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 끝이 많이 맵다.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축한 햇살과 이끼 낀 바람과 핸드폰 줄에까지 달라붙은 습기만 없다면 모든 걸 다 참아 줄 수 있으리라 장담했건만 대단한 오만이었고 착각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눌러 짠 듯한 농축된 더위는 사람을 육체적으로 지치게 만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일상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운동을 하려던 의지, 무언가를 배워보고자 했던 의지, 부당함에 항의하고픈 의지 등 손톱 끝에서 조금씩 자라던 선한 의지들을 이 더위란 놈이 야금야금 갉아 먹어 버리니 배터리가 방전된 느낌이다. 항상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비판과 감시의 날을 세우고 있던 모 교수님도 더위 앞에서 한없이 무뎌진다고 하소연 하는 걸 보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누구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이기 십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이 무기력감은 한낱 더위에 지친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른다. 이 더위 속에서 학생들의 질적 학습권 향상과 강사들의 생존권 문제를 걸고 온 몸에 소금꽃을 피우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인제대학교는 지난달 2학기부터 담당강의 시간이 3시간 이하인 외래교수(시간강사)는 위촉을 제한하며 해당 외래교수가 담당하는 과목은 개설하지 않거나 개설할 경우 전임교수가 담당하도록 조정하라는 공문을 각 학과에 보냈다. 대학이 시간 강사 위촉을 하지 않으면 해당 강사는 사실상 해고가 되는 것으로 2013학년도 1학기 기준으로 3시간 이하를 담당하는 시간강사는 무려 189명에 이른다. 지난해 1학기 강의를 맡았던 외래교수가 모두 393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이 넘는 시간강사들이 강단에 설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전임교원의 강의 담당비율을 높여 수업만족도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 논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전임교원의 강의담당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전임교수들의 한정된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가 아니라 충원을 통해서 풍부한 인적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러했을 때 학생들의 수업만족도와 경쟁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학교 측의 이 같은 형태는 대량해고를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비열한 꼼수이며, 스스로가 교육기관임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내년에 개정 고등교육법이 시행되면 시간 강사와 1년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꺼리는 대학 측이 법 시행 이전에 미리 강사들을 해고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당사자는 누가 뭐라 해도 학생들이다. 현재 외래교수들이 담당하는 교양 선택 과목이 개설되지 못하면 이는 명백한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이며 교원 충원 없이 한 사람에게 가중되는 강의는 질적 저하로 이어져 타 대학과의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뒤처질 수밖에 없다. 상아탑의 본래 목적이 많이 퇴색되었다고는 하지만 인제대학교가 기업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조금이라도 자각하고 있다면 모든 일의 중심에는 학생들의 권익이 우선이라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작동되어야 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몰지각한 장사치의 행동을 계속한다면 인제대학교는 더 이상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 유명한 정치가 관중은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일년지계 막여수곡, 십년지계 막여수목, 종신지계 막여수인)'이라고 했다. 1년의 계획은 곡식 심는 것 만한 게 없고, 10년의 계획은 나무 심는 것만 한 게 없고, 죽을 때까지의 계획은 사람 심는 것만 한 게 없다는 뜻이다. 이 말뜻을 새기다 보면 학교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학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각인될 것이다.
 
눈 뜨고 코 베인 189명의 시간강사님들, 무더위에 몸 상하지 않게 몸 보신하면서 투쟁하시길. 그리고 인제대, 더 이상 쪽팔리지 말자.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