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정방의 '불향'과 '볶음 솜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요리들. 사진/ 김병찬 기자kbc@gimhaenews.co.kr
지인의 소개로 부원동에 있는 중식당 한 곳을 찾았다. 지난 2월에 문을 연 '수정방'은 무려 300석 규모를 갖춘 대형 식당이었다. 유래 없는 불황에 식당들마다 생존 자체가 힘겹다고 아우성인 이때, 대체 누가 이런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식당을 소개한 지인의 말이 뜻밖이다. "김해에서 이 집 짜장면 한 번 안 먹어 본 이가 없을 것이다. 아마 당신도 먹어 봤을 걸."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없다.

언젠가 <김해뉴스> 회의실에서 어디서 배달되어 온 것인지도 모르고 먹었던 짜장면이 이 집 '물건'임을 확인한 것은 '수정루'의 20여년 남짓한 역사를 들은 다음이었다.

수정방은 지난 21년간 부원동에서 수정루라는 중식당을 운영했다. 작은 식당이었지만 배달을 담당하는 직원만 5명을 둘 정도로 호황이었다. 부원동 인근에서 "짜장면이나 배달시켜 먹지" 하면 곧 수정루였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김해에서 짜장면 배달로는 최고의 매출을 올렸던 식당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민감한 통계는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 서종수 대표.
이 정도 규모의 중식당이라면 부원동보다는 장유면이나 내외동 등 대규모 아파트가 밀집한 곳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수정방의 서종수(45) 대표는 "오늘의 수정방이 있기까지 수정루를 키워준 고객들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정방은 수정루가 있던 곳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았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던 '중국집'이 어엿한 '중화요리전문점'으로 거듭났건만 여전히 배달도 한다. 배달전용 전화 역시 같은 번호를 사용한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를 두고 '입지전적 인물'이라 한다. 외식업의 경우 창업 후 2년 이내에 문을 닫는 확률이 80%이다. 나머지 20% 역시 영업이익 등을 따져보면 남는 장사라기보다는 겨우 현상유지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에서 20대 초반에 시작한 식당을 21년만에 10배 이상 규모로 키웠으니 서 대표는 '입지전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좀 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숨어 있다. 이야기는 2003년 전국에 걸쳐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혔던 '태풍 매미' 직후로 거슬러간다. 서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수해복구 현장의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끼니를 제공하는 것밖에 없으니 열심히 짜장면을 만들었다. 한국인이 하루에 600만 그릇 이상 먹어 치우는 짜장면의 위력은 수해복구 현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짜장면은 단지 한끼 식사를 넘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이고 격려였다.
 
이를 계기로 봉사의 보람을 깨달은 서 대표는 이후 맹렬하게 '짜장면 봉사'를 실천했다.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짜장면 한 그릇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짜장면을 만들 수 있는 장비도 갖췄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김해중앙로타리클럽에서 수여하는 '로타리 봉사상'도 수상했다. 이때 받은 100만 원의 상금은 동사무소를 통해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2007년 장유 청년회의소(JCI) 회장을 역임한 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직능단체 및 봉사단체만 무려 28개에 이른다. 이러고도 장사가 됐다는 사실이 놀랍다. 서 대표는 아무리 바빠도 오전 7시까지는 출근해 짜장면 소스만큼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남에게 맡기면 맛이 일정하지 않아 20년간 같은 일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음식점 주인에게 사회활동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본 지면은 미담이나 인물 소개가 아닌 음식점 혹은 음식이 목적이다. 수정방의 규모나 서 대표의 봉사활동 자체가 기사의 주제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 음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 수타 짜장면.
수정방은 중화요리전문점답게 60여 가지의 요리와 19가지 식사 메뉴가 있다. 이걸 전부 맛보고 기사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중국음식은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흔히들 중국음식을 두고 '불과 기름과 향신료의 연금술'이라 표현한다. 중국음식은 대부분 '웍'이라 부르는 중화팬으로 만든다. 무쇠로 만든 중화팬은 일반인들은 한 손으로 들기조차 버거운 무게다. 이를 강력한 화력 앞에서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느냐가 음식의 색과 질감 그리고 맛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중국음식점의 경우 볶음요리를 맛보면 그 집의 실력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해산물의 경우 유산슬, 돼지고기의 경우 고추잡채 등이 적당하다.
 
게살유산슬은 수정방의 볶음 솜씨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메뉴다. 우선 게살, 해삼, 새우, 소라 등 갖은 해산물이 넉넉하게 사용되었다. 재료들의 볶음 시간을 잘 맞춘 덕에 색과 질감도 살아있다. 중국음식을 볶을 때는 우선 뜨겁게 달군 중화팬에 기름을 두르고, 기름이 끓으면 파, 마늘, 생강 등의 향신료를 넣는데 이를 '폭향'이라고 한다. 향이 피어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해산물과 채소 등의 재료를 넣고 재빨리 볶으면 특유의 향이 배는데 이를 흔히들 '불향'이라고 한다. 게살유산슬을 비롯해 수정방의 볶음요리에는 이러한 불향이 잘 살아있다.
 
▲ 깐풍새우.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새우를 건고추가 들어간 양념으로 드라이하게 볶은 '깐풍새우'는 탱글탱글한 새우살과 약간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잘 어울린다. 사용된 새우의 크기도 넉넉할 뿐더러 손질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매운맛이 부담스러울 경우에는 깐풍새우 대신 칠리새우를 선택하면 된다.
 
재료나 볶음 솜씨 등으로 봐서 300석 규모에 걸맞은 조리 실력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있어 중식당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하는 기준은 짜장면과 짬뽕이다.
 
▲ 항아리해물짬뽕.
김해 최고의 짜장면 매출을 자랑했던 중국집답게 짜장면은 명불허전이다. 전문 조리사가 하루 종일 쳐대는 수타면의 탄력이 우선 좋다. 느끼하기보다는 오히려 살짝 구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소스를 만들 때 메주콩을 볶아 춘장과 섞었기 때문이다. 하얀 도기 그릇에 짜장면을 담아내는 배려 또한 칭찬할 만하다.
 
2인분에 1만 5천 원으로 조금 비싼 느낌이 드는 '항아리해물짬뽕'은 사용된 해물의 구색과 양을 보면 결코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새우, 꽃게, 오징어, 키조개, 홍합 등이 넉넉히 들어갔다. 칼칼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좋아 식사뿐만 아니라 술안주로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그저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옛 수정루의 명성을 유지하면서 본격적인 중화요리전문점으로서의 구색과 품격을 제대로 갖췄다. 4~9인 정도 수용 가능한 12개의 개별실에 30명과 80명이 수용 가능한 연회장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외식, 직장회식 등 다양한 모임이 가능하다.

▶메뉴:짜장면(4천500원), 가족정식(4만~8만 원, 2인~6인), 비즈니스코스(2만~10만 원, 1인)
▶위치:김해시 부원동 819-2
▶연락처:055-339-3569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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