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시 낭독회를 끝낸 김해다문화도서관 결혼이주자 문학동아리 '나도 꽃' 회원들과 가족들,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행복한 수업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31일 다문화카페 '통'에서 열려
회원 8명 각자 한 편씩 골라 낭독
선입견 깨고 감동적인 행사 만들어져

"결혼이주자들이 우리말로 시를 낭송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황티센(여·베트남) 씨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낭독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말투는 조금 어눌했지만,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감이 있었다.
 
시 낭송을 지켜보던 몇몇 내국인들의 눈가에 언뜻 눈물이 비쳤다. "중학생 시절부터 지겹게도 외워 오던 시인데, 이렇게 들으니 왠지 눈물이 나네요."
 
지난달 31일 오후 6시, 동상동 다문화카페 '통'에서 특별한 시 낭독회가 열렸다. 김해다문화도서관이 주관하는 결혼이주자들의 문학동아리 '나도 꽃' 회원들이 준비한 '문학의 밤 시 낭독회'였다.
 
회원들은 지난달 3일부터 3주 동안 3번의 문학수업을 했다. 그동안 동요로 시 개념 접근하기, 동시로 시 개념 익히기를 배웠다. 이 과정에서 이정님 시인의 시 '내 이름'을 다룰 때는 각자의 이름을 넣어 시 창작을 하기도 했다.
 
이날은 4번째 수업으로서, 회원 8명이 시를 한 편 씩 골라 낭독을 했다.
 
시낭독회 시작 전인 오후 5시 30분께 이미 '통'은 회원들과 이들을 응원하러 나온 가족, 지인들로 가득 찼다. 회원들은 낭독 직전까지도 자신이 고른 시를 읽고 또 읽으며 연습에 열중했다. 회원들은 시 '내 이름'을 읽으며 자신을 소개한 뒤, 자신들이 고른 시를 낭독했다.
 
회원들이 낭독한 시는 이랬다. 사오하 니라몰(태국)-유치환 '파도', 왕메이(중국)-안도현 '사랑', 오오타 히사코(일본)-김춘수 '꽃', 제시카 토랄바(필리핀)-윤동주 '서시', 쩐티네우(베트남)-손광세 '옹달샘', 황티센(베트남)-윤동주 '서시', 류원화(중국)-김정일 '바늘구멍', 라하증(인도네시아)-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사오하 니라몰 씨는 "김용택 시인의 시가 재미있어 시집을 한 권 샀다. '방 안의 꽃'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며 "오줌 싸도 이쁘고 응가 해도 이쁘고 앙앙 울어도 이쁘고… 라는 시는 너무 재미있어서 초등학교 1학년 아들 하고 같이 읽으면서 많이 웃었다"고 말했다.
 
라하증 씨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드라마 '학교 2013'에 이 시가 나왔는데, 그 의미가 너무 좋아서 낭독 시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안도현의 '사랑'을 낭독 시로 선택한 왕메이 씨는 "이 시는 로맨틱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다"고 전했다.
 
이들 중 오오타 히사코 씨는 눈을 감은 채 들으면 한국인과 똑같아서 큰 박수를 받았다. 연신 카메라로 아내를 촬영하는 남편들도 눈에 띄었다. 제시카 토랄바 씨의 남편 강대현 씨는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한국어로 시를 이해하고, 시도 지을 수 있다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며 아내를 응원했다. 쩐티네우 씨가 낭송을 시작하려 하자 '화이팅'을 외쳤던 남편 배상훈 씨는 "하루하루 한국어로 말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아내가 고맙다. 가슴 한켠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 더 잘해줘야겠다"고 고백했다.
 
문학동아리 '나도 꽃'의 시 수업을 맡은 김경희(벨라회 회장) 씨는 "'나도 꽃' 회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낯설고 물설고 언어도 다른 타국에서 적응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고 시 낭독을 하는 걸 보니 고맙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 수업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우리 시를 외국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했는데, 회원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행복한 수업이 됐다"며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방법 중에서는 시가 단연 으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사를 지켜본 시민들은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시 낭독회였다. 우리 시가 이렇게 멋진 줄 미처 몰랐다. 훌륭한 문학은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걸 알게 됐다"며 "우리도 우리 문학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학동아리 '나도 꽃'은 지난 1일, 김춘수 시인의 고향인 통영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전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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