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사람들 심성이 어질면 마을 이름이 '인현'이겠어요."
 
김해대로(14번 국도)를 타고 삼계에서 진영 방면으로 가다 보면 명동정수장을 지나 인현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인현마을이다.
 

▲ 마을 할머니들의 여름 쉼터인 팔각정, 그 오른편 작은 정자는 할아버지들의 쉼터이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진양 강씨·동래 정씨 정착해 마을 이뤄
삼거리 옛 주막 문패도 '강정지' 붙여
명동저수지 가까워 물 걱정 없이 농사
남녀 구분한 팔각정과 정자 이색 풍경

인현마을 노인회 정규출(80) 회장은 대뜸 '주막'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예전에 저 삼거리에 '강정지 주막'이 있었지. 오가는 길손들과 장꾼들이 목을 축였고, 국밥도 시켜 먹었어. 어른들한테 들은 말로는 우리 마을이 진양 강씨와 동래 정씨 일문들이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는데, 그 성씨를 따 주막 이름을 '강정지'라 붙였다더군. 초가집 주막이었지. 막걸리를 직접 담가 팔았고. 내가 군대 갈 무렵만 해도 있었는데, 14번 국도가 나면서 주막도 사라졌어. 주막집 아들이 내 친구였지."
 
마을 사람들이 벼와 보리농사를 짓다 힘이 들면 주막에서 막걸리도 한 모금씩 했느냐고 물었더니 정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어데. 우리 마을 사람들은 술추렴도, 술주정도 없어. 얼마나 점잖고 어진 사람들인데."
 
인현마을은 '인티고개' 아래에 있다고 해서 한동안 인티라 불리다가, 인현(仁峴)으로 마을 이름이 정착됐다. 인티고개는 인현삼거리 앞에 있는데, 마을 이름에 그 유래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마을에는 현재 100가구, 12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을 바로 옆에 명동저수지가 있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어 온 마을이다. 정 회장은 "비가 안 와도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의 물도 맑다. 송점복(56)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2년째 하천살리기에 힘쓴 후, 조개와 물고기, 도룡뇽이 돌아왔다. 수질검사에서 지하수보다 맑은 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송 이장은 또 "마을 주민자치회는 최근 음식물쓰레기를 자원화하기로 했다. 부엽토를 넣어 액체비료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 모두가 나섰다"고 밝혔다. 송 이장은 마을 이장을 연임하고 있는데, 그 기간을 합치면 10년이나 된다. 송 이장의 부인 이미옥(55) 씨는 할머니들이 장을 보러 김해 시내나 진영으로 갈 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보건소나 병원에 갈 때, 기꺼이 승용차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간다.
 
현재 인현마을에는 자녀들을 외지로 내보낸 노인 세대가 주로 남아 있다. 성별로는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보다 더 많다. 그래서인지 경로당에서도,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도, 할머니들이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한다.
 
▲ 마을입구에 있는 인현마을 회관에서는 오가는 사람들이 훤히 보인다.
마을회관 앞에는 포구나무와 느티나무가 사이좋게 서 있다. 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데, 나무 아래에는 정자가 나란히 두 채 서 있다. 포구나무 아래에는 김해시의 지원으로 지은 '팔각정'이 있고, 느티나무 아래에는 그 보다 작은 '정자'가 있다. "할머니들이 팔각정의 자리를 먼저 차지하면… 남녀가 유별한데 같이 앉을 수 있나. 마을 어르신들이 나서서 할아버지들이 쉴 곳을 옆에 하나 더 지었지." 할아버지들이 팔각정과 정자에 얽힌 사연을 설명했다.
 
두 정자에는 선풍기도 놓여 있다. 한여름 낮에 바람이 안 불 수도 있는데, 이를 염려해 팔각정에는 주민 안병길(72) 씨가, 정자에는 한 주민의 자녀 중 부산에 있는 아들이 선풍기를 각각 기증했다. 안병길 씨는 퇴직 후 인현마을로 귀촌한 지 10년째 된다. 진해에서 살았는데, 인현마을이 좋아 이곳에 왔다. 안 씨는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마을에 왔으니, 처음에는 많이 갑갑했지만, 어느새 정이 들었다. 주말마다 우리 마을에 와서 마음껏 뛰노는 손주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참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있는데 마을회관 안으로 외국인 근로자 두 명이 들어섰다. 어르신들께 꾸벅 인사하는 품이 우리와 똑 같았다. 지금 이 마을에는 외국인 근로자 14명이 세입자 겸 주민으로 살고 있다. 태국에서 온 위루(43) 씨는 "고향에 부모님, 아내, 두 아이가 있어요. 돈 많이 벌어 고향에 돌아가야죠"라며 서툰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위루 씨와 그 친구들은, 인현마을 어진 어르신들에게는 그저 '착한 우리 마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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