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추서 촉구 결의안 국회 국방위 통과
오는 6월 국회 표결 앞두고 낙관적 전망


김해 출신인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사업(김해뉴스 2012년 11월 14일, 12월 11일자 1면 등 보도)이 탄력을 받게 됐다.
 

민홍철 의원(민주당·김해 갑) 등 국회의원 21명이 발의한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이 22일 국회 국방위원회(위원장 유승민)를 통과했다. 이 결의안은 지난 17일 국방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으며 오는 6월 국회 임시회가 열리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처리 된다.
 
결의안은 지난해 7월 3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했고, 9월 24일 국방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처음에는 전문위원들로부터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2009년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김정권 당시 국회의원의 대표발의로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건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신군부측 인사 등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 전례도 있어 올해도 국방위원회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방위원회에서 전문위원들의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자 '김오랑중령추모회'(대표 김준철)는 이를 반박하는 내용의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했다. 또 <김오랑평전>(김준철 지음, 책보세 펴냄)을 발간해 국회에 전달하는 등 법안 통과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결의안이 국방위원회를 통과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김준철 대표는 "6월 임시회가 열리면 표결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임시회 개회에 앞서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관련 자료를 배포해 이해도를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의안에서는 추모비를 육군사관학교에 세우는 것으로 돼 있지만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앞으로 김오랑기념사업회를 발족해 국가보훈처에 등록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과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오랑 중령은 1944년 김해읍 삼정동에서 아버지 김종수, 어머니 임순이 씨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들을 도와 시장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집안일을 돕느라 중학교 입학은 또래들보다 한 해 늦었다. 김해중학교 시절에도 통솔력이 뛰어났으며 학업성적이 우수했다. 김해농고 3학년 때 담임교사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결심해 1965년에 그토록 바라던 제25기 육사 생도가 됐다. 1969년 강원도 양구 육군 제2사단 32연대 수색중대에서 초급장교로 군인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0년 7월에는 베트남에 파병됐다가 1971년 10월 귀국했다.
 
1979년 12월 12일 이른바 '12·12사태' 당시 소령이었던 김 중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직을 맡고 있었다.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은 휘하 공수부대원들을 동원해 정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했다. 이에 맞선 김 중령은 공수부대원들과 교전을 벌였다. 김 소령은 자정을 막 넘긴 13일 오전 0시20분께 6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그는 1980년 2월 28일 서울 현충원에 안치됐으며, 1990년 1월 부인 백영옥 씨의 노력에 힘입어 소령에서 중령으로 추서됐다. 김준철 대표는 "신군부세력에 동조했거나 눈치를 본 군인들이 다수였던 상황에서 자신보다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김오랑 중령의 군인정신은 후배 군인들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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