨 역시 한 여름 푸른 바다를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일 마치고 밤바다를 일부러 보러 간 적은 있어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님들이 제가 구운 장어 맛을 보셨지요. 다른 손님들도 대통령님들만큼 저에게 고마운 손님들입니다. 맛있게 드셨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뿌듯합니다." 오 씨는 자신이 더위를 견디는 힘은 장어를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제가 구운 장어 맛에 대한 자신이요? 25년동안 장어를 구웠지만 아직도 제가 찾고 있는 '궁극의 맛'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뜨거운 불 앞에서 더 노력해야죠." 오 씨가 장어를 구워내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장어는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어요. 손님들은 자꾸 에어컨을 세게 틀어달라고 하지만요." / 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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