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7일 김해도서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정희 시인 초청 강연회 지난달 27일
시를 통한 문학의 역할·시작 방법 강연
문화창조적 자산의 도시 김해 격찬


"웬만한 재주로 오래 쓰다보면 문학작품을 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심장이며, 천둥이고, 번개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말이 김해의 문인들과 독자들의 가슴을 쳤다. 김해도서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노트나 수첩에 시인의 말을 옮겨 적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27일 오후 6시 40분, 김해도서관 3층 시청각실에서 문정희 시인의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이 초청강연회는 김해문인협회(회장 이은호)의 후원과 김해문협 문학공부모임인 김해문학아카데미(회장 남승열)의 주최로 열렸다.
 
문정희 시인은 어린 시절의 기억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고향마을에 중학교가 없어, 집을 떠나 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했어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났으니 해가 질 무렵이면 어딘지 쓸쓸하고 또 슬펐지요. 그래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문학의 시작이었던 거죠. 글짓기를 하고, 군인아저씨께 편지를 쓰고…. 글을 쓰면 늘 상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갔어요. 중학교, 고등학교가 문학적 전통이 깊은 학교여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울 진명여고 시절 일찌감치 그는 각종 백일장을 석권하며 문명(文名)을 휘날렸다. 고등학교 때 뛰어난 문재를 인정받은 그는 문학특기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해 미당 서정주 문하에서 시를 배웠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9년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다. 등단 7년만인 1975년에는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등단 10년 이내의 시인이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건 그가 최초이다. "늘 주목을 받는 시인이었고, 그만큼 자긍심도 컸죠. 하지만, 내가 이룬 가장 큰 것이 있다면 현역시인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현역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시인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화려한 경력보다 자신이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는 어떤 시인이 되고 싶었는지,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느낀 것도 어린 시절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고백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초상을 치를 때, 곡비(哭婢:장례 때에 곡성이 끊어지지 않도록 곡하는 비자)를 보았지요. 어찌나 슬프게 울던지…. 시인이란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가장 슬프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의 울음을 울어주는 사람, 그런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이 겪어온 삶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함께 한다고 말했다. "저는 식민지에서 막 벗어난 가난한 조국의 태극기 아래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보았어요. 학창시절에 4·19와 5·16을 겪었고, 5·18을 보았죠. 그리고 또 한국여성인 저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자랐어요. 이런 정도의 삶을 겪기란 쉽지 않지요. 그런 면에서 국가는 무척 불행했지만, 시인인 저로선 글을 쓸 재료가 많습니다. 외국에서 만난 시인들이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한국 문인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는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말할 때는 낙랑공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랑을 위해 조국의 자명고를 찢어버리는 낙랑공주의 떨리는 칼끝, 문학은 그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낙랑에게 조국을 배반한 죄를 묻고 교훈을 말하는 것은 문학의 일이 아닙니다. 그 '떨리는 칼끝'을 보여주는 것이 시이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자격으로 이탈리아 베니스에 머물렀을 때, 그는 페기 구겐하임 박물관을 방문했다. 미국인 페기 구겐하임(1898~1979. 세기의 컬렉터)은 이곳에 잠들어 있다. 문정희 시인은 페기 구겐하임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체인징 플레이스(changing place), 체인징 타임(changing time), 체인징 도어터(changing thought), 체인징 퓨처(changing future). 이 글귀를 봤어요. 장소를 바꾸면 시간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미래가 바뀐다는 의미이죠. 저는 오늘 김해로 왔습니다. 김해(金海)라는 이름에서 바다와 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허왕후 이야기를 다시 생각합니다. 김해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땅입니다. 김해에서 그 이야기들을 되살려 문학으로 확대재생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해는 문화창조적 자산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을 안고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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