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김해문화의전당(이하 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당시, '부산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부산에는 '세계 4대 뮤지컬'(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미스 사이공·캐츠 등으로, 규모와 작품성·흥행·작품의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세계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인정했다는 의미)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을 공연할 만한 무대가 없었던 것이다. 부산에서는 부랴부랴 부산문화회관을 리모델링했고, 2012년이 되어서야 이 작품을 공연할 수 있었다. 사실, 전당 무대는 전국적인 수준이다. <김해뉴스>가 전당의 주 무대인 '마루홀'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예상대로, 아름답고 화려한 무대시설과 조명, 온 몸으로 느껴지던 음향을 만들어 내는 각종 장치와 그 장치를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연작품 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 측면에서 바라본 마루홀 무대. 사진 왼쪽에 음향반사판, 천장에는 상부그리드에 설치된 장치봉을 움직이는 와이어 로프가 보인다. 김병찬 기자 kbc@

조명·음향·무대기계 세 분야 전문가들
개관 1년 전부터 각종 공연시설 점검
외국 신기술 익히고 접목 최상위 수준
김환기 화백 '매화 항아리' 저작권 계약
손으로 6개월간 짠 대형 무대막 압도적

■ 공연장 내부 장치와 시설
큰 규모의 공연장은 어떻게 지을까. 대부분 외관을 쳐다보기 마련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장 내부의 장치와 시설이다. 보통 공연장에서는 설계와 건축이 마무리될 즈음, 무대 운영인력을 뽑는 게 상례다. 무대 운영인력은 개관을 몇 달 앞두고서야 조명·음향·무대기계의 설계와 배치 상태를 점검하는데, 잘못이 있으면 이를 아예 뜯어고치는 사례도 허다하다.
 
전당에서는 개관 1년 전에 무대 운영인력을 뽑았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1년 동안의 인건비?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추후에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보다 처음부터 전문인력이 함께 일을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비용도 더 절감된다는 사실을 국내외 각 공연장들의 신축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다. 조명·음향·무대기계 세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렇게 개관 1년 전부터 전당의 공연시설을 점검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력서에는 김해시 건축과 근무 경력이 들어간다. 전당이 개관하기 전이었으니, 전당 건축 관리감독 부서에 소속됐던 것이다. 이들은 미국, 유럽 등 외국의 공연시설들을 둘러보며 새로운 기술과 사례들을 익혔고, 귀국 후 전당에 그 내용을 접목했다. 개관 8년을 맞은 지금도 전당의 시설이 국내 어느 극장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이유는 그 덕분이다.

■ 예술작품 무대막
일반 관객들은 전당의 주 공연장인 마루홀에 들어섰을 때, 무대막이 내려와 있는 걸 보게 된다. 공연의 장르에 따라 볼 수 없을 때도 있는데, 보게 된다면 옆 사람에게도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흰 항아리를 배경으로 매화가 피어있는 고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작품 '매화 항아리'가 무대막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가로 21m, 세로 13m의 이 무대막은 전당의 상징이다. 매화는 김해의 시화이고, 흰 항아리는 김해의 분청도자기를 상기시킨다. 이 무대막은 태피스트리(다채로운 선염색사로 그림을 짜넣은 직물)로 제작됐다. 씨실, 날실을 그림의 색으로 염색하고, 무대 크기에 맞춰 사람 손으로 직접 짠 것이다. 이 무대막 제작에만 장장 6개월이 걸렸다. 당시만 해도 예술 작품을 무대막으로 설치한 경우는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김해문화의전당 정도에 불과했다. 세종문화회관에는 김병종(1953~. 서울대 미술대학장) 화백의 그림이 무대막으로 설치되어 있다. 당시 개관기획단에서 일한 이영준 전시교육팀장은 전국을 돌며 무대막을 살펴보았다. 이 팀장은 "전국의 무대막을 살펴보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듭했다. 어느 날 문득 김환기 선생의 작품 '매화 항아리'가 떠올랐는데, 마침 김해의 이미지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전했다. 서울 '환기미술관'에서 저작권 사용 계약을 한 후, 이 그림은 전당 무대막으로 채택됐다.

말굽 형태의 객석, 무대와 친숙도 높아
옆·앞뒤·위아래 작동 입체적 무대 구성
128개 조로 이뤄진 장치봉·스크린 막
클래식 공연용 3단계 음향반사판 72t
1000여개 조명등 가슴벅찬 감동 선사

■ 말굽 형태 극장
관객들은 좌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잘 못 느끼겠지만,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면 큰 말굽 형태의 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3층까지의 객석 수는 1천464석이다. 1층은 846석(관현악 연주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 106석·휠체어석 10석 포함), 2층은 323석(휠체어석 6석 포함), 3층은 295석이다. 마루홀의 총 무대 면적은 4천968.78㎡(1천503.05평)이다.

■ 장치봉·무대기계·이동식 무대
마루홀 무대에는 입체적인 무대 구성을 위해 옆으로 이동하는 무대, 앞 뒤로 이동하는 무대, 위 아래로 이동하는 승하강무대, 회전무대 등이 있다.
 

▲ 상부그리드에서 내려다 본 장치봉은 모두 128개조이다.
마루홀 천장에는 장치봉 55개와 스크린 막 등 총 128조의 무대기계가 설치돼 있는데, 장면들을 순식간에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장치봉은 와이어 로프로 움직이는데, 무대 바닥에서 35m 공중에 있는 상부그리드에 매달려 있다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무대의 핵심인 셈이다. 공연 중에는 무대기계 팀원들이 제어실·상부그리드·측면갤러리에서 그 장치봉을 지켜본다. 기자는 상부그리드에 직접 올라가 보았다. 바닥은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철구조물이었는데, 수많은 와이어로프와 장치봉들 아래로 무대가 까마득히 멀리 보여 현기증이 다 났다. 마치 거대한 기계의 심장부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마루홀 무대의 핵심"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 1년간의 시뮬레이션 테스트 거친 음향
마루홀의 음향시설을 설치할 때는 어떻게 하면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 지를 두고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했다. 우선 실제 마루홀을 10분의 1로 축소 제작했다. 객석의 의자도 축소 제작했고, 모형 내 공기도 10분의 1로 압축했다. 의자의 재질과 모형의 소재는 실제 사용할 것들로 몇 번씩 바꾸어 제작해 가며 테스트를 계속했다. 이 테스트를 1년 동안 거치면서 설계를 변경 보완한 후에야, 마루홀의 마감재와 의자의 소재가 정해졌다. 불필요한 울림을 제거하는 마루홀 천장의 흡음배너도 그렇게 해서 설치됐다. 이 시뮬레이션 테스트는 국내에서는 첫 사례였다.
 
클래식 공연 때마다 설치되는 음향반사판은 삼단계의 구조물이다. 전체 무게는 72t이나 된다. 이 무거운 구조물은 사람이 설치할 수가 없다. 따라서 기계로 설치한다. 무대에는 음향반사판을 위한 레일이 별도로 놓여 있다. 음향반사판은 이 레일을 따라 한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설치된다. 무대에 레일기동형 음향판사판이 설치된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전당 마루홀이 유일하다. 덕분에 이 무대에서 연주를 한 국내외 유명연주자들의 공연만족도는 매우 높다. 마루홀의 음향설계는 국내 전문가들의 관심도 많이 모았다. 논문 <김해문화의전당의 사례를 통한 다목적홀의 음향설계>(2008, 김정준 외. 한국소음진동공학회)를 비롯해 여러 논문들이 발표된 바 있다.
 
음향은 설치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마루홀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겠지만, 음향 조정 박스는 맨 마지막 객석 뒤에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 때는 배우들이 핀 마이크를 꽂은 채 무대를 뛰어다니는데, 관객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음향을 조정하기 위해 객석 뒤에 설치한 것이다.

■ 무대 위에 그리는 그림, 조명
무대와 객석까지 조명등이 다 켜지면 1천여 개의 조명등이 불을 밝힌 것이다. 객석의 조명등은 그렇다 치고, 무대 조명은 그야말로 무대를 빛내기 위한 디자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명 디자인을 위해 무대조명팀은 공연팀의 연습장면을 직접 보고 온다. 공연팀 못지 않게 대본을 분석하고, 공연팀과 의견을 맞추어 작업을 한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루 종일 조명작업을 했는데, "조명이 조금 비틀어졌으니, 다시 맞추어 달라"고 하면 10m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명등을 다시 맞춘다. 그런데, 그 각도가 아주 미세한, 몇 ㎜라고 말하기도 뭣한 그런 차이다. 무대조명팀은 조명 제어실에 설치된 조명기계 500개의 위치와 각 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다. 500개의 기계에 붙은 번호는 순차적이 아니라 뒤죽박죽 왔다갔다 한다.
 
공연 당일이 되면 무대감독은 각 팀에서 세팅해 둔 무대, 조명, 음향을 총 점검한다. 실제 공연이 시작되면 모든 것은 무대감독의 지시 하에 이루어진다. 고생하며 연습한 공연팀들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관객들의 가슴에 감동이 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된다.

개관 8년…트렌드 맞춰 업그레이드 지속
"가장 창의적이고 안정적 공간 위해 최선"


■ 창의적이면서 안정적인 공간, 무대
조일웅(41) 무대운영팀총괄팀장은 "김해문화의전당은 개관 8년째를 맞았지만, 시설이 여전히 수준급"이라며 "기계를 무조건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기술의 트렌드 변화에 따라 평소에 일부 보강을 하고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온 덕에 다른 극장들과는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루홀 객석에 앉아 뮤지컬을 보면서 빈틈없는 무대전환과 화려한 무대에 감탄하고, 가수들의 노래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악기의 선율에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던 그 황홀한 경험들을 떠올려 보시라. 그 감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대 뒤에서는 이토록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무대는 가장 창의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워야 하고, 정확해야 하고, 그리고 안전해야 하는 곳이 무대입니다."

▲ 김해문화의전당 무대를 지키는 김수홍, 이찬우, 조일웅, 정원현, 김일용 씨.(왼쪽부터)

무대를 만들어내는 숨은 주인공들

무대운영팀의 일과는 점검, 점검, 그리고 또 점검이다. 점검매뉴얼에 따라 공연 전후 점검, 월별 점검, 반기별 점검, 공연이 없을 때는 '작정하고 점검'이다. 무대기계, 음향, 조명 팀원들이 모여 무대기술회의 및 교육도 정기적으로 한다. 다른 분야를 알아야 무대 운영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 무대"라는 그들, 고충도 물론 있다.

무대조명 주문 하도 까다로워…
▶김수홍(41) 무대조명감독=조명을 디자인할 때, 일몰과 일출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하도 복잡한 주문이 많아서 아침 해가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의 조명을 전부 필터로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아직 한 번도 그대로 하자는 팀이 없었어요. 경쾌한 느낌이 나는 조명, 이런 주문 멋~있잖아요.(웃음)

마이크 설치 때 코를 막는 경우도
▶김일용(40) 무대음향감독=마이크 설치 때문에 출연자들한테 가장 가까이 가야 하죠. 유명한 분들을 가까이에서 봐서 좋기도 하지만, 외국인 연주자들이 모두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할 경우 특유의 체취가 있어 좀 힘들기도 하죠.

제가 관음증 환자도 아닌데, 그 참
▶정원현(32) 무대기계감독=제어실이 무대 측면에 있습니다. 발레 공연 때, 무용수들이 빨리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만든 '퀵 체인지 룸'이 제어실 바로 아래에 설치된 적이 있거든요. 전, 무대를 열심히 보면서 무대 작동에만 신경 쓰고 있는데 옷 갈아입는 무용수하고 눈이 마주친 적이 있어요. 허, 참! 무용수들 옷 갈아 입는 거 볼 틈도 없어요. 무대 신경 쓰느라 초긴장 상태인데…쓸데 없는 오해들 마세요."

40억원짜리 바이올린 맡았다가…
▶이찬우(37) 무대감독=공연 중에는 항상 무대 바로 옆에서 대기합니다. 무대 위의 상황을 각 팀에 즉시 즉시 연락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언젠가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잠깐 들고 있으라는 겁니다. 근데, 그 바이올린이 40억짜리라는 거예요.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손까지 덜덜 떨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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