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나라 각 민족마다 특유의 춤이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도 그렇듯이, 우리 전통춤사위에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춤으로 표현한 태평무, 불교적 색채가 짙고 우리 민속 춤 중에서도 가장 작품성이 높은 승무, 가슴 깊이 맺힌 한과 살을 풀어주는 도살풀이, 엄격한 규칙에 따라 정확한 동작으로 추는 학춤.
김해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옥영(64) 씨는 전통춤을 추고 전승하는 한국무용가이다. 한국무용협회 김해시지부를 설립해 지부장으로 활동했고, 현재 고문을 맡고 있는 그는 김해 무용계의 대모이다.

▲ 삼방동에 있는 강옥영의 무용학원은 김해 무용계를 위해 땀흘려 온 '강옥영 춤'의 산실이다.  김병찬 기자 kbc@

1950년대 말 한국춤의 이상준에게
전통춤 배우며 춤꾼 인생 첫 발
한땐 드럼 좋아 '드럼 강양' 별명도
한성여대 졸업 후 이매방 조교생활


강옥영의 무용학원은 삼방동 656-6에 있다. 건물 3층에 있는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룻바닥은 매끈하고, 도로 쪽으로 난 창문을 뺀 벽면 모두가 거울이다. 이 곳에서 춤을 추는 강옥영도 그의 제자들과 후배들도 저 거울에 몸과 마음을 비추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을 것이다. 거울이 많은 방이 으레 그렇듯이, 공간은 끝없이 확장되어 한없이 넓게 다가왔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초겨울 햇살 아래 강옥영의 삶이 펼쳐졌다.
 
강옥영은 여덟 살 때부터 전통춤을 배웠다. 1950년대 후반부터 춤을 배웠으니, 그는 한평생을 춤으로 살고 있다. 그는 김해의 부자로 이름난 강차주집의 6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강옥영이 여덟 살 무렵, 한국춤을 추던 남성무용수인 이상준 선생이 김해에 와 있었다. 어머니가 친구들 14명을 모아 이상준 선생에게 춤을 배웠다. 그러다가 집집마다 두 명씩 자녀들을 데리고 가 함께 춤을 배웠다. 강옥영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그렇게 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당시에 이상준무용단은 극장을 빌려 공연도 했다. 강옥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공연을 하느라 수학여행도 못 갔다. 무용을 하는 아이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김해동광초등학교, 김해여중을 다니던 시절의 강옥영은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공주' 대접을 받았다. "그 시절 제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은 제가 그때 김해에서 최고로 예뻤다고 말하더군요." 말끝에 강옥영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강옥영은 부산 남성여고로 진학했고, 무용을 계속했다. 개천예술제에도 나가는 등 춤 인생을 꿈꾸었다. 이화여대에 진학해 무용을 계속하려 했으나 시험에 떨어지면서 부산 청산학원에서 재수를 했다. 그때 그에게 재미있는 일탈이 일어났다.
 
"외삼촌을 통해 기타를 알았죠. 밴드를 알았고, 그 중에서도 드럼에 반해버렸어요. 전통춤을 추면서 북이며 장고로 단련된 실력인데, 드럼이 얼마나 신났겠어요"
 
그는 부모 몰래 학원비를 빼돌려 드럼을 배웠다. 이듬해 한성여대(현 경성대)에 합격했으나, 입학등록금으로 아예 드럼을 샀다. 그때 강차주집은 새로 콘크리트 집을 지었는데, 집이 크고 방도 많아서 둘째딸이 방 안에 드럼을 숨겨놓은 걸 어머니가 미처 눈치를 채지 못했단다. 집 주위에는 다른 집도 없었기에, 어머니가 외출한 틈을 타 강옥영은 신나게 드럼을 두들겼다. 얼마나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을까. 어머니가 외출에서 돌아와 혼비백산하셨단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지요. 처음으로 맞았고요. 그런데 그 난리를 치고 난 다음에는 웬일인지 어머니가 본격적으로 밀어주셨어요."
 
사실 어머니는 본인 스스로 춤을 배우기 위해 회원들을 모아 이상준 선생을 찾아나섰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머니 스스로가 예인 기질을 타고 났던 게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드럼을 치고 싶어 하는 딸에게, 그렇게 좋으면 한 번 해보라고 기꺼이 도닥거려주었다. 강옥영은 외삼촌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대학 진학은 잠시 미루고, 제주도 관광호텔 전속 공연팀이 된 밴드를 따라 제주도로 날아갔다. 6개월간 제주도에서 신나게 드럼을 치며 살았다.
 
"그때 어머니가 김해 여러 사모님들과 함께 제주도에 한 달에 한 번꼴로 왔어요. '저 드럼 치는 아이가 우리 딸'이라고 자랑도 하셨대요."
 
▲ 이상준 선생의 무용단 공연 장면(사진 위)과 초등학교 6학년때의 강옥영.
강옥영의 춤 인생을 듣고, 그의 춤 공간을 취재하러 나섰지만, 사실 이 드럼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의 솔직하고 담박한 성품, 배우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내는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이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강옥영은 한성여대 체육과에 입학하면서 제주도를 떠나왔다. 당시에는 무용과가 있는 학교가 드물어 체육과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췄던 그는 학우들의 수업 진도를 넘어서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학교 강의가 좀 시들했다. 학교를 마치면 서면으로 달려가 한 클럽에서 드럼을 쳤다. 친구들과 선배들은 클럽에 와서 술을 마시고 '드럼 강양' 앞으로 외상을 달아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강옥영을 아끼던 교수들이 나서서 "이제 드럼은 할만큼 하지 않았느냐"며 조언을 했고, '드럼 강양'은 '춤꾼 강옥영'으로 다시 돌아왔다.
 
강옥영은 한성여대를 졸업하고 2년 6개월간 인간문화재인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의 조교로 지냈다. 이매방과의 인연은 한성여대에 승무 특강을 하러 온 이매방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대학 졸업 후 강옥영은 줄곧 춤의 외길을 걸어왔다. 1976년 부산 연산동에서 '강옥영 예술무용학원'을 열었다. 1986년에는 부산 무용협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사무국장 시절 그의 춤 인생은 더욱 깊어졌다.
 
강선영·김진홍·문장원·이현자
양길순 등 무용계 거목들에게 사사
고향 김해에 1993년 무렵 돌아와
춤 전파·제자 교육 등에 진력


특히 1988년 초에 88서울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유럽 각국을 다녔던 경험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의 기능·예능 보유자인 강선영 선생이 예총회장을 맡았던 때였다. 강선영 선생을 모시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야외공연을 했을 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할 때와는 다른 감흥을 느꼈다.
 
"자유분방한 광대, 제대로 된 춤꾼이 되어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춤을 추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추는 춤은 관객과 한 면만 대면하고, 조명은 나를 아름답게 보호합니다. 음악이며 춤은 정교하지요. 그에 비해 마당은 사면이 트여 있어 막힘이 없는 소통이 가능하죠. 장단점이 있는데, 둘 다 매력이 있어요." 그는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동안 한층 더 성숙해졌고, 귀국한 후로 다시 여러 선생들에게서 춤을 배웠다.
 
이매방, 강선영, 김진홍(인간문화재인 이매방으로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춤인 승무와 살풀이를 사사한 한국 전통춤의 명인), 문장원(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명예보유자), 이현자(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후보자), 양길순(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도살풀이' 후보자) 등 한국 무용계의 내로라 하는 이들이 그의 스승들이다.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각 춤마다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고 있는 중인데, 배우는 데 끝이 있나요. 생각해 보면 춤을 춘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들고, 금방 표시도 안 나고, 끝이 없는 세계인 것 같아요."
 
강옥영이 고향 김해로 돌아온 것은 1993년 무렵이다. 그는 김해에 학원을 내면서 한국무용협회 김해시지부를 설립했다. 전통춤에 관심을 가진 어머니들을 위해 '가야어머니 무용단'도 창립했다. '우리춤연구회'를 설립해 제자들을 길러내고 정기공연회를 열고 있다. 김해에서 춤을 추고 있거나,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심점을 그가 만들었던 것이다.
 
강옥영은 일주일 내내 바쁘다. 월요일에는 부산에 가서 민속보존회가 여는 문화학교에서 춤을 춘다. 화요일은 최창덕(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도 살풀이 이수자) 씨가 강옥영의 무용학원에 오는 날이다. 부산 경남의 무용과 교수들과 춤꾼들이 모여 최창덕 선생의 강의도 듣고 춤도 춘다. 수요일에는 부산에 진도북춤을 가르치러 가고, 수·목요일에는 동부노인복지관에서 강의도 듣고, 금·토요일에는 제자들을 가르친다. 일요일에는 부산 금강공원 민속관에 전수교육을 하러 간다. 그는 부산무형문화재 4호 동래지신밟기 전수교육조교이다.
 
▲ 전통춤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강옥영.
그는 전통춤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현대무용은 나이가 들면 하기 어려워요. 한계가 있지요. 그에 비해 전통춤은 유연성만 있다면 끝까지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내면의 성숙이 춤을 더 깊어지게 합니다. 춤을 추는 동안 자신의 뒷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구요. 마음공부나 다름없어요."


>>강옥영
1996년 한국무용협회 김해시지부 설립, 2005년까지 한국무용협회 김해시지부장 역임. 2002년 경남예술공로상, 제18회 김해시문화상 수상. 현재 부산무형문화재 제4호 동래지신밟기 전수교육조교, 한국무용협회 김해시지부 고문, 강옥영 우리춤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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