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환자 C 씨가 폐렴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실로 뛰어갔다. 그녀는 16년 전 말기 심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다 우리 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사람이다. 그녀가 칠순이 넘은 지금도 건강하다는 것은 나에게 큰 위안이다.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빌며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1991년, C 씨는 심장이식 수술이 꼭 필요한 상태였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 수술을 시행하는 병원이 없었다. 내가 이식수술 연수를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가, "돌아오시면, 절 꼭 살려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기약 없는 약속이었다. 수년 후 그녀의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또 내가 과연 잘 해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해 가을, 내가 피처버그에 체류하고 있을 때 서울의 모 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잠시 마음이 허탈해졌다. 한국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하는 의사가 되어 보겠다던 내 꿈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고 C 씨에게 그 병원에 가서 속히 수술을 받으라고 연통을 넣었더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답신이 왔었다.
 
귀국 후 10여 차례의 동물실험을 끝낸 후 C 씨를 불러 다시 물었다. "우리 병원에서 처음 하는 일인데 정말 여기서 수술 받으시겠습니까?"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빨리 수술해 주세요!"
 
우리 몸에 심장은 하나뿐이다. 콩팥이나 간처럼 산 사람의 심장을 일부 떼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다. 심장을 통째로 기증할 뇌사자(腦死者)가 나타나길 기다려야 했다. 뇌사자가 있다 해도 신체의 여러 조건이 서로 맞아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 여의 초조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C 씨에게 적절한 뇌사자가 나타났다. 인근 병원에서 치료받던 뇌출혈 환자였다. 다행히 수술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수술 말미 그녀에게 이식된 고인의 심장이 힘찬 박동을 시작했을 때, "드디어 성공했구나!" 하는 감격으로 나의 심장도 쿵쾅 쿵쾅 뛰었다.
 
사람의 심장은 생명을 견인하는 강력한 펌프에 비유된다. 고인의 심장은 이제 새로운 주인의 가슴에서 1분간 60~70회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5천㏄의 혈액을 뿜어내어 전신에 보내기 시작했다. 사경을 헤매던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준 고인의 고귀한 사랑이었다. 1997년 가을에 실시된 영호남 최초의 심장이식이었다.
 
이듬해 정월 그녀는 우리 병원 원보의 표지인물로 발탁되면서 감사의 말을 썼다. "불안하고 단조롭기만 했던 일상생활의 일들이, 수술을 한 뒤로는 하루하루 감사하고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남편과 두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심장을 준 이름 모를 기증자와 가족들, 그리고 조광현 교수가 너무 고맙다"고.
 
나는 오히려 한결 같이 나를 믿고 따라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이후 우리 병원 심장수술은 날로 번창해 갔다. 흉부외과 의사로서 나의 입지를 단단히 굳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병원에서 환자들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환자가 의사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C 씨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환자가 의사를 키운 셈이다. 그렇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지만, 환자로 인하여 성장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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