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봉마을은 전선을 지하에 매설한 덕분에, 어지러운 전깃줄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신봉마을의 하늘은 더 깨끗하고 푸르다.

2002년 한림면 덮친 집중호우로 물바다
보름 넘는 침수로 하루아침에 이재민
새 마을 터전 잡고 시민공모 통해 새롭게 솟으라는 뜻의 이름 '신봉' 채택
여러 마을 사람들 한데 모여 형제처럼
"주민들 모일 공원 빨리 생겼으면 …"

"수해의 아픔을 딛고 모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한림면 장방리 신봉마을은 '자연'마을이 아니다. 2002년 한림면 일대를 덮친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한림면에서 침수피해의 아픔을 딛고 모인 주민들이 정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신봉마을은 자연마을 못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2년 8월 장기간 집중호우가 내려, 화포천이 범람하고 제방이 붕괴됐다. 장방·시산·가산·가동리 일대 500여 가구가 침수돼, 2천500여 명의 주민들이 인근 한림중학교 등 3곳으로 긴급 대피했다. 경전선 열차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930가구 가옥 침수, 200동 공장 침수, 농경지 720ha 침수, 도로 16곳 5천852m 침수, 하천제방 11곳 2천650m 유실 등 화포천 유역에 큰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할배들 말씀이 '큰들(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한림면 장방들)'이 물에 잠기는 건 처음 봤다 하더라고!"
 
신봉마을 김병문(65) 개발위원장이 그때 일을 떠올렸다. "한림면 일대가 바다였다. 보트를 타고 다녀야 했다. 구호품을 나눠주는 이북초등학교로 가는 길이 끊겨서 진영까지 둘러 물품을 타러가곤 했다." 박두일(52) 새마을지도자도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송기철(59) 신봉마을 이장은 당시 한림면의 의용소방대장이었다. 송 이장은 "의용소방대원들이 새벽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림면은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됐는데, 보름 남짓이나 물에 잠겨 있었다. 물이 빠지고 난 다음, 돌아간 집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의 심정을 주민들은 "참혹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침수피해를 피해 맨몸으로 집에서 뛰어나온 그대로, 다시 삶을 시작해야 했다.
 
물에 잠겼던 장방들을 김해시에서 매입하고, 침수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한해 평균지가보다 싸게 불하했다. 시는 수해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될 마을을 위해 위로와 격려, 새 희망의 의미를 담은 마을 이름을 공모했다. 300만 원의 상금을 걸고 김해시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마을 이름짓기 이벤트에서 탄생한 것이 '신봉(新峰)'이다. '아픔을 딛고 새롭게 우뚝 솟은 마을이 돼라'는 뜻이다.
 
신봉마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80가구가 입주했는데, 지금은 160여 가구 48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절반은 농사를 짓고, 나머지 절반은 회사에 다닌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고, 회사원들은 일반 입주민들이다.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니 처음에는 좀 서먹하기도 했다.
 
김병문 씨는 "이사를 오고 나서도 2~3년간은 이전의 마을에 몇 번씩 가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신봉마을에 정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두일 씨도 "여러 마을에서 모여든 주민들이라고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알던 형님들이고 아재들이고 이웃사촌들이라 금방 한 마을 사람이 됐다"고 덧붙였다.
 
신봉마을에는 공립어린이집과 사립어린이집이 있고, 인근에 초·중고교도 있다. 한림정역도 가깝다. 헬스장이며 치과와 병원도 있고, 더러 신문에 소개도 되는 맛집도 몇 군데 있다. 신봉마을은 현재 한림면에서 큰 마을로,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대한노인회 김해지회 한림분회도 이 마을에 있다. 송기철 이장은 "마을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예순 다섯 분 계시고, 노인회와 경로당이 있어 한림면의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신봉마을 회관, 경로당, 공립어린이집 사이에 작은 공원 하나가 들어설 만한 공간이 있다. 신봉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소공원 부지로 지정한 지가 4년이 넘는다"며 "새로 생긴 마을이라 다른 자연마을들의 당산나무처럼 주민들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 아직은 없다. 빨리 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마당이 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마을 주민들은 "위성방송 수신 장치를 달아야 TV를 볼 수 있다. 경남지역 뉴스가 아니라 대구방송이 더 잘 나오는데, 우리도 김해와 경남의 소식을 편하게 보고 싶다"는 희망을 덧붙였다.
 
마을을 만들 때 전깃줄을 지하에 매설한 덕분에, 어지러운 전선이 없는 장방마을의 하늘은 더 깨끗하고 푸르렀다. 그래서인지 햇살은 거칠 것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고루 비추었다. 2002년 한림면의 침수피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신봉마을은 침수피해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사는 '희망의 마을'로 김해에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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