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보건진료소 전경.
김해 시내에서 생림면 도요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큰 차가 도저히 다닐 수 없을 것 같이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몇 번이나 지나게 된다. '무척산'이라는 푯말이 보일 때쯤부터 특히 그렇다. 이때쯤이면 버스에 남은 사람도 몇 없다. 도심의 도로 한 가운데를 씽씽 달리던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북이 걸음이다. 그렇게 무척산을 곁에 두고 신안마을, 안양마을, 양지마을을 차례로 지나면 도요마을이다.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도요보건진료소'이다. 얼핏 봐서는 마을회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소박하다. 커다랗고 '삐까뻔쩍'한 '최첨단'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기 십상인 각종 병원들과 달리, 일단 마음이 편안해진다. '환자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 도요마을 할머니들과 김필순 소장이 담소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렇듯 도요보건진료소는 마을의 유일한 '병원'이자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어서 오이소, 들어 오이소." 분명히 간판은 '보건진료소'인데 입구에서부터 할머니들 한 무리가 사람을 맞는다. 처음 진료소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어리둥절해질만 하다. 밖에서 누군가가 주저주저하고 있으니 할머니들이 "빨리 들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낯선 사람이라도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할머니들끼리의 대화가 다시 이어진다.
 
"우리는 여기 소장님이랑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지예. 마 맨날 여(기)서 이래 놉니더." 김귀자(70) 할머니가 말했다. 탁자에 가득 쌓인 사탕과 귤 등 간식이 눈에 들어온다. 이날(2월 9일)은 홍태순(76) 할머니가 직접 만든 식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다들 "식혜가 참말로 맛있다"고 입을 모으더니 얼른 한 잔 마셔보라고 권한다.
 
도요보건진료소는 현재 김해 내 유일한 보건진료소다. 10년 전만 해도 총 6개의 진료소가 있었지만, 구조조정을 하면서 나머지는 전부 사라졌다. 도요보건진료소가 세워진 지 20년도 훌쩍 넘은 지금, 진료소는 '아픈 몸을 고쳐주는 곳'일뿐 아니라 '도요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 진료실에서 치료받는 모습(왼쪽) 5년 전 새로 만든 진료소 내 찜질방(오른쪽).
도요마을 할머니들은 매일 아침 10시만 되면 보건진료소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후 1시쯤 점심식사를 하러 흩어지고, 식사 후 다시 진료소에 온다. '모이자'고 약속을 한 사람도, 오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다. 아파서 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렇게 모여서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온다. "마을회관도 있지만, 여(기)가 더 따뜻하고 좋습니더. 저기 보면 찜질방도 있고요."
 
정말로 진료소 한 켠에 '찜질방'이 있다. 5년 전 진료소를 다시 지으면서 만들었는데, 전기만 올리면 20분 이내로 따뜻해진다고 한다. 날씨가 아주 추울 때는 할머니들이 찜질방에 옹기종기 앉아 시간을 보낸다. 진료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김필순(48) 진료소장은 "할머니들이 안 오시는 날에는 진료소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적응이 안된다"며 웃었다. 가끔 할머니들끼리 열띤 토론을 펼치다가 의도치 않게 다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왁자지껄 사람사는 것 같아 재미있단다.
 
사실 김 소장도 5년 전까지 도요마을주민이었다. 1993년 이곳으로 발령을 받아 오면서부터 관사에서 쭉 살다가, 5년 전 진료소 공사 때 가족과 함께 삼계동으로 이사를 갔다. 마을에 할머니들이 많으니 아이들을 키우기는 수월했다. 김 소장이 진료에 바쁠 때는 마을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챙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애들은 사실상 여기 할머니들이 다 키웠다고 봐야해요"라고 말했다.
 
도요보건진료소에 매일 이렇게 할머니들이 모여들고, 김 소장도 싫은 내색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20여 년 동안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꾸준히 쌓여왔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소장님' '주민들(혹은 환자들)'로만 생각하지 않고 도요마을이라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김 소장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신뢰는 특별하다. 비록 나이로 따지면 김 소장이 '막내동생'이긴 하지만. 할머니들은 "'김 소장이 아픈 곳도 잘 보고 잘 고치고 약도 잘 짓는다"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한 마디로 '용하다'는 말이다. 김상남(81) 할머니는 "예전에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영 마음에 안들어서 여기 진료소에 다니겠다고 말하고 일주일 만에 퇴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몸이 아플 때 외에도 김 소장을 자주 찾는다. 얼마 전에는 마을에서 가장 어르신인 송채선(97) 할머니가 "소장, 수도 좀 볼 줄 아는가"하고 그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평소에는 냉장고나 가스렌지 등을 고쳐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다. 진짜 고장이 났다기보다는 할머니들이 작동을 잘 못 해서 그런 경우가 많아, 보통 간단하게 해결된다.
 
김 소장은 "여기 할머니들은 우울증이란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럴만도 한게, 하루종일 이웃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데 심심할 틈이 어디 있으며, 우울할 틈이 어디 있을까. 아파트에 갇혀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도시 노인들보다 이곳 노인들의 행복지수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한 쪽에서는 할머니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진료소에 모여앉은 할머니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유난히 뽀얗고, 반짝반짝 윤이 나고, 발그레하게 홍조를 띄고 있었다. 각자의 얼굴에 '행복하다'는 글자가 쓰여 있는 듯했다. 아하, 그제서야 도요보건진료소가 아픈 몸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까지 치료하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것도 앉아서 함께 노는 것만으로 치료가 되는, 정말 '용한' 진료소였다. 


 

▲ 김필순 소장이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출근한다기보다 소풍오는 느낌이예요"1993년 발령받아 '도요 지킴이' 19년째

마을 품에서 결혼하고 출산·육아 다 해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지켜가야죠"

김필순 소장은 충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부산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1991년 창녕의 한 보건진료소로 첫 발령을 받았다. 외진 마을이었지만 김 소장은 "마을 주민들, 동료들과 어울려서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고 회상했다.
 
김 소장이 도요보건진료소로 온 것은 1993년 1월. 처음 왔을 때 처녀였던 그는 그동안 도요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두 아이들은 '그냥 막 키웠다'. 학교에 보내는 것 외에 공부 때문에 유난을 떨지 않았다는 말일 테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 대학입시가 가까워지자, 김 소장도 교육문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의 가족이 5년 전 도요를 떠나 삼계로 갔던 이유 중에는 교육문제도 컸다.

도요보건진료소는 김 소장 혼자 맡고 있다. 생림면 25개 마을 중 도요마을과 안양마을을 관할한다. 그는 진료소에서뿐 아니라 마을회관 등으로 직접 출장을 나가 방문진료도 한다. 이 때문에 한 번씩 진료소를 비워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방문진료 갑니다. 전화주세요."라고 직접 쓴 안내판을 걸어놓고 나간다. 물론 이때도 할머니들이 진료소에서 놀 수 있도록 문은 열어 둔다.
 
김 소장은 앞으로도 도요보건진료소를 쭉 지킬 계획이다. 그는 "매일 아침 도요보건진료소로 오는 일이 출근이라기보다는 소풍을 오는 것 같이 느껴진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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