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개 보약을 지으러 온다. 몸에 기운도 없고, 몸이 무거우니 좋은 것 넣어서 약 좀 잘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현대한의학의 '보약'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산업화 및 식습관, 체형 변화의 측면에서 이해돼야 한다.
 
흔히 한국의 '시대의식(zeitgeist)'을 논할 때, 건국-산업화-민주화로 이행되었다고 본다. 옛날의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하면서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한국사람들의 먹을거리는 좋아졌다. 그리고 버거킹, 맥도날드, 롯데리아와 같은 패스트푸드나 VIPS(빕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와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식하는 것이 하나의 식사문화로 자리매김을 했다. 10년 전 산업자원부의 통계자료를 참고하면 육식과 서구화된 식습관은 한국인의 키와 몸무게를 모두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식습관의 변화로 나타난 것이 이른바 고혈압과 당뇨, 비만이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심장은 2천㏄인데 체형은 3천㏄로 변했다. 결국 비대해진 체형과 몸무게에 지속적으로 혈맥을 공급하려다 보니, 고혈압이 진행된다. 또한 외식의 증가는 짠 음식의 섭취로 이어져 고혈압을 더 부추기게 된다. 고혈압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면 뇌출혈이나 뇌경색, 심근경색과 같은 무서운 혈관질환으로 진행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체중의 증가는 관절에 무리를 줘 각종 관절질환 및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한의학은 오히려 보약이 아니라 사약(땀을 내거나 구토를 일으키거나 설사를 시키는 약)을 구사해야 할 경우가 훨씬 많다. 한의학은 인체를 '음양표리한열허실(陰陽表裏寒熱虛實)'로 본다. 청나라 때 정국팽이 <의학심오(醫學心悟)>라는 책을 통해 밝힌, 인체를 변증시치(辨證施治·질병을 치료하는 전제와 근거, 원칙을 정하는 것)하는 방법인 팔강변증(八剛辨證)이다.
 
인체의 정기 부족, 저항능력의 약화, 생리기능 감퇴 등의 증세인 허증일 때 쓰는 약이 보약이다. 반면 나쁜 기운이 왕성해 열이 심하고, 얼굴이 발개지거나 갈증과 가슴답답함이 있으며,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헛소리까지 하는 실증일 때 쓰는 약이 사약이다. 몸이 붓고 피로하며 무거워서 내원하는 환자의 경우 변증시치를 해보면 허증의 환자보다는 실증의 환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
 
때문에 대소변이 시원하게 잘 나가지 못하고 몸에 저류돼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아니하고 뭉치어 생기는 병이나, 체내의 수액이 잘 돌지 못하여 만들어진 병리적인 물질을 잘 배설시키는 것이 오히려 현대인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보약이 되는 셈이다. 요컨대, 현대의 한약은 설사를 시키고, 땀을 내주는 본래의 사약이 역설적으로 보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의 한방을 '배설의학'이라 명명한다면 너무 거친 표현일지는 모르나, 크게 본질에서 벗어난 표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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