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의뢰인이 씩씩거리면서 사무실로 들어온 적이 있다. 사유를 물으니, 조정실에서 판사가 '시키는 대로' 조정을 하라고 계속 강요하여 일방적으로 본인에게 불리한 조정을 하였다는 것이다. 필자가 소송대리인으로 지정된 사건이고, 당사자에게 몇 번이나 불리한 조정에는 응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사건이어서, 필자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의뢰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판사의 강요에 얼떨결에 조정에 응하였으니 이의제기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결과에 대하여는 이의제기 방법이 없다. 필자는 판사 앞에서 본인이 조정을 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말을 끝냈다. 하지만, 진실로 법원의 조정 강요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민사조정법상 조정은 임의조정과 강제조정이 있다. 강제조정은 당사자간의 협의와 관계없이, 담당 판사가 합리적인 선에서 조정결정을 하는 것이다. 강제조정에 대해서 당사자는 2주 안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이의제기가 있으면, 소송은 계속 진행된다. 임의조정은 원·피고가 서로 합의하여 그 합의 사항을 판사 앞에서 조서에 기재하는 것이다. 조서에 기재하는 순간 그 조정 사항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즉, 항소 및 상고도 할 수 없고, 조정조서로 바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당사자는 강제조정과 헛갈려 조정 기일에 임의조정을 하고 난 뒤 이의제기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조정제도는 승소 혹은 패소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 양보를 통해서 시간적, 비용적, 감정적인 측면에서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서 활성화되어 있고, 우리 법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으로 조정제도의 문제점 또한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임의조정을 '강제'하는 재판부가 많다. 어떤 재판부는 조정에 응하지 아니하면, 판결에서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하기도 한다. 조정은 당사자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서로 화해하고, 양보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조정을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일방에게 편파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조정이 빈번하다.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없애주는 대신 '소 취하' 혹은 '청구포기'라는 취지로 조정을 강요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정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패소판결을 받는 것이 낫다. 대부분의 당사자는 억울해서 소송을 한다. 소송비용이 아까웠다면 처음부터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방적인 조정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또 다른 소송 및 문제를 유발한다.
 
끝으로, 조정만이 능사는 아니다. 판결이 필요한 사건도 있다. 판결을 통한 실체적 진실발견이 필요한 사건도 있고, 헌법적으로 소명이 필요하거나 피해반복의 우려가 있어 판결이 축적될 필요가 있는 사건도 있다. 이런 사건들의 경우, 적어도 소송 초기에 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헌법적 가치실현을 위해서도, 진실을 발견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진실을 밝힌 후 조정을 할 필요성이 있는지, 혹은 공익적 가치 때문에 판결을 할 필요가 있는지를 고민하여도 늦지 않다. 필자는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서 거대집단(국가, 지방자치단체, 보험회사, 의료기관, 거대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오랜 시간 진행해왔다. 그런데, 수많은 손해배상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새로운 사건을 맡을 때마다 손해배상 전문가를 자처하기 미안할 정도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사건마다 유형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으나,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 조정을 통한 해결이 관행화되다 보니, 판결이 축적되지 않은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조정 강요 때문인지 법원마다 조정으로 끝내야 하는 정해진 비율이 있어서, 비율을 맞추기 위해 조정을 강요한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온다. 법원의 보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소송진행과 조정제도 운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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