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부쩍 자살·살인·성폭행과 관련된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직업적 특성상 자살, 폭력 등과 관련된 정신과적 문제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보면 귀엽고 즐거워야 하는데, 조금만 칭얼거려도 화가 나 심하게 때리게 되고, 스스로도 위험한 행동을 할까 봐 두렵다며 병원을 찾는 산후우울증 환자도 있고, 평소에는 얌전한데 술만 먹으면 물건을 부수고 가족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다며 입원을 하는 알코올의존증 환자도 있다.
 
실제로 약물치료 등을 해보면 병원에 오기 전에는 난폭하고 주변 사람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던 사람이 내성적이고 온순하게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노를 조절하는 문제와 공격성은 깊은 관련이 있다. 여성들한테서는 생리를 전후해 기분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처럼 감정과 관련된 신체 변화가 있을 때 우울·불안·신경질·공격성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냥 웃으면서 넘기는 사람도 있다. 뇌의 기질적 이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에는, 충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등의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사실 분노는 상처·좌절·위협·상실 등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만, 분노의 감정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거의 모든 일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그때마다 공격성을 보일 경우, 상대방은 나에 대해 적개심이나 복수심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내가 그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분노를 지나치게 억압할 경우 우울증·불안증·공포증·강박증 등의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뿐만 아니라 당뇨병·위 십이지장 궤양·고혈압·협심증·동맥경화증·뇌졸중·성기능장애 등의 신체질환이 발생하거나 악화될 수도 있다.
 
요컨대, 분노가 너무 격렬하게 거침 없이 표출되는 경우, 또는 반대로 지나치게 억압되어 자연스럽게 표현되지 않는 경우, 이 모두를 파괴적이며 병적인 분노라고 볼 수 있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끈하며 화를 내는 것은 간단하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럴 만한 사람에게, 그럴 정도로, 그럴 만한 기회에 화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처세술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 조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항상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정과 학교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잘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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