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부산대 사진부원들과 대저면으로 사진촬영을 하러 갔다.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던 한여름, 구포다리 아래에서 수건을 둘러쓴 아낙들이 도란도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식수용 수도시설조차 부족하고 당연히 세탁기는 없던 시절, 아낙들은 더러워지기 쉬운 흰옷을 자주 빨아야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우물이나 냇가, 강가에 모여 빨래를 했다. 그 때 빨래터는 속 썩이는 남편 욕, 시어머니 험담에 가끔 자식 자랑을 하던 사랑방이었다. 아낙들은 집에서는 말도 못하고 마음에 묻어두었던 상처를 강물에 깨끗이 씻어버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회원로그인 작성자 비밀번호 댓글 내용입력 댓글 정렬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닫기 더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닫기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본문 / 400 비밀번호 닫기 내 댓글 모음 닫기
1959년 부산대 사진부원들과 대저면으로 사진촬영을 하러 갔다.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던 한여름, 구포다리 아래에서 수건을 둘러쓴 아낙들이 도란도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식수용 수도시설조차 부족하고 당연히 세탁기는 없던 시절, 아낙들은 더러워지기 쉬운 흰옷을 자주 빨아야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우물이나 냇가, 강가에 모여 빨래를 했다. 그 때 빨래터는 속 썩이는 남편 욕, 시어머니 험담에 가끔 자식 자랑을 하던 사랑방이었다. 아낙들은 집에서는 말도 못하고 마음에 묻어두었던 상처를 강물에 깨끗이 씻어버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