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유도예 2층 다실에서 내려다보면 전시장 안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김희원·박희숙 부부가 최근 만든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병찬 기자 kbc@
좋은 그릇은 비싸지 않게 만들어내고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야 최고
음식을 담는 것에 화학재료 쓰면 안돼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채취해야

차 사발·분청의 고장 김해에 반한 남편 30여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율하로 정착
그림·국악 등 예술 소질 뛰어난 아내 장유폭포에 도자갤러리 카페 부푼 꿈


김희원(57), 박희숙(51) 부부가 함께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장유도예는 장유동 율하 4로 40번 길 71-1에 위치해 있다. 도착하고 나서 보니 낯 익은 곳이다. 장유도예는 목공예가 장용호(본보 5월 29일 자 '공간&' 참조) 씨의 학고방과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었다. 넓은 작업장을 지나 언덕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장유도예의 전시장, 다실, 체험실 등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다실은 시골집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는데, 경상도 지방의 전통적인 다실 형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도예체험도 하고, 다실에 앉아 차 한 잔 하고 싶었다. 1980년부터 장유도예를 꾸려가며 반평생이 넘도록 그릇을 빚어 온 김희원·박희숙 씨 부부를 만났다.

장유도예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데, 천정이 높아 시원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전시장 안쪽은 복층구조인데, 다실로 꾸며져 있었다. 2층 다실에서는 전시장이 구석구석까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이 전시장은 김희원 씨가 직접 지었다.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 탁자 앞에 앉으니 창밖으로 주변의 나무와 하늘도 내다보였다. 처음 지을 때부터 만든 벽난로, 나중에 들인 화목난로도 가까이 있었다. 추운 날 전시장 안을 후끈 데워주기도 하겠지만, 군밤이며 군고구마 구워먹기도 좋겠다. "비오는 날, 눈 내리는 날 모여 앉아 차 한 잔 나누면 분위기가 좋지요. 고구마 구워먹자고 성화를 부리는 친구들도 있구요. 불시에 쳐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김희원·박희숙 부부는 기자에게도 고구마 구워먹는 날 꼭 오라고 청했다.
 
김희원 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는데, 자라기는 서울 인사동에서 자랐다. 그는 전통공예품이나 미술품이 많이 들어서기 전 고풍스럽던 인사동 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도자기 작업과 판매를 함께 하는 친척 아저씨와 함께 도자기를 만들고, 도자기 납품을 하다 김해로 내려왔다. "김해가 '김해 차 사발'과 '분청'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김해 차 사발을 제 손으로 재현해보고 싶었어요. 분청, 청자, 백자… 다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김해로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자리를 잡았지요. 1980년부터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습니다."
 
장유도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김해에 세운 요장(窯場:도자기를 구워 내는 곳)이나, 작고한 사기장들이 운영한 요장을 제외하고는, 현재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요장이다.
 

▲ 박희숙 씨가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유화와 도자기로 표현한 작품.
부인 박희숙 씨는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20세 무렵, 부산 광복동 외국인관광쇼핑센터에서 일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갈망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그는 퇴근을 하고 나면 그림을 배웠다. 또 언젠가는 좋은 전통다실을 운영하리라는 계획을 세운 그는, 동래구청 앞의 전통다실 '구름을 벗어난 달'에 다도를 배우러 다니며 일도 도왔다. '구름을 벗어난 달'의 주인 신무용 씨는 전각을 하는 전통공예가였다. 김희원 씨가 이 찻집에 전각을 배우러 간 것이 이들 부부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전각을 배우러 온 36세의 청년 김희원 씨는, 다도를 배우고 있던 30세의 박희숙 씨에게 반했다. 신무영 씨와 '구름을 벗어난 달'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모두 김희원 씨를 은근히 도왔다.
 
"무거운 짐도 들어주고 옆에서 일을 슬쩍슬쩍 거들어주는 게 싫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의 분위기가 온통 우리 두 사람을 엮어주는 쪽으로…, 완전히 몰아가는 분위기였죠. 뭔가 한참 진행되어가는 그런 거 있잖아요." 박희숙 씨가 옛일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데이트하러 장유까지 올 때 일이 생각나네요. 시외버스를 타고 오다가 고속도로 중간에 내려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저를 데리러 왔어요. 논길을 한참 털털거려서 장유로 왔어요. 그때는 완전히 시골이었지요. 장유도예 작업장에 와 보니 10여 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더군요. 일은 잘 되었는지 몰라도, 살림은 엉망이고…. 밥 해주고 설거지 하다가 이 사람 옆에 여자가 없다는 것, 그 텅 빈 자리가 절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결혼을 했나 봐요." 박희숙 씨는 지난 결혼 생활을 '진흙탕 속에서 뭔가 정리를 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희원 씨가 '진흙탕?'이라며 부인을 바라보았지만, 그 눈빛에는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김희원 씨의 작업은 실용적인 면이 강하다. "그릇을 빚어내는 작업이 예술에만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분청은 서민들이 사용했던 그릇입니다. 저도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그릇을 만들어 왔습니다. 웅진코웨이, 청호나이스에서 고객에게 증정하는 도자기그릇을 제가 만들어 납품했지요. 작품 만들어서 공모전에 내고 상 받고 작가이름 붙여서 비싼 값 받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주부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그런 그릇을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작업해왔습니다.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고, 새로 유약을 배합하고. 늘 기술개발에 투자했습니다."
 
▲ 김희원 씨가 재현한 조선시대 도자기.
그는 "좋은 그릇을 비싸지 않은 값에 만들어 내는 것이 최고의 경지이며,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손으로 빚어 만들어낸 그릇들 중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은 일정한 틀을 만들고, 프레스를 이용해 같은 모양으로 생산해낸다. 유약은 참나무제유 100%를 사용한다. "그릇에 음식을 담고, 바로 입으로 가져가니 천연재료를 사용해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채취해야 합니다. 음식만 웰빙이 아니라, 그릇도 웰빙이어야 합니다. 천연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화학재료를 쓰면 전통도자기라고 할 수 없어요. 미역재, 메밀재, 참나무재 등 사용할 수 있는 천연재료는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그릇을 빚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빚어내는 작품에 관한 김희원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옛 전통도자기의 재현에도 능하다. 그는 자신이 재현한 조선시대의 도자기작품 때문에 법정에 선 일도 있다. 그의 재현작품을 본 어떤 사람이 팔 것을 요구했다. "재현작품이니 8만 원을 받고 팔았죠.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작품을 도자기전문상에게 800만 원에 되팔았어요. 그 도자기전문상이 그 작품을 들고 나를 찾아와 묵은 때를 벗겨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첫눈에 제 작품인 것을 알았죠. '어, 이거 내가 만든 건데' 했더니 도자기전문상이 800만 원에 재현작품을 판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그 일에 휘말려 법정에서 증언하고… 그런 일도 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만든 재현작품을 하나 보여줬다. 기자의 눈에도 그의 재현작품은 몇 백 년 전의 작품으로 보였다.
 
김희원 씨가 장유도예에서 생산을 맡고 있다면, 부인 박희숙 씨는 홍보·판매·영업 전반을 도맡아 하고 있다. 장유도예의 일을 맡고 있는 틈틈이 박희숙 씨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그림에도 열중하고 있다. 김해여성작가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최근 유화와 도자기 작업을 접목시킨 작품을 선보였다.
 
▲ 김희원(왼쪽) 씨와 박희숙 씨.
"어느 봄날, 바람에 꽃잎이 살랑살랑 흩날리는 모습을 보았죠. 순간 노래 한 대목이 절로 나왔어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하구요. 땅에 떨어진 꽃잎을 주웠어요. 도자기로 꽃잎 모양을 만들어 구워냈습니다. 캔버스에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연분홍 치마를, 그리고 그 위에 도자기 꽃잎을 달았어요." 그가 빚어낸 도자기 꽃잎에는 작은 구멍이 나있다. 이를 실로 꿰어 캔버스에 붙였다. 그림을 벽에 걸어둔 뒤에도 바람이 캔버스를 스치면 도자기 꽃잎이 찰랑찰랑 맑은 소리를 낸다. 김해에서 남도소리꾼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승자(본지 3월 6일자 '공간&'참조) 씨와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박희숙 씨는 국악을 배우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림, 도자기, 국악. 하는 건 많은데, 그 중 어느 하나에도 올인 할 수도 없고, 뭔가 미진하고…." 그는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다며 쑥스러워했지만, 현장에서 기자가 만난 그는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국악 무대에 올라선 그는 아름다운 소리꾼이었고,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화가였고, 장유도예에서 만난 그는 남편 김희원 씨가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동반자였다.
 
장유도예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장유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부터 장유도예도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벌써 15년이네요. 최근 이 마을도 보상 문제가 마무리돼 마침내 내년에 이사를 하게 된 겁니다. 장유폭포가 있는 상점마을로 가요. 지금 한창 설계중인데, 도자갤러리카페 형식으로 꾸밀 생각입니다. 차도 마시고, 도자기 체험도 하고, 작품 감상도 하는 그런 곳입니다. 이사하고 나면 꼭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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