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 건너편 평야 지대에 있는 마을, 주천강 물이 올라오던 포구가 있던 밀포마을."
 
진영읍 진영리 밀포마을은 진영리 중심부의 북쪽에 있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과 진영읍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인 주천강의 북쪽이다. 밀포는 한자로 밀포(密浦)라고 쓰는데, '중심이 되는 곳에 있던 포구'라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한구마을이라고도 불렸다.
 
창원 대산면과 경계 주천강 북쪽 자리
한구마을이라 불린 진영 중심지 포구
홍수조절 양·배수장 옛 추억 고스란히
공장·축사 없어 깨끗하고 인심도 후덕


진영읍내를 스쳐지나 진산대로로 가다가 어느 순간 주변이 온통 논이다 싶었는데, 농로를 따라 승용차로 거의 10분 가까이 들어가서야 밀포마을에 도착했다.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그늘을 이루겠다 싶은 나무 몇 그루 뒤로 마을회관이 보였다.
 

▲ 마을회관을 오른편에 두고 바라본 밀포마을 전경. 마을회관 잎 정자는 여름날 주민들의 쉼터이다.
겨울이었지만 마을로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은 따스했다. 회관 주변에서 정창석(87) 씨를 만났다. 정 씨는 "모처럼 바람이 안 불고 볕이 따스해 바깥 나들이를 나왔다가 손님들을 만나네"라며 이방인을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예전에는 주천강에서 물이 올라와 웅덩이를 파서 물고기를 가둬 먹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둑을 쌓고 나서 논농사를 지었다. 이 마을에서 50년을 살았는데, 예전에 비하면 살기가 좋아졌다. 공장이나 축사가 없어 마을이 깨끗하고 주민들 인심도 넉넉하다"고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 씨는 "저 앞에 보이는 들판에서 우뚝 솟은 독뫼가 장고산이야. 장고를 닮았다고 장고산이라고 했지. 봄이면 진영 사람들이 봄놀이를 오곤 하던 곳이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들 와서 밟아댔던지 정상의 고개에는 빤질빤질하게 길이 났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비가 많이 오고 주천강이 범람하면 마을 앞 들녘은 물론이고 마을의 집에까지도 물이 들곤 했단다. 장고산은 밀포마을 사람들이 물을 피해 올라가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정 씨는 "물이 차면 장고산 위로도 올라가고 진영읍으로도 피난 가곤 했지. 곡식을 베어 놓고 나면 비 오고 곡식 마를 만하면 비 와서 물 차고… 예전에는 고생 많이 했다"며 옛일을 더듬었다. 농사 지을 물이 필요할 때는 주천강 물을 넣었다가 홍수가 지면 물을 퍼냈다가 하는 양·배수장은 지금도 마을 입구에서 가동 중이다. 그는 "주천강 근처는 다 주천강의 영향을 받아서 근처 마을들 이름에 죄다 '포'가 들어간다"며 "밀포 말고도 남포, 고동포, 상포, 중포 등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정 씨는 "마을에 물이 들어오는 일이 많으니, 예전에는 물을 퍼내지 말고 아예 물길을 만들어 마산 앞바다로 흘러 보내자는 의논도 있었다"고 말했다.
 
회관 앞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마을은 들판 한 가운데 들어 앉아 있는 형세이다. 마을 앞에 우뚝 솟은 독뫼인 장고산 말고는 땔감 구하기도 힘들었겠다 싶었다. 예전에 밀포마을 사람들은 나무하러 10리나 떨어진 산까지 가는 건 예사였다. 산이 멀어서 추수가 끝난 뒤 보리밑둥이며 벼밑둥까지 베다가 땔감으로 썼단다. 비가 많이 오거나 주천강이 범람하면 물난리도 겪었지만, 정작 식수와 생활용수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 손수레에 물통을 싣고 물지게를 지고 왕복 1시간 거리인 우물로 오가기도 했다.
 
우병호(61) 이장은 "요즘 식수는 수도로 해결하지만, 농업용수는 아직도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마을에서는 논농사를 하거나 하우스에서 화훼·토마토 농사를 짓는다. 물이 부족해 농업용수 해결이 주민들의 숙원"이라고 밝혔다.
 
우 이장은 또 "마을에 34가구 101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교통편이 안 좋아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마을에서는 눈앞에 진영읍내의 대단지 아파트가 보인다. 직선거리로 계산하면 진영 읍내가 지척이지만,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30분은 걸어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는 나들이는커녕 병원에 가거나 시장 보러 가는 길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통편으로 보자면 밀포마을은 진영에서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이다. 제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교통편을 해결해달라"는 건 회관 주변에서 만난 마을 주민 대부분의 바람이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