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동물의 가죽을 사용한 시기는 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을 사냥해 음식을 구한 것은 물론, 동물의 털과 가죽을 이용해 몸을 가리고 보호했다. 인류가 터득한 최초의 기술로 가죽 사용을 드는데, 그 이유는 이런 까닭에서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죽제품은 이집트 시대의 것으로, 무두질한 가죽샌들·가죽옷 등이 남아 있다. 무두질은 동물의 가죽을 물로 씻고, 칼로 훑어서 털과 기름을 뽑은 뒤 가죽을 부드럽게 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중세·근세에 들어서는 무두질 가죽 생산량이 많아져 의복은 물론, 가구에도 사용됐다. 19세기에는 과학의 발달과 함께 가죽기술이 눈부시게 진보했다. 오늘날에는 의복, 가방, 신발, 장신구 등 실생활 전반에 걸쳐 가죽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손으로 제작된 수제품은 애호가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김해에서 가죽공예를 하고 있는 장경미(46) 씨를 만났다.

김해문화의전당 M층에 있는 윤슬미술관 입구에는 김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공방이 몇 곳 있다. 장경미의 공방 '슈가M'도 이곳에 있다. 슈가M은 처음 그가 설탕공예를 시작했을 때 붙인 이름인데,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 홀치기 기법으로 수 차례 염색한 가죽은 마치 꽃무늬가 인쇄된 고운 천처럼 보인다. 김병찬 기자 kbc@gimhaenews.co.kr
장경미는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 담임선생님이 그의 그림을 보더니 "표현력이 뛰어나다"며 크게 칭찬했다. 선생님은 "도시락을 싸오너라. 수업을 마친 후에 선생님하고 밥 먹고, 그림을 그리자"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 선생님이 이듬해 대구로 전근 갔다가 몇 달 뒤 경산으로 오는 길에, 48색 크레파스와 그림물감을 사다주었다.
 
그는 귀한 선물을 해준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조박자 선생님. 저에게 예술의 길을 처음 열어주신, 감사한 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3일 밤낮동안 그림을 그려도 피곤해 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사물을 모두 그려보았고, 주변에 없는 사물은 책을 보고 그렸다. 그림대회에 나가면 어김없이 상을 받았는데, 방학 종업식을 할 때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상을 받기도 했다. "상장과 함께 받은 부상을 혼자 다 들지를 못해 친구들이 집으로 날라다주곤 했지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당시에는 종이인형이 여자아이들의 최고 장난감이었는데, 그림을 잘 그렸던 그에게 공주와 옷을 그려달라는 친구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의 공주그림 한 장 받으려고 친구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때도 예약주문을 받았어요. '언제까지 그려주께~' 하면서.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약간 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 봐요."
 
그토록 뛰어난 그림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걸 반대했다.
 
마흔 무렵 알게 된 설탕공예의 세계
지점토·종이꽃·케익디자인·홈패션 등
공예 관련 죄다 섭렵하며 실력 쌓아
가죽 원단 접한 뒤 가죽공예에 심취
쌍어문양 등 다양한 디자인 개발 박차
"전통 옻칠가죽 기법도 꼭 배울겁니다"


그림을 끝내 그리지 못하고, 그는 스무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김해 토박이인 남편과 결혼했다. "시댁에서 3년간 살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계속 뭔가를 만들며 살아왔어요." 그는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지점토공예, 종이꽃공예, 꽃꽂이를 했다. 그가 만든 작품은 장사를 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개업 선물로 주기에도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마흔 무렵 우연히 설탕공예를 알게 됐다. "견딜 수 없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족을 떠나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설탕공예를 배웠지요. 2년 정도 서울에 머물면서, 1주일에 한번 김해의 가족들을 만나러 왔고….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설탕공예도 선생님에 따라 분위기가 다 다르니, 여러 분을 찾아다니면서 배웠지요. 설탕공예에 필요한 것을 배우다보니 케익 디자인, 초콜릿, 홈패션까지 다 배우게 됐구요."
 
그가 가죽공예를 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가죽공예를 시작한 건 3년 전쯤이었다. "공예는 모든 부분이 연결돼 있어요. 자신이 만들고 있는 작품에 다른 분야들을 접목시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죠. 그래서 다른 분야를 함께 공부해요. 설탕공예를 위해 홈패션을 익혔고, 홈패션을 하다 가죽공예를 만났어요. 그리고는 가죽공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그가 가죽 원단을 펼쳐보였다. "와리(가죽을 얇게 가공하는 작업)를 거친 소가죽이에요. 소가 만약 상처를 입었다면, 그 흔적이 가죽에 주름처럼 남아요. 처음에는 그 주름이 없는 부분으로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주름을 보면, 이 부분을 어떻게 활용해 작품을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펼친 소가죽은 아주 연한 분홍색이었다. 가죽원단이 옷감처럼 사각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의 네 다리가 있던 부분, 엉덩이가 있던 부분까지를 짐작할 수 있는 형태였다. 소가 네 다리를 쭉 펴고 누운 평면그림을 생각하면 되겠다.
 
▲ 휴대폰 케이스와 동전 지갑도 섬세하고 예쁘다.
"가죽공예의 참 매력은, 똑같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그가 가죽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무리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그럴 수 없어요. 가죽이 다 다르거든요. 눈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부분 부분 두께도 다 다르고, 바로 옆 부분 색도 조금씩 달라요. 염색을 하면 더 다르겠죠? 똑같은 디자인으로 작품 두 개를 만들 수가 없어요. 자세히 볼수록 아주 작은 주름이나, 반점이 보이거든요. 그걸 보면서, 어떤 디자인의 어떤 작품을 만들까 고민하는 거죠."
 
그는 가죽공예의 과정을 잠시 보여주었다. 뻣뻣해 보이는 가죽에 물을 뿌리자, 가죽은 이내 부드러워졌다. 두꺼운 고무판 위에 놓은 가죽 위에 송곳으로 꽃잎을 그렸다. 그는 이 과정을 두고 '그림을 딴다'고 했다. 가죽에 남은 송곳 자국 위에 다양한 굵기의 모델링 틀을 대고 망치로 두드리니 꽃잎의 모양이 좀 더 선명해졌다. 문양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모델링 틀의 굵기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됐다. 수지판으로 만든 문양을 가죽에 찍을 때는 대리석판 위에 놓고 망치로 두드렸다. 장경미는 쌍어문양을 비롯해 다양한 문양디자인을 직접 개발 중이었다.

그는 가죽 염색에도 관심이 많다. 물을 뿌려서 가죽이 부드러워지면 중간 중간 묶은 뒤 안료에 담가 물들이는 홀치기 기법으로 염색을 한 가죽 한 장이 펼쳐졌다. 두어 번 염색한 가죽은 꽃잎이 몇 장씩 겹쳐져 그려진 듯 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요."
 
그는 꼭 배우고 싶은 가죽공예 기법이 있다고 했다. "우리 전통기법 중에 가죽에 옻칠을 하는 기법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칼로 잘라도 잘라지지 않을 만큼 질기고 단단해지죠. 우리 조상들은 말안장, 말과 수레를 연결하는 끈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이 기법을 꼭 배울 거예요."
 
그는 김해에서 설탕공예와 가죽공예를 가르치는 한편, 부산 강서구에 있는 부산산업과학고에서 가죽공예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는 루이뷔통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저도 그 희망을 학생들과 함께 꿈꾸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최고 인기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내년에 슈가M에서 가죽공예, 설탕공예, 클레이 케익 등의 과정을 열어 수강생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워서 남 줘라'라는 말이 있대요. 남들이 모르는 것을 먼저 배워서 더 많이 알려주는 것, 보람 있고 의미 있잖아요? 저도 더 많이 배우고 싶고, 배운 만큼 더 가르쳐주고 싶어요. 70, 80이 되어도…."

≫ 장경미
김해공예협회 회원. 가죽공예가, 설탕공예가. 김해문화의전당 M층 '슈가M' 운영. 풀잎문화센터 등 김해시 각 지역에서 공예 강사로 활동 중. 부산산업과학고에 가죽공예강사로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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