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스님이 찾아왔다. 평소 녹차를 즐겨 마시는 스님에게 체질상 섭취량을 줄일 것을 권유했다. 스님은 이내 소화불량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졌다.
 
녹차의 정확한 정의는 발효시키지 않은, 푸른빛이 그대로 나도록 말린 찻잎 또는 찻잎을 우려낸 물을 말한다. 국내 주요 원산지는 전남 보성군과 구례군 및 경남 하동군 등이며, 보성은 특히 차밭으로 유명해 관광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따는 시기에 따라 4월 초순에서 5월 초순에 딴 것을 '우전', 5월말에서 6월에 딴 것을 '세작', 7월에서 8월에 딴 것을 '중작', 8월 하순에 딴 것을 '대작'이라고 한다.

가공방법에 따라서는 부초차와 증제차로 나누기도 한다. 부초차란 솥에 찻잎을 비비는 과정을 통해 만든 것이며, 증제차란 찻잎에 압력을 가해 찌는 과정을 통해 만든 차이다. 형태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커피숍에서 말차라고 파는 것은 녹차의 분말 형태, 즉 가루차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녹차는 잎차이다.
 
녹차의 효능으로 흔히 알려진 것은 콜레스테롤과 혈압 강하, 항암 작용과 항노화 작용 등이다. <동의보감> 원문에서는 탕액편 목부에 녹차를 고다(苦茶·작설차)라고 표현하고 있다. '맛은 달고 쓰며 독이 없다. 몰린 기운을 내리게 하고, 오래된 식체를 삭히며, 머리와 눈을 맑아지게 하고, 소변을 시원하게 나가게 하고, 소갈을 치료하며 잠을 덜 자게 한다. (중략) 녹차를 오랫동안 먹으면 기름이 빠져서 야위게 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의학적으로 보자면, 콜레스테롤 강하 작용이란 마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혈압 강하 작용 혹은 몰린 기운을 내리게 한다는 의미는 기립성 저혈압이나 평소 혈압이 낮은 사람은 좋지 않다는 의미이다. 소변을 시원하게 나가게 한다는 작용은 몸이 습하고 튼실한 사람에게는 좋으나 몸이 건조한 사람은 먹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잠을 덜 자게 한다는 효능은 입면장애 등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는 역설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소화불량을 호소한 스님의 경우도 굉장히 수척하고 마른 체형의 사람으로, 속이 냉하고 차가운 소음인 환자였다. 철관음과 보이차 등 차에 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 분의 체질은 속이 냉하고 마르고 건조했기 때문에 이뇨작용을 통해서 몸의 수분을 배출하고 몸을 차갑게 하는 쓴맛을 지닌 차는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오히려 속이 냉한 소음인에게는 계피차나 생강차와 같이 속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차가 체질에 더 어울린다. 실제로 이 스님의 경우는 녹차 섭취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소화불량 증상이 나아져 많은 효험이 있었다.
 
귤이 회수(淮水·중국 남북을 가로지르는 강)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같은 사물이라도 환경과 조건이 다르면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녹차가 무조건 건강에 좋다는 식의 건강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건강에 좋다고 하면 백화점 판매가격에서 '0'이 하나 더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고, 없어서 못파는 것도 웃지 못할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고 하던 성현의 격언이 녹차 웰빙열풍에 대한 한의학적인 관점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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