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30일 열린 두 번째 '도요마을 강변축제'에서 관객들이 야외무대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을 감상하고 있다.
도요감자 수확철 맞춰 이틀간 개최
부산·경남 시인과 예술인 30여명 참석
뮤지컬·연극·노래자랑·시낭송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 '작지만 재밌는 축제'

"저 처이(처녀)는 팔 아푸겠다. 우짜꼬."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을 지켜보던 도요마을 할머니들 사이에서 걱정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유의 여신상 역할을 맡은 여자배우가 횃불을 든 채 꼼짝 않고 서 있는 걸 본 도요마을 할머니들의 '친절한 감상법'이다.

지난달 29~30일 이틀 동안 생림면 도요리 도요마을에서 작고 소박하지만 알찬 마을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2회를 맞은 '도요마을 강변축제'다. 도요감자의 수확 철에 맞춰 이틀간 개최되는 행사이다. 축제에 다녀간 관람객은 약 300여 명. 김해시 문화관광사업소 최성열 소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과 이원종 생림면장, 이유갑 녹색성장연구소장, 하선영 시의원 등도 축제현장을 방문했다.

관람객들은 "작지만 재미있는 축제이다. 아름다운 도요마을의 풍경, 뒤에서 축제를 도와준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씨, 도요창작스튜디오에서 뿜어내는 문화예술의 향기를 듬뿍 느꼈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해뉴스>는 이틀 동안 도요마을에 머물며 축제 현장을 취재했다.
 

■ 축제 최고 먹을거리로 떠오른 '도요마을 회오리감자'
축제장 한 쪽에 마련된 도요감자 시식·판매코너에서 '회오리감자'가 강변축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금방 쪄낸 도요감자를 특수제작된 통속에 밀어 넣으면 얇은 감자칩이 연결된 형태로 꼬치에 꿰인 채 나온다. 이것을 달콤 짭잘한 치즈가루에 찍어 먹는 '회오리감자'. 그냥 삶아낸 감자가 전통음식이라면, '회오리감자'는 퓨전음식이다.
 
축제 기념품도 도요감자이다. 축제를 다녀간 관람객들은 돌아갈 때 도요감자를 사갔다. 이틀간 도요감자 3천 원짜리 30박스, 1만 원짜리 10박스, 1만 5천 원짜리 70박스가 팔렸다.
 

■ 여기도 시인, 저기도 예술가
시낭송회에 참여할 겸, 도요창작스튜디오 구경도 할 겸 찾아온 부산·경남의 시인과 예술가들은 약 30여 명. 축제장에 들어서자마자 최영철·성선경 시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창원에서 달려온 박서영 시인과 눈이 마주쳤다. 막 악수를 건네려는 찰나, 축제장으로 주정이 화백과 부산의 권경업 시인이 들어섰다. 그 뒤로 김해의 김용권 시인의 환한 웃음이 보이는가 싶더니, 뒤이어 부산의 전다형 시인이 손을 흔들었다. 도요마을에 머무는 김정호·이가영 화가에게 인사를 가려 했는데, 틈이 없다. 명색 문화면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지만, 결국 인사를 포기했다.
 
그건 문화예술인들끼리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고, 형식적인 인사는 축제기간 내내 필요 없었다. 마주치면 "오랜만입니다. 언제 왔어요?"가 인사였다. 진주에서 온 조민 시인은 "평소 만나고 싶었던 시인들을 도요에 와서 다 만나고 간다"며 "강변축제는 계속 이어지면 분명히 명물이 될 것"이라고 부러워했다.
 
축제장을 어슬렁거리는 시인과 문화예술가들을 눈짐작으로 알아본 방문객들도 많았다. 가장 많이 들린 소리는 "앗, 이윤택 감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연출가인 이윤택 감독, 그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는 한 방문객은, 이 감독이 배우들에게 뭔가 지시를 하는 장면을 스마트 폰으로 연신 촬영했다.
 

■ 뮤지컬과 연극 감상에 푹 빠진 도요마을 할머니들
도요마을 울창한 나무들을 배경으로 세워진 근사한 야외무대에서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 공연이 펼쳐졌다.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 뮤지컬이라 '자유의 여신상' 역할을 한 배우는 무대의 가장 높은 곳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횃불을 든 채. 할머니들은 그 배우가 팔이 아플까봐 걱정하더니, 한참 뒤에는 "아이가? 인자 팔을 바꿔 들었네? 거 잘했네!"라면서 깔깔 웃었다. 드미트리아스, 허미어, 라이샌더, 헬레나 네 젊은이의 엇갈린 사랑이 제 짝을 만나 해피엔딩을 이루는 장면에서는 "아이고, 인자 됐다!"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탈선 춘향전'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주민들.
30일 공연된 '탈선 춘향전'은 도요할머니들에게는 익숙한 토종 코미디연극이었다. "지난해에는 극장 안에서 하더마는 올개(올해)는 바깥에서 하네?"하면서 할머니 한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또 다른 할머니가 그 옆에 앉으며 말했다. "올개는 새로 온 배우들이란다. 방자도, 춘향이도 다 바낐다 카더라." 뒤늦게 온 할머니가 앞자리 제일 가운데에 앉자고 제안하자 다른 할머니는 "딴 데서 온 손님들이 많더라. 그 사람들 앉으라 카지 머"하면서 큰 마음으로 양보를 했다.
 
이 할머니들이야말로 도요마을 최고의 관객이었다. 이 할머니들의 감탄사와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윤택 감독이었다. '탈선 춘향전'에 신인 배우를 세우고 마당극 형식으로 첫 선을 보인 이 감독은 할머니들과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이 극은 성공했다"고 기뻐했다.
 

■ 결혼 30주년 기념 마라톤 종착지가 된 축제장
한림면 장방리에 사는 하택용(58)·임정애(58)씨 부부는 지난 29일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김해마라톤클럽 회원인 하택용 씨는 이 날을 기념해 대저역을 출발, 김해시청, 삼계동을 지나 도요마을까지 달려왔다. 하택용 씨는 도요마을 배우들의 열렬한 판굿놀이 공연으로 환영을 받으며 도요창작스튜디오로 들어왔다. 하택용 씨는 부인을 위한 깜짝 이벤트로, 29일 초청된 모창가수 태지나 씨에게 특별히 부탁해 유심초의 '사랑이여' 노래 선물을 받기도 했다.
 

■ 진짜 가수 공연보다 감동적이었던 모창가수 공연
29일 밤, 축제장을 찾은 모창가수 문희 씨와 태지나 씨는 열띤 공연으로 마을 주민들과 관람객들을 기쁘게 했다. 태지나 씨는 관람객을 모두 무대 앞으로 나오게 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토요일 밤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진짜 가수 태진아 씨는 바빠서 못 오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팔순 잔치 때 꼭 불러 달라"는 그의 말에 주민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했다. 어린 아이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앙증맞은 춤 동작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즐겁게 했다. 주민 박주순(58) 씨는 베트남에서 시집 온 며느리 김수연(28·한국식 이름)씨와 손녀 송민지(5) 양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박 씨는 "마을이 모처럼 시끌벅적하니 활기가 넘친다. 도요마을도 유명해지고 도요감자도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집 나온(?) 사람들이 참여한 치열한 노래자랑대회
▲ 제1회 도요 폰포엠콘서트의 수상자들이 이윤택 (왼쪽)감독으로부터 상장을 받고 있다.
29일 밤, 주민노래자랑대회가 열렸다. 모 여성출연자가 "어디서 오셨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노래자랑대회 참여하려고 집 나왔다"고 말해 웃음을 선사한 뒤부터는, 출연자들이 줄줄이 "집 나왔다, 상을 받아야 집에 간다"고 대답을 해 객석에서 연신 웃음보가 터졌다. 열심히 박수를 치며 응원해 준 관객들, 온몸을 던져 출연자들의 백댄서를 자처했던 도요의 젊은 배우들이 있어 노래자랑대회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대회의 절정은 도요마을 정해운 이장이 무대 위에 올랐을 때였다. 조용한 도요마을에서 가장 시끄러운 도요창작스튜디오, 그 당사자들인 배우들이 작정하고 이장을 둘러싼 채 외쳤다. "싸랑해요, 이장님~" 객석의 주민들도 덩달아 외쳤다. "싸랑해요, 이장님~" 이웃 한림면 술뫼마을의 김순영 이장도 무대 위에 올랐다. 김 이장은 "한림에서도 마을 축제를 열 계획이 있어서 와 봤는데 재미있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이 다 모여 축제를 즐기는 장면을 한림면에서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도요마을 사찰 '금국사'에서 열린 시 낭송회와 작은 음악회
조용한 '금국사' 마당에 파라솔이 펼쳐졌다. 시인들의 시 낭송 사이사이 노래공연과 뮤지컬 장면 공연들이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뮤지컬 '도솔가'의 한 장면이었다. 불경의 한 구절을 모티프로 해서 만든 음악에 맞춰 남자 배우가 무술동작을 펼쳐보였는데, 금국사 마당에서 하기에 안성맞춤인 공연이었다.
▲ 금국사에서 열린 시 낭송회.
공연이 끝나자 '멋있다!'는 감탄과 함께 "저것은 택견이다", "무슨 소리, 저것은 선무도다"라는 의견이 설왕설래했다. 정답은? 아무도 몰랐다.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는 금국사에서 제공한 야채비빔밥으로 공양을 했다. 그 맛이 또 별미였다.
 

■ 도요갤러리와 아름다운 도요마을
축제기간 동안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도요마을 그 자체였다.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한 강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눈 가는 곳마다 짙은 초록이어서 도시에서 온 관람객들은 더 흐뭇해했다. 감자 저장창고를 빌려 만든 도요갤러리는 축제의 열기를 잠시 식혀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었다. 도요마을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 노은희·김정호·이가영 씨의 그림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은 도시의 유명 갤러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상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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