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라겐이 뽀얗게 우러난 팔복돼지국밥. 농후하면서도 단맛이 감도는 국물은 돼지 특유의 냄새와 탁한 맛마저 잡아내 완성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돈코츠라면'은 되는데 우리나라 돼지국밥은 왜 안되는 걸까?
미국 유학생활 중 의문 품은 청년 귀국 후 부산에 '돼지국밥 연구소' 세워
다양한 실험과 전수·개발 통해 완성 한 마리 분량 사골 24시간 우려내고
최고등급 암퇘지로 수육 만들어 경상도 대표음식 품격 끌어올린 '수작'

전임 대통령이 '4대강 정비사업'만큼이나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한식 세계화'였다. 사업을 전담할 재단까지 설립하고 영부인은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책까지 집필했다. 덕분에 한식이 얼마나 알려지고 세계화됐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무릇 이런 일의 결과는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고, 그 효과 또한 더디게 나타나는 법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이 세계화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접근 방식을 보자면 가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몇 해 전 <부산일보>에 돼지국밥의 세계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 돼지국밥의 세계화를 위한 대안으로 한 전문가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대중화를 위해서는 자극성이 강한 양념을 순화시켜야 한다. 또 수육이나 순대 위주로 먹고 국을 곁들이게 하는 따로국밥 스타일로 변형시키면 더 고급스러워 보일 것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자극적인 양념을 피하고 고급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더러 이런다고 돼지국밥이 세계화될 턱도 없다. 이 두 문장 속에는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한식 세계화'의 잘못된 모멘텀이 압축돼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가 한식이 가지고 있는 오리지널리티, 즉 독창성과 원형의 부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인도의 커리와 태국의 똠양꿍 등은 이미 세계적인 음식의 반열에 올라있다.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해 자극적이고 심지어 맵기까지 한 이 음식들이 세계화를 명목으로 순화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를 즐기는 서양인들은 더 맵고 더 자극적인,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맛을 원한다. 그것이 본질이고 원형임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에 효과를 보자고 그들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은 세계화라기 보다는 현지화에 가깝다. 스스로 현지화를 자처하는 음식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2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 팔복돼지국밥 수육
고급화라는 말도 그렇다. 좋은 그릇에 담고 먹는 방식을 개량하는 일은 세계화 이전에 이미 자국 내에서 진행되어야 할 당연한 수순이다. 글로벌한 기준에 맞는 플레이팅과 서비스는 사실 일도 아니다. 이미 한국의 요리사와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수준은 충분히 세계적이다. 진정한 고급화란 그 음식이 가진 최고의 맛을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정도 돼지국밥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국밥을 완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산 돼지고기의 품질 개량과 최적의 조리법을 개발하는 것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한 청년이 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미국 이민을 가게 된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일본 라면을 파는 식당이 제법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것도 돼지뼈를 진하게 우려낸 소위 '돈코츠라면'이었다. 청년은 궁금했다. '돈코츠라면은 되는데 이와 유사한, 혹은 그 이상일 수 있는 돼지국밥이라고 미국서 통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2년만에 이민 생활을 접고 귀국한 청년은 최고의 돼지국밥을 만들어 보기로 작정한다. 시장 한 구석, 폐업 후 비어 있던 식당을 월세 20만원에 임대해 '돼지국밥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라 해봐야 대형 버너에 무쇠 가마솥이 전부였다. 낮에는 돼지고기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국물 내기를 반복했다. 더불어 전국의 소문난 국밥집을 돌며 장단점을 분석하고 수육, 김치, 깍두기 등도 연구했다. 때로는 전수도 받고 때로는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 국밥과 수육만큼이나 정성을 쏟은 깍두기
국물 맛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이번에는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다. 부산 시내 곳곳을 2개월 동안 샅샅이 뒤진 끝에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시 사상구 모라동에 터를 잡았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본인의 손으로 직접 시공했다.
 
2011년 3월 '팔복돼지국밥'이 문을 열었다. 가게가 문을 연 이후에도 청년의 돼지국밥 연구는 계속됐다. 이번에는 고객들의 기호와 반응을 직접 살폈다. 4가지 버전의 국물을 시험한 끝에 2011년 6월 최종 버전을 완성했다. 청년은 자신이 만든 돼지국밥에 자부심을 가졌고, 고객의 반응 또한 호의적이었다.
 
2년이 흐른 2013년 4월. 청년은 김해시 어방동에 팔복돼지국밥 2호점을 열었다. 전문 시공회사에 공사를 맡긴 2호점은 1호점 보다 훨씬 깔끔하고, 시스템 또한 안정돼 보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국밥과 수육이었다.
 
사골을 중심으로 돼지 한 마리 분량의 뼈를 넣고 24시간 동안 우려낸 국물은 2년 전과 비교해 훨씬 진일보한 맛이었다. 오로지 돼지뼈가 가진 콜라겐이 우러난 뽀얀 빛깔은 사뭇 순결해 보일 정도다. 국물 맛은 농후하면서도 달았다. 돼지 특유의 냄새와 탁한 맛을 잡는 것 정도는 이제 청년에게 기본 중에 기본인 듯 보였다. 현재로서는 돼지뼈로 낼 수 있는 가장 완성된 국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국물에 양념이나 조미료 따위는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그저 간을 맞추고 숨은 맛을 끌어낼 정도의 소금과 새우젓이면 충분하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 부추겉절이
수육 또한 국밥 못지 않다. 국물에 제 가진 것을 전부 빼앗긴 흐리멍덩한 수육이 아니다. 최고 등급의 국산 암퇘지를 고르고, 그 맛이 정점에 이를 때까지 숙성한 다음 따로 삶았다. 가장 좋은 재료를 골랐을 때, 사람의 역할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그 맛과 향을 극대화시키는 정성과 감각에 있다. 이럴 때 조리법은 단순할수록 좋다. 수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청년은 칼 하나에도 세심한 연구를 거듭했다. 수육을 썰 때는 일본식 회칼의 한쪽 날만 갈아서 사용한다. 단면이 예리하게 잘려나간 수육은 맛도 육질도 탁월하다.
 
이러니 팔복돼지국밥에서는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는 고민보다 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국밥도 먹고 싶고 수육도 먹고 싶다. 그래서 팔복돼지국밥의 최고 인기 메뉴는 수육백반이다.
 
국밥과 수육에 쏟은 정성만큼이나 김치, 깍두기, 부추겉절이, 무말랭이 등에도 세심한 신경을 기울였다. 뚝배기를 비롯해 각종 식기 역시 돼지국밥의 품격을 한 차원 높여주고 있다. 완성도와 섬세함 그리고 조화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이다. 적어도 이 정도 국밥을 만든 다음에 세계화를 운운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도축장이 두 곳이나 있는 김해에 2호점을 낸 것은 돼지국밥을 연구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복돼지국밥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하고 진보할지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국밥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매일 같이 국밥을 먹는 청년은 이런 소망을 말한다.
 
"국밥집을 해서 돈 좀 벌면 부산 인근에 조그마한 돼지농장부터 하나 시작해야겠습니다. 직접 돼지도 키울 생각입니다. 돼지는 어떤 종류의 사료와 물을 먹느냐에 따라 맛과 품질이 확연히 틀려지거든요. 암튼! 생각만 해도 좋네요."
 
돼지국밥의 진정한 세계화는 제 손으로 국밥 한 솥 끓여보지도 않은 전문가나 관료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청춘과 열정을 담보로 끝장을 보겠다고 덤비는 수많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메뉴:돼지국밥(6천 원), 수육백반(8천 원)
▶위치:김해시 어방동 1095-7
▶연락처:055-328-5554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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