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시인들이 남긴 한시를 보면 김해의 옛 역사와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엄경흠 교수. 사진/ 박나래skfoqkr@
'사행시' 연구하며 한시에 관심가져
경주·부산을 담은 한시 책으로 펴내

옛 시인들 김해 오면 '가야' 떠올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자부심 녹아
김해의 정서에 가야가 면면히 흘러

 

<김해뉴스>는 이번 호부터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엄경흠 교수의 '한시로 읽는 김해'를 연재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김해를 다녀간 시인 묵객들은 김해를 노래한 한시를 많이 남겼다. 그 한시 속의 김해에는, 지금은 사라져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자연경관과 김해의 옛 모습이 들어 있다. 엄 교수를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지역과 한시를 함께 연구하게 된 계기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사행시(使行詩·외교를 목적으로 외국에 나가서 쓴 기행시)'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중국이나 일본에 사신으로 간 관리(문장으로 과거시험을 본 옛 관리들은 정치인이며 동시에 문인이었다)들은 외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시를 짓고, 두 나라의 관리들이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사행시는 그 나라 그 지역의 풍광, 문화와 역사, 지역 정서 등을 담은 일종의 기행시이다. 나라 안에서 여행을 하거나, 지방관리로 부임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행시를 보면 시를 쓴 당시 그 지역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지역의 한시들을 연구했나
 
▶경주와 부산의 한시를 연구해 책으로 냈다. 신라인들의 삶과 충효, 절개와 신의 등 정신적 유산이 담긴 한시 이야기는 <한시에 담은 신라 천 년의 향기>(전망 펴냄)이라는 책으로 냈다. 부산을 노래한 한시는 <한시와 함께 시간여행>(전망 펴냄)으로 출간됐다.
 

-김해의 한시를 연구하게 된 까닭은
 
▶부산의 한시를 연구하면서 지리적으로 옆인 김해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나 자신에게 '김해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낙동강으로 부산과 김해를 나누고 있지만, 사실상 부산의 '문화지도'는 김해와 겹쳐진다. 특히 부산시 사상구와 북구, 사하구, 강서지역은 김해 문화권에 더 가깝다. 지역주민들의 정서도 김해와 잘 통하는 면이 있다.
 

-'문화지도'란 무엇인가
 
▶고대문화를 보면 국가 간 부족 간의 가장 중요한 경계는 '산'이다. 옛 삼한을 이룬 마한·변한·진한도 산을 경계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산과 김해의 경계는 백양산(부산시 부산진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산. 높이 642m)으로 볼 수 있다. 김해 땅을 중심으로 동쪽은 백양산, 서쪽은 진영읍까지가 김해문화, 즉 '낙동강문화권'이다. 고대의 이 지역 지형을 살펴보면 낙동강문화권은 곧 해양문화이다. 바다를 무대로 국제적 교류가 가능했던 가야, 즉 '남해문화권'이다. 반면, 신라는 동해문화권으로 봐야 한다.
 

-김해를 찾은 고려와 조선의 시인들은 어떤 내용으로 한시를 남겼나
 
▶옛 시인들은 김해를 가야로 생각했다. 경주를 신라로 생각하고, 평양을 고구려로 생각했듯이, 그들은 김해를 가야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시인들은 대가야인 고령이나 아라가야인 함안도 방문했지만, 그 지역에서는 가야를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해를 유독 '가야'라 불렀다. 시인들의 한시는 송나라 시대 시풍의 영향을 받았다. 풍광과 감성에 중심을 둔 당나라의 시와는 달리 송시는 인간이 가진 당당한 역사를 읊는다. 시인들은 어느 지역, 어느 나라를 가든 그곳의 역사와 문화, 도덕과 윤리를 보았다. 당연히 그 지역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들이 김해를 가야로 본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심지어 그들은 김해에 와서 우륵을 떠올린다. 알다시피 우륵은 대가야인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고령 사람이다. 그러나 시인들은 고령이 아니라 김해에 와서 우륵을 말했다. 김해가 가야이고 우륵은 가야 음악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지역이든 사람이든 그 뿌리가 어디인지를 가장 먼저 살핀 시인들은 김해와 가야를 동일시했다.
 

-우리 역사에서 가야는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가야가 일본, 중국과 교류할 때 김해 앞바다는 해외 진출의 교두보였고 큰 무역항이었다. 하지만 가야의 멸망으로 바다는 잊혔다. 김해지역이 쓸모없는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다는 오히려 왜구들이 이 땅을 침탈하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조선조까지만 해도 시인들은 가야가 존재한 시기에 가야의 국력이 신라와 대등하다고 보았다. 시인들은 김해에 와서 가야인들의 자부심을 느꼈다. 고집스럽고, 거세고, 강직한 김해인들의 성품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가야인의 자부심이 녹아있다고 보았다. 가야는 현재 김해의 중요한 자산이다.
 

-시리즈 '한시로 읽는 김해'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선조들이 남긴 한시를 읽어보면 김해의 옛 모습이 되살아난다. 시의 배경이 된 자연경관과 건축물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시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시들을 통해 우리는 옛 김해를 떠올릴 수 있고, 인간의 상상력으로 다시 복원할 수 있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다. 시리즈를 통해 고려 때부터 조선 조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눈으로 본 김해의 변화상을 소개할 것이다. 독자들은 시인의 눈으로 본 김해의 옛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잊혀진 제국' 가야와 옛 시인들이 말하는 가야를, 현대인들은 시를 통해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가야'라는 단어는 빠지는 날이 없을 것이다.


>> 엄경흠은
경북 예천 출생.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아대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현재 신라대 국어교육과 교수. 저서 <한자의 원리> <한시에 담은 신라 천 년의 향기> <한시와 함께 시간여행>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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