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가지는 구충, 잎은 설사 치료
매실 가공 오매·백매 기침·복통 등 효험
국화과 택란 출산 후 각종 질환에 사용
현대엔 고혈당 혈관 항염증 효과 주목
단맛 나는 감국 풍열 내리고 눈 밝게
안구건조증에도 좋아 감국차로도 즐겨
죽엽은 심열·대나무 진은 가래 해소
겉껍질 죽피 부인과 질환에 중요 약재


한의학에서 오행의 관념이 스며든 계절 구분이 춘하추동이다. 겨울은 오행 중 북방의 수기(水氣)가 지배하는 시기이다. 봄은 목기, 여름은 화기, 가을은 금기가 지배한다고 본다. 이러한 오행의 관념을 동양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사군자(매란국죽)가 대표적이다. 봄은 매화, 여름은 난초, 가을은 국화, 겨울은 대나무를 상징한다. 새삼 겨울을 맞아 '사군자와 한의학'에 대해 알아본다.


■ 봄-매화

매화는 이른 봄에 꽃을 틔우기 때문에 봄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는 매화나무의 열매, 가지, 잎 등을 한약재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가지는 한자로 매지(梅枝)라 하며, 벌레를 몰아내는 데 사용한다고 기록돼 있다. 매엽(梅葉)인 잎은 진하게 달여서 먹임으로써 체하여 갑자기 토하고 설사를 하는 급성위장병인 '곽란' 같은 설사를 치료하는 데 쓴다고 되어 있다.
 

역시 매화나무의 가장 큰 쓰임새는 열매인 매실이다. 매실은 껍질이 연한 녹색인데, 과육이 단단하고 신맛이 강한 것을 청매(靑梅)라 한다. 청매가 익어 노란빛을 띠면 황매(黃梅)라 한다. 한약재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6월쯤 수확한 청매를 오매(烏梅)와 백매(白梅)로 만든다. 백매는 청매의 씨를 빼고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건져내었을 때 표면에 흰가루가 낀 것을 말한다. 오매는 매연 속에서 훈증하여 흑색이 되도록 한 것인데,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다 하여 오매라 불렀다. 오매는 폐기를 수렴시켜 기침과 해수를 멎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하며, 진액부족으로 인한 갈증에 사용함은 물론 회충으로 인한 구토와 복통에 쓴다고 되어 있다.
 
매실의 효능은 침을 분비시켜 갈증을 없애주는 것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에는 '날 것은 신맛으로, 이와 뼈를 상하게 하므로 많이 먹어서는 안된다. 진액이 많이 빠지면 이가 상한다'라고 되어 있다. 진액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내부에 있는 체액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내부의 액은 신장에 있는 생명의 액이다. 자꾸 액을 끌어올리면 신장 기능이 약해지며, 그 결과 신장이 주관하는 치아가 손상된다.
 
조선 중기 학자 신흠은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을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했다. 사화(士禍)와 붕당의 먼지 나는 세상에서 지조를 잃지 않으려 했던 선비의 몸은 필시 스트레스로 점철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선비정신을 일깨우던 매화에서 꽃이 떨어지고 열린 열매가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 여름-난
<시경>의 '유란조(幽蘭操)'라는 시는 공자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유랑하는 답답한 심경을 잡초 사이에서 자라나는 난에 비유하여 쓴 것이다. <시경>에서 언급한 난은 국화과의 택란으로 추정하는 데 이견이 없다. 민간에서 택란의 잎과 줄기는 향기가 있어서 몸에 지니거나 집안에 두어 방향제로 사용하기도 하고, 벌레를 제거하는 살충제로도 사용했다. 또 끓는 물에 우려내 목욕물로 쓰기도 했고, 그 씨앗으로 기름을 짠 난고(蘭膏)를 등잔기름으로 사용했다.
 
택란은 오늘날 한약재로 널리 쓰이는 것 중의 하나이다. 택란은 몸의 물기운을 돌려 부종을 가라앉히고, 어혈을 제거하고 새로운 피가 생겨나도록 하는 효능이 있다. 따라서 출산 후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을 때 택란을 썼고, 출산 후 복통과 자궁출혈이 멎지 않는 경우를 어혈로 보고 역시 택란을 썼다. 택란은 맛이 쓰고 향기가 강하다. 대나무와 달리 따뜻한 성미를 지닌 약재로, 어혈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최근 현대 한의학에서도 택란에 주목하고 있다. 원광대 이호섭 교수 팀은 택란 추출물이 '고혈당으로 인한 혈관의 항염증 효과' 등 혈관 질환에 효험이 있음을 세계적 학술지에 논문으로 기재한 바 있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택란은 향기로운 친구라는 뜻의 방우(芳友)라고 할 만큼 향기가 강하고 따뜻한 성질을 지닌 한약재이다. 강한 향은 어혈을 제거하고, 따뜻한 성질은 출산 후 냉해지기 쉬운 자궁을 따뜻하게 한다. 따라서 택란은 자궁이 냉하여 어혈이 생겨 난임의 어려움을 겪는 여성에게 안성맞춤인 한약재이다.
 

■ 가을-국화
가을은 국추(菊秋)라고도 한다. 국화가 피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특히 가을국화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전후하여 꽃을 피우므로 모든 꽃이 시드는 가을서리에도 굽히지 않는다고 하여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는 찬양을 얻었다.
 
국화를 한의학에서 한약재로 쓸 때는 감국(甘菊)과 야국(野菊) 두 종으로 나누어 쓴다. 구별은 맛으로 하는데, 꽃잎에서 단맛이 나면 감국이고 맛이 쓰면 야국이다. 감국의 효능은 풍열을 내려 간의 기운을 기르고, 눈을 밝아지게 하는 데 있다. 감국의 성질은 서늘하며, 맛은 달면서 쓰다. 성미가 서늘하고 쓴맛이 있어 상부의 열을 내리고 눈을 밝게 한다. 때문에 눈이 충혈되거나 붓고, 두통과 어지럼증이 있을 때 응용되는 한약재이다.
 
안구에는 항상 촉촉하게 점액이 흘러야 윤활을 하는데, 수분 비율이 줄면 눈이 뻑뻑해진다. 한의학에서는 간장(肝臟)과 신장(腎臟)의 기운이 부족하면 눈의 기능에 이상이 나타난다고 하고, 이를 안구건조증으로 본다. 신장에서 진액이 눈으로 올라가 촉촉하게 안구를 적셔주어야 하는데, 과도하게 소모된 탓에 안구가 건조하게 되는 것으로 본다. 때문에 수기를 공급하여 안구건조증을 치료하도록 처방한다. 대표적인 처방이 기국지황환이다. 육미지황원에 감국을 더하여, 눈의 풍열을 내려줌으로써 안구건조증을 치료한다. 국화도가 품은 인내의 의미를 되새기며, 감국차로 눈을 밝고 맑게 할 일이다.
 

■ 겨울-대나무
대나무는 우리 선조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싹을 틔운 죽순은 좋은 먹을거리였고, 자라서 숲을 이루면 북풍을 막아주었으며, 오래 되면 베개 등 생활도구로서 삶을 윤택하게 했다. 지성의 세계에서 대나무는 곧게 자라 휘어질지언정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강직함이 있다.
 
죽순이 선조들의 먹을거리였다면, 한의학에서는 한약재로 대나무의 여러 부분을 썼다. 대나무의 잎은 죽엽(竹葉)으로, 대나무의 진은 죽력(竹瀝)으로, 대나무 껍질은 죽여(竹茹)라는 이름의 한약재로 쓰였다.
 
죽엽은 겨울의 차가운 기운을 받아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죽엽을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열, 즉 심열(心熱)을 내려주는 한약재로 보았다. 해열제로 대나무 잎을 쓴 것이다.
 
죽력은 담죽의 줄기를 불에 구워서 받아낸 액즙으로, 민간에서는 대나무기름이라고도 불렀다. 한방에서는 오래된 기침을 '담음'이라는 가래가 제거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때 죽력이 담을 제거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담음이 오래도록 체내에 머무르면 생기는 것이 중풍이라고 보는데, 죽력이 중풍에 좋다는 속설도 이 때문에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아 죽력은 가래를 삭히고 열을 내리는 약이다.
 
죽여는 죽피(竹皮)라고도 하는데, 대나무의 겉껍질을 제거하고 긁어낸 중간층을 말한다. 죽여도 열을 내리고, 열을 동반한 구토·가래·출혈 등을 치료하는 약재이다. 뿐만 아니라 임신 구토나 태동 불안 등 부인과질환에도 중요하게 사용되는 약재이다.
 
<역경>의 계사전에 보면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遠取諸物)'이라는 구절이 있다. 가깝게는 자기 몸에서 진리를 찾고 멀게는 각각의 사물에서 진리를 찾으라는 명문이다. 선조들은 대나무의 생태적인 특성에서 시련의 극복과 선비정신을 새겼다. 그리고 한약재로 응용하여 열을 내리고, 진액을 보하는 약재로도 응용했다.







도움말 = 활천경희한의원 이현효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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