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에 한 솜씨 좋은 정원사가 자신이 만든 정원의 나무에 '토피아(topia)'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토피어리(Topiary)는 이 말에 어원을 둔다. 토피어리는 자연 그대로의 식물을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인공적으로 다듬거나 자르는 예술행위나 작품을 말한다. 토피어리는 17~18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실내에서도 장식품으로 널리 이용됐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 즈음 도입됐으며, '모스(moss) 토피어리'라는, 물이끼를 이용해 만든 작은 식물장식품이 크게 유행했다. 김해에서 토피어리 공예가로 활동하는 김수영(46) 씨의 공방은 삼방동 270-5에 있다.

▲ 소풍이라도 나온 것일까. 사람 모양의 토피어리가 눈길을 끈다. 물이끼의 물기가 마르고 난 뒤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들여 연출한다. 김병찬 기자 kbc@

철사 줄로 뼈대 만든 뒤 물이끼로 감싸
동물·사람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 표현
2004년 가야문화축제 때 처음 선보여
그해 김해공예협회 창립 멤버로 참여
토피어리·텃밭 가꾸기·압화 등 활용
대안학교 등 원예치료 수업 강사활동

김수영의 공방 '꼬까마'에 들어서면 그의 작품들이 먼저 반긴다. 와이어로 형태를 만들고 물이끼로 감싼 후 사슴이나 아기 곰을 표현한 작품도 있고, 다정한 연인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도심 거리의 울타리나 꽃으로 만들어진 집, 조화로 만든 장식물, 놀이공원 등에서 볼 수 있는 동물 모양의 식물 등도 토피어리의 일종이다. 꼬까마는 그런 공원의 축소판 같다. 마치 비밀스러운 작은 정원처럼 아기자기하다.
 
김수영은 대저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부산시로 편입돼 강서구 대저2동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에게 그곳은 여전히 김해이다. "우리 집 마당 한 쪽에 작은 꽃밭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가꾸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꽃밭이었죠. 그래서 예쁜 꽃을 항상 볼 수 있었어요. 꽃밭을 가꾸는 어머니의 손길도 보았죠. 공항으로 이어지는 긴 둑길에는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어요. 이름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그 꽃이 참 좋았어요. 꽃 보러 둑길을 걷기도 했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달맞이꽃이더군요.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뛰어 건너면 염소가 풀을 뜯고, 예쁜 야생화들이 피어있던 어릴 적 고향마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야생화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야생화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고 있어요." 그는 어릴 적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자랐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토피어리에 마음이 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영은 덕두초등학교와 대저중학교, 부산의 혜화여고를 졸업했다. 경남정보대학 원예조경학과에 입학한 것도 늘 자연과 함께 하고 싶었던 본능적인 끌림 같은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저1동에 있는 강산난원의 조직배양실에서 근무했다. 양란을 배양하는 일이었는데, 좀 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25세 때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26세 때 결혼하면서 공부를 멈추었다가 몇 년 전 재입학해 올해 2월 졸업했다.
 
"원예조경학과와 농학과 공부를 한 것이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론 공부는 취미가 아니라 더 깊은 생각과 작업으로 나를 이끌어주니까요. 고등학생 큰 아들, 중학생 작은아들과 함께 공부를 했죠. 장학금도 받고, 졸업할 때는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의 말투는 조용조용했지만, 숨은 강단이 느껴졌다.
 
그가 토피어리를 처음 보게 된 건 올케 덕분이었다. 올케는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뚝딱 만들어낼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어느날, 친정에 갔더니 올케가 만든 토피어리 작품이 하나 놓여 있었다. 토피어리가 천연가습 효과와 공기정화에 도움이 된다며 올케가 만들어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 작품을 보고 그는 토피어리에 흥미를 가졌다. 본래 식물에 관심이 많은 터였고, 강산난원 조직배양실에서 물이끼를 많이 다룬 경험이 있어 토피어리의 재료도 낯설지 않았다.
 
올케는 책보고 연구하고 만들어내면서 취미로 즐겼으나, 그는 본격적으로 토피어리를 배우러 나섰다. "제가, 뭘 시작하면 자격증을 따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냥 대충 하는 건 성에 차질 않아요. 2003년, 부산 서면 적십자회관에서 열린 '한국 토피어리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강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때 작은 아이가 유치원생이었죠. 김해와 부산을 오가면서 열심히 배우고 2004년 가야문화축제 때 처음으로 토피어리작품을 선보였습니다."
 
▲ 곰 토피어리 머리위에 심어진 식물은 멋진 모자를 쓴 것처럼 잘 어울린다.
그는 2004년에 안동의 재래시장 한 켠에 토피어리 공방도 열었다. "공방 옆에 꽃집이 하나 있었어요. 토피어리는 꽃이 중요한 재료라 공방에도 꽃이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바로 옆의 꽃집에서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경계하더라구요. 설명을 해도 소용없었고…. 마음을 좀 다치기도 했죠. 이후 시장 내 다른 자리로 한번 옮겼다가, 다시 안동 농협 사거리 앞에서 공방 '반가운 소식 꽃 편지'를 열었고, 2012년에 지금 이 자리로 옮겨 와 '꼬까마'를 열었습니다."
 
김해공예협회가 결성된 것도 2004년이었다. "그해 가야문화축제가 끝나고 난 뒤, 축제에 참가했던 김해의 공예인들 사이에서 '이럴 게 아니라 김해 공예인들이 하나로 모이는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곡산 이동신 선생님, 변종복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여 김해공예협회가 만들어졌죠. 후배이지만, 저도 김해공예협회의 창립멤버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현재 김해공예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토피어리 작업에 빠진 그를 식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토피어리 작업을 하면 그 흔적들, 부스러기 같은 게 많이 떨어지거든요. 초창기에는 집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으면, 남편이 '왜 이리 어수선한 분야의 작업을 하느냐, 좀 더 고상한 걸 하면 안되냐'는 말도 했죠. 그랬던 남편이 사실은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작품 관련 서류 작업도 도와주고, 용기도 주고, 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학교에서 일이 있어 어머니를 찾으면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우리 엄마 바빠서 안돼요'라면서 엄마 생각을 먼저 해준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너희들 일'이라고 말해주고, 학부모로서의 일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토피어리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그가 관심을 가진 또 하나의 분야는 원예치료이다. 원예치료는 식물을 돌보는 원예활동을 통해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심리치료의 일종이다. 정신적, 신체적인 장애인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정으로 마음을 다친 모든 사람들이 원예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는 동아대학교에서 개설한 원예치료사 과정을 16기생으로 다니면서 원예치료사 1급 자격증을 땄다. 대안학교와 일반학교 등에서 원예치료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텃밭 가꾸기, 압화, 토피어리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그의 수업은 인기가 많다. 그는 "즐겁게 원예치료 수업을 하는 동안, 정작 치료를 받고 있는 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아이들에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토피어리 체험과 원예치료 대상자의 폭이 넓은데,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레크레이션과 스피치를 따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부족하면 채워야 한다는 그는 "배우는 한 당신은 젊다는 말을 늘 생각 한다"고 털어놓았다.
 
▲ '꼬까마' 입구는 마치 동화나라처럼 신기하고 재미있다.
올해 경상남도공예품대전에서는 메타세콰이어 열매, 편백나무열매, 솔방울 등을 소재로 만든 액세서리 작품으로 입상도 했다.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 전반에 걸쳐, 그와 관련한 활동에 대해 그의 관심은 끝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토피어리의 매력을 물었다. "토피어리는 자연친화적인 공예입니다. 녹색식물 자체가 원천적 에너지를 가진 생물이잖아요. 만들고 있는 동안에도, 작품을 보는 순간에도 늘 편안합니다. 이 작업을 해온 지난 시간동안 저의 내성적인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토피어리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제가 배우고, 가르치고, 봉사하고, 작업하는 동안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 제가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두요!"

>> 김수영 
김해공예협회 사무국장. 꼬까마 원예교실 운영. (사)한국 숲해설가협회 부경협회 회원.
울산 숲생태교육지도자연구회 회원. 제2회 국제깃발초대전(네팔). 김해공예협회 회원전(1~7회). 가락문화제 공로상 수상.
한양공예대전 특선. 경상남도 공예품대전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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