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분이 이런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출근길의 차 안에서 깡마르고 걸음걸이가 불안해 보이는 한 노인이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쩔쩔매며 활천고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걸 보았는데, 하루 종일 마음속이 서늘하고 괴롭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불현듯 범려를 떠올렸습니다.
 
범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월나라의 재상을 지낸 사람으로서, 정치 군사 경제 연애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범려는 월왕 구천을 도와 적국을 멸망시켰으나, 스스로 권력(재상 직)을 버리고 칭다오 인근 제나라로 몸을 옮겼습니다. 그때 범려가 친구인 월왕의 측근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지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다.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누릴 수 없는 인물이다. 그대는 왜 아직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인가?"
 
범려는 이렇게 해서 권력을 버린 대신, 제나라에서 큰 부를 이룩합니다. 현대의 중국인들은 그를 상성(商聖) 즉, '상업계의 성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상성이라 불리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범려는 제나라에서 직접 불모지를 개척해 부를 일구었는데, 생산품의 이익은 원가의 10분의 1만 취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건재해야 시장이 유지된다는 실리적 판단도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미국의 거부 20명이 자발적으로 '부자 증세'를 요구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범려는 제나라의 요청에 따라 잠시 재상 직을 맡기도 했는데, 이내 그만두고 제나라를 떠났습니다. 떠나면서는 거의 모든 재산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때 범려는 이런 말도 했다 합니다. "천금의 재산을 지니고 관원으로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 이상의 명예가 없다. 그러나 오래 존귀함을 누리는 것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경주 최 부자. 경주 최 부자 집은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했습니다. 최 부자 집은 진사 이상의 벼슬은 금한다,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않는다,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않는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 는 전통을 지켰다고 하더군요. 최 부자 집은 1년에 약 3천 석의 쌀을 거두었는데, 1천 석은 직접 사용했고, 1천 석은 과객에게 베풀었고, 1천 석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도 합니다. 범려와 최 부자, 이들은 부를 만들 줄 알았으면서도 절도를 지킬 줄 알았고, 주위를 사랑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좋은 부자'라고 해야겠습니다.
 
김해에서도 부자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김맹곤 시장만 해도 경남지역 정치인들 중에서 재산이 가장 많습니다. 문제는 그 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일 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김해의 부자들이 '적어도 김해에서만큼은 깡마른 노인이 폐지가 실린 리어카를 끌며 위태롭게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풍경을 없애버리겠다'는 각오를 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마침 오늘자 <김해뉴스>를 보면, 김해는 고령화사회로서,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노인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노인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부디 김해의 부자들께서 기사를 찬찬히 일독하시고, 좋은 방향으로 마음을 내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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