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동 남광식당의 떡국. 큼지막하게 어슷썰어 투박하면서도 익숙한 맛에 '피식' 하고 반가운 웃음이 절로 난다.

백석의 시 '두보나 이백같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이국땅에서 명절을 맞은 쓸쓸함을 토로하던
시인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음식은 가끔 그 자체로 상징일 때가 있다.
그깟 떡국을 안 먹어도 어김없이 새해는 밝아온다.
하지만 떡국 한 그릇조차 못 먹고 명절을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 쓸쓸함과 객고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번
설날을 전후해서는 어떻게든 떡국 한 그릇 정도는 드시기를 기원한다.
백석이 그랬고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떡국'이라는 키워드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기업이나 사회단체 등이 저속득층이나 소외계층에게 떡국떡 선물을 나눠주거나, 떡국을 직접 끓여 대접했다는 기사가 수도 없이 뜬다. 행사를 주관했던 기업이나 단체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거의 여과없이 보도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어쨌거나 훈훈하다. 시대가 바뀌고 그에 따라 형식도 바뀌었지만 떡과 떡국은 여전히 나눔의 상징이고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음식이다.
 
밥이 주식으로 자리잡은 것은 고려시대 이후의 일이다. 밥 이전에는 떡이 주식이었다. 도정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대문에 돌확에 곡물을 갈아 거친 가루를 만든 후 찌는 조리법을 사용하는 떡이 오랜 세월 이어졌다. 이때는 씨족 중심의 생활단위였기에 마을공동체가 곧 '한 집안'이었다. 밥은 가족끼리 나눠 먹는 음식이지만 떡은 마을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음식이었다. 명절을 비롯해 백일, 돌, 결혼식, 회갑연, 심지어는 이사를 해도 친지와 이웃에게 떡을 돌리는 풍습은 밥이 주식이 되기 이전 공동체생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 기업과 사회단체가 설날에 떡국을 나누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떡국은 설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차례를 지내건 안지내건, 손님치레를 하건 안하건 설날 떡국은 반드시 챙겨먹는 음식이다. 설날 당일 뉴스에는 으레 이런 영상이 첫머리를 장식한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은 한 가족이 차례를 지내고 어르신들께 세배를 한다. 그리고는 다 함께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을 맛있게 먹으며 새해 덕담을 나눈다. 수십 년째 변함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세상 모든 가족 혹은 개인의 설날 아침 풍경은 아니다. 돌아갈 고향이나 가족이 없는 이들, 고향과 가족이 있어도 사연이 있어 가지 못하는 이들, 혹은 어쩌다 보니 외롭게 설날을 보내야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조차도 설날을 전후해서는 '그래도 떡국 한 그릇 정도는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맛있는 떡국을 만날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 봤다.
 

■ 봉황동 남광식당
김수로왕릉 건너편의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인 남광식당은 본보 지면(2012년 10월 17일자 15면 보도)을 통해 짬뽕과 볶음짬뽕이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남광식당이 겨울이면 계절 메뉴로 떡국을 낸다. 중식당에서 떡국이라니, 뭔가 좀 어색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맛있는 우동이나 짬뽕을 만들기 위해서는 볶음 솜씨도 좋아야 하거니와 기본 육수가 탄탄해야 한다. 중식당에서 사용하는 육수는 닭이나 돼지뼈를 사용해서 만든다. 볶음밥에 딸려 나오는 우동국물을 생각하면 된다. 남광식당은 이 국물이 순하고 개운하다. 그러니 떡국 국물로도 안성맞춤이다. 떡이야 어차피 방앗간에서 만드는 것이니 중식당에서 떡국을 낸다 해서 그닥 명분 없는 구색도 아닌 셈이다.
 
남광식당의 떡국은 식당의 모양새 만큼이나 투박해 보인다. 뽀얀 국물에 떡을 넣고 계란을 풀고 마무리로 김가루와 깨를 넉넉히 올렸다. 떡도 각도를 넓게 잡아 어슷썰기한 탓에 그닥 볼품이 없다. 하지만 한술 뜨면 왠지 모를 정겨운 느낌에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익숙해서 맛있는 건지 맛있어서 익숙한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굉장히 익숙한 맛임에는 분명하다. 바닥에는 다진 소고기도 제법 많이 깔려 있어 먹으면 먹을수록 국물맛이 진하게 우러난다. 투박하긴 해도 맛으로만 보자면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고, 살짝 중독성까지 있는 맛이다.
 
국밥에 김치만한 반찬이 없듯 떡국 역시 김치 하나면 족하다. 남광식당의 잘 익은 김치는 떡국만큼이나 정겨운 맛이다. 둘의 궁합이 좋으니 순식간에 바닥을 보인다. 떡국 자체가 의외로 열량이 높은 음식인데다 양까지 넉넉하니 먹고 나서 한참 동안 포만감이 지속된다. 설날 전후는 물론이고 겨우내 가끔 찾고 싶은, 아니 그냥 일년 내내 팔았으면 좋을 것 같은 그런 메뉴다.
>>김해시 봉황동 392의 3, 055-336-7667)
 

■ 봉하마을 둥지식당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 봉하로 돌아와 시작한 친환경생태농업이 이제는 제법 정착단계로 접어들었다. 봉하쌀은 유기농·무농약 친환경농산물 인증에 이어 농산물이력추적관리와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 등을 통해 맛과 품질을 두루 인정받고 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생산량이 많지 않아 노무현재단 회원들에게 판매할 물량조차 부족했지만, 지금은 생산량이 늘어 일반 판매는 물론이고 떡·막걸리·엿·튀밥·강정 등 다양한 가공식품까지 출시하고 있다.
 

▲ 봉하쌀로 만든 봉하마을 오색 떡국떡.
특히 봉하마을에 있는 둥지식당에서는 지난해부터 친환경 봉하쌀로 만든 떡국을 판매하고 있다. 멸치·새우·황태 등을 우려낸 국물에 지난 가을에 거둔 햅쌀로 만든 떡이 들어간 떡국은 봉하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임에 분명하다. 달걀을 국물에 풀지 않고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지단을 만들어 올리는 등 나름 모양새를 갖추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총각김치·파래무침·두부전이 곁들여진 상차림 역시 깔끔하다.
 
▲ 총각김치와 파래무침 두부전이 곁들여진 둥지식당 떡국 상차림.
무엇보다 질 좋은 햅쌀로 만든 떡이 훌륭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우선 입에 착착 감긴다. 묵은 쌀에서 나는 군내가 전혀 없고, 오히려 잘 지은 밥에서 나는 구수한 향과 단맛까지 살짝 돈다. 하지만 음식은 자고로 균형이 맞아야 하는 법. 떡의 품질이 너무 좋으니 국물의 부족함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진다. 뒷끝에 쓴맛이 살짝 돌고 해산물 육수 특유의 비린내까지 비친다. 떡의 향과 맛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국물을 좀 순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나들이 삼아 봉하마을을 둘러본 다음에 먹는 떡국은 봉하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각별함이 아닐까 싶다. 봉하장터 직매장에서는 백미로 만든 떡국떡과 자색고구마·쑥·백련초·치자 등으로 색을 낸 오색떡국떡을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0의 3, 055-344-0077)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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