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지난해 TV를 장악한 '예능 늦둥이' 중에는 밴드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김태원'이 있다. 그는 '국민할매'라는 별명을 얻게 되면서 본업인 기타리스트보다는 부업이라 할 수 있는 예능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 그는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과 더불어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실력자다.
 
김해에도 김태원을 꼭 닮은 '김해할매'가 있다. 바로 박태호(52·내동) 씨다. 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빗어 넘겨 하나로 묶은 데다가, 몸매 또한 김태원처럼 호리호리하다. 여기에 안경까지 쓰면 보는 사람마다 "어! 김태원 닮은 아저씨다!"라고 한단다. '태원'과 '태호', 어째 이름도 비슷하다. 다만 박 씨는 본업이 건물 도장공이고, 부업이 통기타 가수라는 점이 김태원과 다르다.
 
박태호 씨는 낮에는 페인트칠을 하고 밤에는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내동의 한 교회에 있는 카페 '길'에서 무료로 '7080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근방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가수다.
 
"요즘 세상이 많이 각박해서 힘들잖아요. 이럴 때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들으면서 한 순간이라도 기쁨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콘서트를 여는 거죠."
 
박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이곳에서 콘서트를 시작했다. 울산에서 7년 동안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었던 그는, 2009년 고향인 김해로 돌아오면서 '음악을 통해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교회에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김광식 목사를 만나 7080 콘서트를 기획하게 됐다. 사실 본업이 따로 있으면서 매주 2시간씩 혼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녹록치는 않다.
 
아내 류원숙(56) 씨는 그런 그를 보면서 "말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본업에서도 뛰어난 노하우와 기술을 발휘해서 인정받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뺑끼칠(페인트칠)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요. 본업이 몸을 많이 써야 되는 일이라 힘든데, 그렇게 노래까지 부르니까 힘들어 해요. 그럴 땐 옆에서 말리고 싶죠. 그런데 음악적인 욕구가 불 붙고 있는 게 다 보이니까, 그걸 아니까 말리지를 못해요. 취미 삼아 하라고 그냥 놔두죠. 내가 특별하게 어떤 음악적 지원을 해주질 못하니까…. 가끔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있는 듯해요."
 
그래도 박태호 씨는 무대에 서서 기타만 메면 힘이 솟는다. 공연 때마다 최소 15명에서 30명 가량의 관객이 드는데, 이 중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노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이기에, 콘서트를 찾아주는 관객들 모두가 곧 힘의 원천인 것이다.
 
관객들 중 그의 골수팬은 없을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오시는 분들 전부 제 팬인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여기 오셔서 제 노래를 듣고 나름대로 뭔가 느끼시니까 계속 오시는 것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기도 하고요. 제 노래나 연주가 마음에 안든다면 아마 다시는 안 오시겠죠."
 
박태호 씨는 공연 때 '해바라기'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유심초의 '사랑하는 그대에게'와 어니언스의 '저 별과 달을' 또한 다른 곡보다 많이 부르는 편이다. 관객층이 30대부터 70대까지라, 이런 노래들이 큰 호응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가끔 관객들로부터 신청곡도 받는다.
 
아마추어 딴따라? 그 무슨 섭섭한 말씀
열두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해 김해시립합창단 창단멤버 활동도 했죠
끼를 주체 못해 라이브클럽도 해봤으니 이젠 고향에서 음악으로 봉사하며 살려구요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동네 카페에서 노래하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울산에서 그룹사운드 '건아들'의 기타리스트 박대봉 씨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한 '프로'이다. 심지어 12세 때부터 기타를 손에 잡았던 기타 신동이기도 하다. 박 씨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어릴적, 아버지는 구봉서, 배삼룡, 트위스트김 등이 출연하는 가설무대에서 활동했던 예술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런 환경을 접하게 됐고, 끼가 흐르는 피 또한 이어받지 않았겠냐는 것이 박 씨의 생각이다.
 
박 씨가 울산에서 라이브클럽을 운영했던 이유도 이 끼를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건물 도장공으로 일하며 몇 번의 부도를 맞았고, 일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꾸만 음악으로 도피하려 했던 것이다. 절대로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래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마음도 한결 편안하고, 매일이 즐겁다고 고백했다.
 
1990년 김해시립합창단의 창단멤버로 활동했던 것부터 치면 그는 20여 년 동안 꾸준히 노래를 불러온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의 이름을 단 앨범이나 자작곡은 아직 없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히트를 치든 못 치든 자신이 직접 만든 노래를 불러보는 게 그의 꿈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말했다. 섭외 전화를 받고 인터뷰를 하겠노라고 대답하고도 몇 번을 고민했다고. 자신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평범한 사람일뿐이라, 누군가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쑥쓰러웠다고 말이다. 그래도 결국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 했다. "제가 가진 재능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이런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거라고,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래로 더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하겠습니다."
 


♬ 후회 없도록 널 위해 살고 싶다♪… 아내에게 바치는 사모곡
■ 드라마처럼 사랑하며 사는 부부

박태호 씨와 아내 류원숙 씨의 첫 만남은 마치 드라마 같았다. 박 씨가 DJ로 일하고 있었던 음악다방에 류 씨가 손님으로 오게 됐고, 이를 계기로 점점 가까워져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 류 씨는 "보니까 외모도 괜찮고 노래도 잘 하길래 호감을 가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는 "연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며 웃었다. 그렇지만 박 씨는 아내에게 노래를 자주 불러주는 편은 아니다. 매주 무대에 서면서도 부끄러움 때문인지 멋쩍음 때문인지 류 씨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박 씨가 류 씨에게 아주 가끔씩 선사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김종환의 '백년의 약속'이다. '백년도 우린 살지 못하고 언젠간 헤어지지만/세상이 끝나도 후회없도록 널 위해 살고 싶다.' 가사가 절절하다. 박 씨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에 평소에는 표현을 못하고, 가끔 이렇게 노래에 감정을 싣는다"고 말했다.
 
박 씨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 교감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박 씨도 눈물을 흘리고, 그런 그를 보며 류 씨도 가슴이 찡해진다고. 여전히 그들은 드라마처럼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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