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바늘의 빼쪽한 부분은 사람의 입에 해당합니다. 입이 잘 생긴 사람도 있고, 못 생긴 사람도 있듯 바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이 부분(바늘의 중간 부분)은 사람의 몸매로 봐야 합니다. 몸매가 예뻐야 잘 만들어진 바늘입니다."

대회 참가 200여 업체 제치고 1위
높은 품질 수준 유지 노력 큰 성과
26살에 낚시바늘 공장 CEO 올라
"대기업보단 오래 일할 곳 찾아야"


지난달에 김해의 한 기업인이 관세청과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FTA 활용 중소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 화제를 낳았다. 어방동의 낚시바늘 전문 제조업체인 '금호조침' 김화규(64) 대표. 김 대표는 FTA 덕에 관세가 낮아진 점을 활용, 해외수출을 늘려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이런 사실을 공개, 대회에 참가한 200여 업체의 대표들을 제치고 '전국에서 FTA를 가장 잘 활용한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됐다.
 
1g도 채 안되는 낚시 바늘은 김화규 대표에겐 매우 각별한 존재이다. 평생 바늘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기를 반복해 세 딸을 키웠으니 일단은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개인적으로도 24시간 바늘의 모양 등을 연구하면서 업계를 선도하고 있으니 혼이 깃든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바깥에서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직접 바늘의 형태를 그려보곤 한다.
 
그러나 그는 고생도 어지간히 많이 했다. "직원이 4명일 때 쌀집에서 외상으로 쌀을 사다 먹었으니 말 다했지요. 그땐(1975년)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 어려울 때 믿고 쌀을 대주신 쌀집 할머니가 지금 생각해도 고마워요. 아마 세상을 떠나셨을 겁니다."
 

▲ 김화규 '금호조침' 대표가 낚시 바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참을 인(忍). 김 대표에게 어울리는 한자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그는 고향을 떠나 부산의 한 봉제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당시 월급으로 3천200원을 받았습니다. 일을 하긴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작업반장 정도겠더라고요. 그래서 8개월만에 직장을 옮겼는데 그게 낚시 바늘 공장이었어요. 낚시 바늘과 첫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지요."
 
그렇게 낚시 바늘에 '낚인' 그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을 이어갔다.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8개월 만에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됐고,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낚시 바늘공장 CEO가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낚시 바늘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공장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때까지 이를 악물었고, 결국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의 금호조침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지요. 기쁘게 생각하는 건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겁니다. 60세가 넘어서도 2선이 아닌 1선에서 뛸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입니다."
 
김 대표는 몇 가지 원칙을 통해 수많은 난관을 이겨냈다. 내가 쓰는 제품이란 생각으로 품질 수준을 높이려는 마음가짐과 첫 거래 고객이 잘 돼야 자신도 덩달아 커진다는 공생의 원칙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유명 브랜드에 바늘을 납품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납품일은 다가왔고 출하되려는 순간 바이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새로 만들어 보낼 테니 시간을 더 줄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좋게 생각하데요. 그런 정성이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금호조침은 지난해에 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중 약 90%가 수출을 통해 이룩한 것이니 국가 경제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그는 김해지역 젊은이들에게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알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조기 정년퇴직하는 직장이 아닌 60, 70살이 넘어도 일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좋지 않느냐"고 조언했다.

>> 김화규 대표는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낚시 바늘로는 국내에서 독보적 기업인 금호조침을 지난 1979년 설립했다. 낚시 바늘 업계 최초로 Q마크를 획득하는 등 품질우선 경영을 펼쳤으며, 부인 서윤순(61)씨와 사이에 3녀를 두었다. 큰 딸은 중국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두 딸은 금호조침에서 해외무역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낚시진흥회 회원, 부산경남조구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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