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불황 터널 서민살이 살펴보니

김해지역의 밑바닥 경기가 심상치 않다. 경기침체에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사교육, 금은방, 간판 등의 업종마저 답이 없다는 표정이다. 김해상공회의소는 김해지역 제조업체 100곳을 대상으로 경기전망을 물은 결과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답했다고 최근 밝혔다. <김해뉴스>가 수상한 밑바닥 경기의 현장을 점검해 봤다.

"할 게 없어 그나마 식당 차렸더니…"
김해지역 신규·명의변경 한해 1700곳
5년 이상 버티는 곳 손에 꼽을 정도
영세기업들도 대기업 횡포에 긴 한숨

 
■ 업종 불문, '어렵다' 탄식
인제대 일대에서 한때 유명세를 누렸던 국밥 전문 음식점 '김해고가'는 지난해에 '김밥천국' 형태로 매장을 고쳤다. 2천500~3천500원 짜리 메뉴를 다양하게 구비한 것이다. 이 음식점 사장은 "손님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니 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다"며 "국밥은 원가가 높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난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메뉴를 바꿨다"고 털어놨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김해시지부에 따르면 김해지역에서 사업자 등록을 한 식당은 5천600여 개에 이른다. 인구를 감안했을 때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준인데, 매년 500개씩 늘어나고 있다.
 
장원규 김해시지부 사무국장은 "장사가 잘 돼서가 아니라 할 게 없어서 식당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신규 또는 명의변경 업소가 한 해 1천700곳이나 되기 때문에 5년 이상을 버티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도와주기는 커녕 가격표를 가게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하라고 하고, 담배를 피우도록 놔두면 과태료를 물릴 예정이라고 한다. 게다가 혼자서 운영하는 식당들이 많은데, 해마다 교육 받으러 오라고 하고 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린다"고 꼬집었다.
 

▲ 지난 18일 메가마트 김해점을 찾은 고객들이 '핫 세일' 매장에서 생활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부원동에서 금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 조 모(37) 씨는 "귀금속 거래가 불황에 강하다는 속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가격이 아니라 거래량이 중요하다. 보다시피 금은방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 않느냐"며 "금값이 계속 오르는 바람에 7년 전에는 3.75g(한 돈쭝)에 9만 원 하던 순금이 지금은 25만 원 하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래가 뜸해서 재미가 없다"고 전했다.
 
간판업체도 사정은 매한가지이다. 김해시 옥외광고협회에는 57개 회원사가 소속돼 있다. 회원사들은 "단군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해시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도 "붓으로 쓰던 시절에도 현수막 하나에 5만 원 했는데 요즘은 4만 원 한다. 간판 크기도 작아지는 추세이고, 크게 하는 곳은 타이어 판매점 뿐인데 이마저도 고급스럽게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진례면에서 조선기자재 납품업을 하는 곽 모(34) 씨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군림하려 들거나 단가를 후려치는 식의 횡포를 부려 영세 사업장을 괴롭히는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다른 일을 제쳐두고 통영의 한 조선소에서 작업을 했다. 부품을 납품한 거래처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자신을 부른 탓이었다. 곽 씨는 "선주가 배를 살피다가 부품이 15㎝ 길게 나온 걸 보고 고쳐달라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실수이지만 납품 당시에 알려줬더라면 쉽게 해결됐을 것이다. 자기들도 검수를 잘못한 책임이 있고, 직접 잘라도 되는데 만만한 게 하청업체라 함부로 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갑 얇아진 소비자들도 '알뜰구매'
소포장 제품·할인코너 이용 크게 늘어
소주도 업소용보다 가정용 판매 증가
자금난 중기 명절 앞두고 체임 급증

■ 소비 문화, 알뜰 패턴으로 변화
높은 경기침체의 파고 탓에 소비패턴도 확연히 바뀌고 있다.
 
홈플러스와 메가마트 등 대형 유통점에서는 소포장 상품이 대세다.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유통과정에서 포장이 손상된 물건을 취급하는 '알뜰 구매코너'의 반응이 뜨겁다. 박기덕 홈플러스 김해점 홍보판촉담당은 "가정주부들은 저녁식사 조리시간 전에 방문을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은 일부러 오후 8시 이후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 시간대에는 알뜰구매코너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신선식품을 고를 수 있고, 포장이 완전치 않더라도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 상품을 살 수 있어 알뜰 소비족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안태 메가마트 마케팅팀장도 "최근 들어서는 대용량 제품보다 그때 그때 꼭 필요한 소포장 제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회식문화도 예전에 비해 조촐해졌다. 지난 19일 어방동과 삼계동 유흥가는 추운 날씨까지 겹쳐 한산한 모습이었다. 상당수 술집들은 자정 전에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문을 닫는 모습이었다.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은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모텔촌과 노래방은 주말인데도 빈 자리가 많았다.
 
안춘기 ㈜무학 김해지점장은 "우리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 매출로 경기 변동을 짐작하기가 어렵지만, 술 시장 전체를 보면 위스키와 전통주 소비가 줄고 소주 비중이 늘고 있다"며 "특히 업소 소비 비중이 줄고 가정용 판매 비중이 커지는 등 경기침체 탓에 술 소비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장병학(34) 씨는 비용 부담 등을 감안해 되도록 술자리를 피하고 기타를 배우는 등 취미생활에 주력하고 있다. 부원동의 술집 겸 문화공간 '부뚜막 고양이'에서는 매달 10명 안팎의 수강생들이 모여 기타 연습을 한다. 한 달 10만 원 이하의 비용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기타를 가르치는 김충도(41) 씨는 "커피와 오뎅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반적이고, 특히 음식물을 가져와서 먹어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전했다.
 
진영돈 고용노동부 김해고용센터 취업지원팀장은 "우리는 경기가 나쁘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데 요즘의 사정이 그렇다"며 "공공근로나 야외 사업장이 쉬는 계절적 실업기간이라서 문의가 많은데다, 지역에 영세업체가 많아 설 명절을 앞두고 체불 문의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안동의 한 중소기업인은 "경기침체가 소비악화로 이어지면 돈이 돌지 않아 경기침체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초래된다. 특히 김해는 영세기업이 많고, 양질의 직장이 부족한 편이다"면서 "중소기업들은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대기업보다 강하고, 이는 지역경제가 동맥경화에 걸리는 결과로 이어지므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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