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 기자 후배가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60인데, 나이 먹는 게 싫지 않느냐?" 김훈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좋다. 20, 30대를 보면 저 애송이들이 언제 이 편안한 경지에 이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일은 아닙니다. 뒷날 김훈은 나이 먹는 게 저주스럽다, 고 자신의 발언을 수정했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따른 회한이었습니다.
 
일흔에 도달한 김해의 판화가 주정이 선생한테 제가 물었습니다. "나이 먹는 게 싫지 않느냐?" 주 선생이 말했습니다. "싫다.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 장면들을 회상하다 보니, 문득 이런 노래 가사가 생각나더군요. 봄날은 가네, 무심히.
 
그때, 벼락처럼 조용필이 나타나 나른한 감성을 들쑤셔 놓았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네, 바운스 바운스. (조용필은 최근 '바운스'라는 노래로 음반 시장을 휩쓸고 있습니다. 60대의 나이에 신선한 감각의 노래를 들고 나옴으로써 오히려 시대를 선도한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저만 그런 게 아니라, 김해의 한 50대 지인도 조용필의 나이를 거론하면서 찬사를 보내더군요.
 
조용필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정말 고전적인 의미의 나이는 무의미해 졌구나.
 
그러고 보니 '현대의 나이 계산법'이란 게 있습니다. 현재의 나이에 0.8을 곱한 게 진짜 나이라는 것이지요. 50년 전의 85세 이상 인구 비중이 0.8을 곱한 68세 이상과 비슷하다는 논리입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50세는 40세, 60세는 48세, 70세는 56세, 80세는 64세, 90세는 72세, 100세는 80세가 됩니다. 실제로 체력과 정신력이 그만큼 향상됐습니다. 한 방송이 '노인을 몇 세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60세는 70세라고, 70세는 75세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실제로 70대 초반까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50대 못지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도 그런 현실을 느낀다고 합니다. 의사 입장에서,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80세가 넘으면 수술을 꺼렸는데, 지금은 본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90세라도 큰 수술을 감행한다고 합니다.
 
김해에서는 60, 70대가 한 데 어울려서 조기축구를 하기도 하더군요. 70대인데도 별 부담 없이 폭탄주를 제조하고 들이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런 분들은 대체로 자아 성숙을 위한 명상과 도전이 일상적인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 한 권 있는데, <50세, 빛나는 삶을 살다>(에릭 뒤당 지음/ 이세진 옮김/ 에코의서재 출간)입니다. 저자는, 통상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나이에 무언가를 실행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53세에 맥도널드 1호점을 연 레이 크록, 69세에 수심 3천50m까지 내려간 오귀스트 피카르, 71세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피에르 가르댕 같은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경쟁하며 패션계를 평정한 코코 샤넬, 76세에 수련 연작을 그린 클로드 모네, 90세에 쿠바의 재즈 거장이 된 콤파이 세군도, 91세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성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등의 이름과 내력이 들어 있습니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 의기소침해 지고 나른해 지려는 중년 이상의 분들에게 조용필의 노래 '바운스'와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홧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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