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 결핵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세미나'가 열렸다. 국회의원들과 결핵협회 관계자, 일반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우리나라 결핵현황과 관리대책, 북한 결핵현황과 인도적 지원방향 등에 대해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나온 한 발표자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이 모두 1위라는 부끄러운 사실을 전했다. 2011년 한 해에 3만 9천557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했으며, 사망자도 2천300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원래 결핵은 가난한 나라에서 걸리기 쉬운 질병이라는데,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면 세계 15위나 되는 우리나라에 도저히 걸맞지 않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결핵은 기원전 7천년경의 석기시대 화석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는 아주 오래된 질환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베일에 가려져있던 이 질병은 1882년 독일사람 로버트 코흐가 병원체(결핵균)를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정체가 드러났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지만, 발병부위에 따라 폐결핵, 신장결핵, 후두결핵, 장결핵, 골수결핵 따위가 있다. 균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모두 결핵이란 병에 바로 걸리는 것은 아니다. 몸으로 들어오는 결핵균의 양, 결핵균에 대한 개인의 저항력 등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말 산업혁명을 거치며 결핵은 전 유럽을 덮쳤으며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 창궐했다. 이후 좋은 약제의 개발과 치료 기술의 발전 및 각국의 결핵퇴치 사업에 힘입어 최근 선진국에서는 거의 극복된 질환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창궐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1953년에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어 드디어 결핵의 퇴치와 예방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전 국민에게 예방접종(BCG)을 시키고,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씰을 팔아 기금을 마련했다. 마산, 공주 등에 국립결핵병원을 세운 일이나 '결핵전문의'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 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시책의 일환이었다. 이후 꾸준히 줄어들어 차츰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근년 들어 다시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2009년 4월 멕시코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신종플루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그해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망 환자는 20여 명에 불과했으니 결핵환자의 사망에 크게 못 미쳤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결핵 불감증'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필자를 찾아온 50대 초반 여인은 객담에서 결핵균이 무더기로 검출된 중증 폐결핵 환자로서 장기간 격리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결핵전문병원에 가서 입원치료 받기를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때문에 집을 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기침하고 가래를 뱉을 때마다 결핵균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병을 옮길 것인가? 이런 사람은 강제적으로라도 격리시켜야한다. 어디 이 사람 뿐이겠는가?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폐결핵이 집단적으로 발생했다는 보고를 가끔 접한다. 결핵퇴치에 성공한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결핵 환자 관리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핵에 관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북한은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우리보다 몇 배 많은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사망환자도 훨씬 많다고 한다. 치료약이 적절히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비정부단체(NGO), 세계보건기구(WHO)등이 도움을 주었지만, 북한체제의 폐쇄성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부적절한 투약으로 모든 약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언젠가 남북이 통일된다고 가정하면, 결핵이 확산되어 큰 재앙이 초래될지 모른다. 이번 정책 세미나에서 한 발표자는 "지금부터라도 북한의 결핵퇴치를 위한 인도적 지원을 대폭 확충하여 통일 이후의 의료상황에 대비하는 지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 '결핵 불감증'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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