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먼지가 얇게 쌓인 엄마의 책장 맨 앞 칸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가 항상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건 풍경화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그 책에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책 언저리 부분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노랗게 빛이 바래져 있었다. 나는 종종 그 책에 배어 있는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곤 했다.

키가 한 뼘 더 자랐을 무렵, 아마 중학생이었을 거다. 나는 <상실의 시대>를 꺼내 들었다. 서문을 겨우 읽었을까. 엄마는 조금 더 크면 읽어 보라고 하셨다. 얼마 후 이사를 하면서 엄마의 책장이 사라졌다. <상실의 시대>도 함께. 그 탓에 한동안 나도 <상실의 시대>를 잊고 지냈다.

20세가 되던 해. 엄마가 이제는 내가 읽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셨는지 <상실의 시대>를 선물해주셨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내 침대 위에 놓여진 책 선물 포장지를 뜯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준 선물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설레었다.

이 소설은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 주인공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세련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동감 넘치는 문체는 읽는 내내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와타나베(주인공)가 나오코와 하염없이 걷던 거리, 미도리의 집에서 바라본 풍경, 나오코가 있는 정신병원의 모습 등은 눈을 감으면 그 풍경이 그려질 정도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감 능력 또한 내 가슴을 울렸다. 감정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인물들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실의 시대>는 수많은 상실을 이야기 한다. 친구를 잃었을 때의 허무함,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속에서 느끼는 고민, 삶의 가치에 대한 사색, 어쩌면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 이 모든 것은 결국 상실로부터, 혹은 상실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느 샌가 내가 가진 상실감을 덮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책의 결말로 달려나갈수록 내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상실감은 어느새 희미해져 갔다. 마음 깊은 곳에서 뒤틀려 있고 헝클어져 있던 감정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 나갔다. 책 속의 인물들이 가지는 상실감에 비해 나의 상실감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자기 위안을 하며.

37세의 와타나베는 "지독하리만큼 아픔과 고독을 안겨주었던 자신의 20세가 이제는 흐릿해진 과거로 변하고,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그 때의 사랑과 아픔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와 엄마는 상실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젠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다. 아마도 성장통을 겪는 나에게 상실감을 넘어 성장으로 갈 수 있는 치열한 고민을 해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Who >> 김다솜
1990년 부산 출생. 인제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인제대학보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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