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수 씨가 정비소 2층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왕년에 악기 하나 다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유재하, 김광석 등의 싱어송라이터들과 봄여름가을겨울, 산울림, 백두산, 어떤날 등의 밴드들이 쏟아져 나왔던 1980년대, 우리의 낭만은 통기타 하나 메고 청춘과 시대를 논하는 데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의 음악은 '마음 속의 성경'이었고 통기타 등의 악기는 '청춘의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김해시 내동에서 자동차정비대리점을 운영하는 박성수(40) 씨도 그런 청춘을 보냈던 때가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못다한 내 마음'이라는 곡을 꼬박 일주일 매달려 직접 연주한 후, '테이프'에 녹음해 첫사랑에게 선물하려 했던 소년은 지금 '자동차정비공'이다. 고등학교 그룹사운드 'DMZ'에서 드럼을 쳤던 그의 두 손에는 드럼 스틱 대신 드라이버와 스패너가 들려 있었다.

박 씨의 꿈은 드러머였다. 중학교 3학년, 한창 거뭇거뭇 수염이 나면서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하던 때, 친구가 그룹사운드 결성을 제안해왔다. 그렇게 밴드 DMZ가 탄생했다. 친구는 기타를 치고, 박 씨는 드럼을 쳤다. 전부 독학이었다. 이들은 주로 오지 오스본이나 스콜피언즈 등 헤비메탈곡을 연주했다. 학교 학예전이나 롤러스케이트장, 극장 등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김해에서는 유일한 밴드였다. 라이브 공연을 처음 보는 친구들이 "테이프 틀어놓고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을 할 정도였다.
 

▲ 드럼스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성수 씨.(왼쪽) 박성수 씨가 자동차를 손보고 있다.(오른쪽)

평생 드럼을 치며 살고 싶었던 박 씨에게도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드럼 스틱을 놓고 자동차정비 장비를 손에 쥐었다.
 
"원래도 부모님들께서 '딴따라' 같다고 싫어하셨지만, 그것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만둬야 했지요. 빨리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박 씨는 자동차정비공이 됐고, 기타를 치던 친구는 목사가 됐다. 한동안은 일에 치여 사느라 드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1996년, 박 씨는 이른바 '재즈드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부산의 한 대학가 근처 라이브클럽에서 재즈밴드 '트라이빔(TRIBE-HEAM)'의 공연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드럼 세션은 '더글라스 베인브리지'라는 드러머가 맡고 있었다. 박 씨는 그야말로 재즈드럼에 '뻑 갔다'. '무조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더글라스의 연락처를 알아내 연락하는 열성을 보인 끝에, 한 달에 한 번 2시간씩 그로부터 재즈드럼을 배울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독학으로 드럼을 치다가 제대로 배우게 됐을 때의 그 기분을 잊지 못하죠. 이렇게 재즈드럼에 빠진 후로 록은 듣지도 않았어요."
 
현재 그의 대리점 2층 한켠 작은 방에는 드럼 세트가 갖추어져 있다. 일이 바빠 자주 치지는 못하지만, 목사 친구와 CCM(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 면에서는 기독교 정신을 담아내는 기독교 음악) 밴드를 꾸려 가끔 합주를 한다. 대리점 영업을 종료한 후 저녁 7시쯤 혼자 드럼 앞에 앉기도 한다. 그럴 때 그는, 세계 최고 뮤지션들의 영상을 틀어놓고 '잼 세션(Jam session·평소 함께 연주 활동을 하지 않는 멤버들이 모여 스탠더드 넘버 등을 소재로 해서 합주하는 것. 주로 재즈 뮤지션의 즉흥적인 연주에서 이루어짐)'을 한다. 그의 작은 방에서 흥겨운 재즈파티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 씨가 본업인 자동차정비를 소홀히 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가 드럼만큼 좋아하는 것이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 박성수 씨가 소장하고 있는 존 스코필드 블루레이.(왼쪽)재즈드럼 교재와 박성수 씨의 드럼스틱.(가운데)박성수 씨가 모은 LP들.(오른쪽)

대리점에 오는 손님들이나 직원들 중, 박 씨가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본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의 눈에 박 씨는 작업복과 드라이버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티비 원더의 공연을 놓쳐서 아쉬워하고, 오사카의 한 공원에서 밴드들이 줄줄이 서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는 사람이다. 드럼이 없으면 스틱을 들고 고무판을 두드리며 연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른바 '음악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드럼은 매력적인 악기가 아니다. 양발과 양손이 따로 놀아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뿐더러, '음률'을 만들어내는 다른 악기와 달리 박자만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밴드를 보면 드러머의 얼굴은 거의 잡히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재미없는 악기이다. 그래서 박 씨에게 물었다. 도대체, 드럼을 치는 게 왜 그렇게 좋은 것인지.
 
"자전거를 비틀비틀 타다가 어느 순간 제대로 탈 수 있게 됐을 때의 기분, 딱 그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힘들죠. 실력도 더디게 늘고, 손발은 계속 마음처럼 따라주지도 않고.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거다' 싶은 때가 있어요. 드럼은 이런 기분이 죽을 때까지 드는 것 같아요. 끝이 없는 거죠. 연주를 할수록 그 기분을 계속 느낄 수 있어요. 이건 안 쳐본 사람은 모르는 거죠."
 
지금 그의 꿈은 '세계적인 재즈 드러머'이다. '소년 박성수'가 꿈꾸었던 '록 드러머'에서 앞 글자만 바뀌었다. 정제돼 있으면서도 다이내믹한 연주를 들려주는 드러머 '스티브 겟(Steve Gadd)'을 마음 속에 품고, 드럼을 칠 때 느껴지는 손의 떨림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동차정비공과 드러머 사이를 오가는 박성수 씨의 '이중생활'은 그가 본업을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이어질 듯 하다. 그러니 어느날 저녁, 자동차정비 대신 어떤 라이브클럽에서 재즈 잼 세션에 흠뻑 빠져 있는 그의 모습을 본다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 박성수 씨가 조언하는 스틱 고르는 법

" 휘어지지 않고 반듯한 나무결에 손에 맞는 게 좋아"
 
드럼을 연주할 때는 '드럼 스틱'이 매우 중요하다. 연주하는 사람의 손에 따라, 곡의 장르에 따라 종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박성수 씨는 '빅 퍼스(VIC FIRTH)'의 '피터 에스킨(Peter Erskine)' 시그니처 스틱을 사용한다. 시그니처 스틱이란 유명한 드러머의 사인이 새겨진 것으로, 각 드러머에게 맞는 굵기와 무게, 모양 등을 갖추고 있다.
 
드럼 스틱을 고를 때는 우선 유리바닥처럼 평평한 곳에 굴려보고 휘어지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굴러갈 때 스틱이 멈칫멈칫거리지 않아야 한다. 두 개를 맞대어 돌려보고 눈으로 휘어짐을 확인해도 된다. 또한 나무결이 반듯하게 뻗은 것일수록 좋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연주자의 손 크기와 힘이다. 자신의 손에 맞지 않게 너무 굵거나 얇은 스틱을 선택하면 좋은 연주를 하기가 힘들다. 스틱에 굵기를 나타내는 5A, 5B, 7A 등의 기호가 쓰여 있는데, 7A가 가장 얇다. 이 중 손에 맞는 것, 휘둘러보고 너무 무겁지 않은 것으로 선택하도록 한다.
 
연주하고자 하는 곡의 장르도 중요하다. 박성수 씨처럼 재즈를 연주할 때는 팁(스틱의 끝부분)이 작고 가벼운 스틱을 주로 사용한다. 반면 록은 팁이 큰 것을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곡에 따라 사용하는 스틱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연주를 하며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것을 차차 찾아 나가면 된다. 또한 박성수 씨는 인터넷에서 구매하기보다 악기점에 갈 것을 추천한다. 직접 만져보고 확인해야 좋은 스틱을 고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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