꽹과리와 장구, 북, 징 등은 풍물놀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전통악기들이다.
그중에서도 꽹과리는 풍물놀이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리듬악기이다. 이 꽹과리의 제1연주자를 '상쇠'라고 한다. 상쇠는 놀이판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휘어잡는, 놀이판 전체의 지휘자이다. 김해지역의 풍물놀이판을 이끌어가는 이명식(64) 씨. '김해의 영원한 상쇠' 이명식 씨를 만났다.

이명식은 1951년 김해군 덕도면 상덕리 상덕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부산으로 편입돼, 부산시 강서구 강동동 9통 3반이 됐다. 이명식은 지금 김해시 구산동에 살고 있는데, 김해문화원과 김해 각 지역에서 풍물단을 지도하는 시간 외에는, 자신이 나고 자란 들판으로 달려간다. 강서구의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튼실하게 자리 잡은 비닐하우스가 그와 제자들의 풍물 연습장이다. 들판 한가운데에서 나는 악기 소리는 땅과 하늘로 스며든다.
 

▲ 이명식 씨가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꽹과리를 치며 흥겨운 소리 한마당을 엮어가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부산 강서 들판 한가운데
비닐하우스 안에 마련된 연습장
제자들과 '천지우' 풍물단 결성 맹연습

이명식은 어린시절 상덕마을에서 풍물놀이판이 열리면 흥미진진하게 이를 지켜봤다. 그는 상쇠였던 김무복, 종쇠였던 김두용 등 마을 풍물놀이판을 이끄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어린 명식에게는 악기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만의 악기를 마련했다. 빈 깡통을 하나 구해 들고 꼬챙이로 두드리면서 놀이판 끝에 섰다. 7세 된 명식의 뒤로는 동네 꼬마들이 또 하나의 놀이판을 이루었다. '변소에 가서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꼬마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일이어서, 명식은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변소로 가 주당풀이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풍물단 어른들은 "이 놈이 크면 제법 잘 하겠다"며 칭찬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명식은 이미자의 노래 200여 곡을 내리 뽑아 젖히며 어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만큼 흥도, 재주도 많은 아이였다.
 
서울에서 일하던 부친이 49세 때 작고한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이명식은 18세 때부터 공장에도 다니고 장사도 하면서 집안을 보살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김해에서 택시운전을 오래 했다. 화엄선사 문하에서 선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장구며 북이며 전통악기를 늘 가까이 했다. 그가 풍물놀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39세 무렵이었다.
 
김해는 농촌마을이 많은 곳이라서 각 마을마다 풍물놀이단이 있었다. 김해문화원에서 고 류필현 원장이 1984년에 김해가락오광대를 재연하는 등, 김해는 경남의 그 어느 지역보다 풍물놀이가 많은 곳이었다.
 
"오광대의 '가락'이라는 지명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는데, 가락국을 의미하는 겁니다. 김해문화원의 류필현 원장님께서 김해가락오광대를 재연하고 보완하러 다니실 때, 함께 모시고 다녔습니다. 김해 각 마을의 풍물놀이도 되살려냈지요. 1962년 '가락문화제 농악경연대회'를 마지막으로 맥이 끊겼다가 김해문화원 농악경연대회가 되살아난 것이 1993년이었어요. 류 원장님을 필두로 이강식 사무국장, 정용건 총무 등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지요. " 당시 이명식은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명식은 그러면서 "상동면 출신의 강재수 어른이 계셨는데, 이 어른이 김해의 소리를 가르쳐주셨지요. 그 어른 덕분에 끊어졌던 맥이 다시 이어진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타고 난 흥과 재주 '될 성 부른 떡잎'
어릴 때부터 장단 익히며 소리도 배워
1996년부터 지도강사 시작해 활동 왕성
전국 대회에서도 쇠 소리에 대동한마당


이명식의 타고 난 흥과 재주는 이런 인연들을 만나면서 세련되고 깊이 있게 가다듬어졌다. 풍물놀이에 쓰이는 전통악기들은 모두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고, 소리면 소리, 춤이면 춤까지 모두 익혔다. "이명식 혼자서 원맨쇼가 가능할 정도"라고 주변사람들은 말한다.
 
▲ 선반설장구 차림새를 하고 나선 이명식 씨.
실력을 다지고 갖춘 이명식은 1996년 주촌면에서 풍물지도강사를 시작했다. 북부동, 회현동, 부원동, 내외동, 진영읍과 진례면의 각 마을, 진영농협풍물단…. 그는 김해 읍면동의 풍물단 강사로 활동하면서 김해의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를 중심으로 김해의 풍물단이 성장해왔다. 각 마을의 풍물단에는 그 마을에서 끼 있고 재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바탕 위에서 활동하는 김해문화원 풍물단은 경남 최고의 풍물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김해의 어르신들이 취미활동으로 또 건강을 위해 계속 풍물놀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온 것이다. 그 세월동안 그가 지신밟기를 해온 집만 해도 1년 평균 300집 이상 된다. 말 그대로 이명식을 중심으로 한 풍물단이 김해 사람들의 평안과 소원을 빌고, 액을 씻어온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김해의 영원한 상쇠'라고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 장단에 징은 한 번을 칩니다. 일 년을 의미하지요. 북은 네 번, 사계절입니다. 장구는 열두 번, 열두 달입니다. 꽹과리는 365번, 매일입니다." 이명식이 풍물놀이의 4악기를 설명했다. "4악기에는 우주 공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징은 바람소리, 북은 구름소리, 장구는 빗소리, 꽹과리는 번개소리를 본떠 만든 악기이지요. 풍물놀이는 꽹과리로 시작해 꽹과리로 끝납니다."
 
놋쇠를 얇게 펴 만든 둥근 모양의 꽹과리. 지름이 20cm 내외로 징과 같은 모양이지만, 훨씬 작고 가볍다. 옴팍한 몸체인 울림판과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끈 그리고 몸체를 칠 수 있는 꽹과리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소리는 움직이면서 치는 타악기들 중 음역대가 가장 높다. 풍물놀이단원들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모든 단원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꽹과리가 풍물놀이단을 이끄는 것은 그 때문이다.
 
"쇠(꽹과리)를 치면 그 소리 속에 나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갑니다. 무아지경이 되는 거지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세상을 깨우는 듣기 좋은 울림입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스트레스)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소리이지요. 신명이 나면 내가 없어지는 듯한 기분, 내가 내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할 정도가 됩니다. 몸이 펄펄 날다시피 하는 거지요."
 
그는, 상쇠는 풍물단 전체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원들을 이끌어 원을 그리고, 반대로 나아가고, 마주보기도 하고… 진을 치면서 놀아야 하니까요. 단원들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어떻게 치고 있는지, 관객들은 흥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전부 살펴보면서 놀이판을 장악해야 합니다."
 
악기소리가 잦아들며 놀이판이 끝나가는 듯해 못내 서운해질 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꽹과리 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새 놀이가 시작되는 장면에서의 흥이란 얼마나 큰가. 이처럼 공연의 끝과 시작은 꽹과리를 치는 상쇠에게 달려 있다.
 
이명식이 김해문화원 풍물단을 이끌고 다른 지역의 대회에 나갈 때는 이런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각 풍물단이 함께 놀 때, 상쇠 이명식의 꽹과리 소리가 뿜어내는 기가 얼마나 강한지, 다른 풍물단까지도 그에게로 끌려온다. 결국 이렇게 해서 대동놀이 한 판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그는 김해 각 지역의 풍물단을 지도하는 한편,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풍물단 '천지우(天地友)'를 결성했다. 강서구의 들판 한가운데 있는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천지우 단원인 손순이, 백양순, 김재숙, 이미옥 씨가 이명식의 주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꽹과리 소리를 시작으로 북과 장구가 울렸다. 꽹과리 연주가 끝나자 제자들이 김해가락오광대의 할미과장 편을 청했다. 할미과장이 끝나자, 선반설장구를 또 요청했다. 청, 황, 홍색 띠를 격식에 맞게 두르고 장구를 허리에 단단히 맨 다음 이명식은 펄펄 날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의 발재간에 감탄이 흘러나오고 휘모리장단의 장구소리가 또 한 번 가슴을 흔들었다. 짧은 공연 몇 개가 이어졌으니 한 판 풍물놀이가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계속 자리하고 있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기자가 먼저 작별을 고하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 먼 들판에서 김해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김해의 소리를 지키고 김해의 평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빌어온 김해의 상쇠, 이명식의 발원이었다.

>> 이명식
김해문화원 풍물단 지도강사·상쇠. 김해 각 지역의 풍물단 지도강사를 맡고 있다. 제35회 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 김해시석전놀이팀 최우수상(2009), 제14회 김제지평선축제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인상·단체상 수상(2012), 제2회 당진시장기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인상(2013), 제5회 경상남도지사기 어르신 농악경연대회 대상(2013) 등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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