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기세가 무섭다. 개봉할 당시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소문을 타며 오히려 관객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2014년 첫 천만관객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과 역대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에, 일각에서는 '변호인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말 가족들과 영화를 관람하기 전, 나는 두 사람에 집중했다. 첫 번째 인물은 당연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고 두 번째 인물은 배우 송강호였다. 나에게 이 두 사람은 김해라는 동향에서 어떤 시절을 스치듯 공유한 사람들이며, 그동안의 족적만으로도 믿음과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제의 일처럼 가슴 아프지만 불의 앞에서 당당했던 그분을 생각하면 나도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배우 송강호는 여타의 인터뷰에서 드러났듯이 맡은 배역을 위해서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익히 들어온 터라 배우라는 이미지보다 예인(藝人)이라는 느낌이 강했으며, 그가 출연한 작품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았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에 전율이 느껴졌던 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두 사람을 통해 듣게 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고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변호인'을 보고 나는 우리나라 헌법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문구를 가지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이 당연한 명제에 눈물이 났던 것은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다른 역학관계 때문이었다.
 
정조는 <정조이산어록>에서 임금은 백성을 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을 섬긴다고 했다. 백성이 아니면 임금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기에 백성을 하늘로 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이 아니면 살아나갈 수 없기에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것이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의 하늘을 중히 여기는 것이 나라의 안녕을 위한 주춧돌이라고 옛 성현은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나라의 권력 기관은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로 감행한 파업은 불법으로 매도되며 자주적인 역사마저 독재와 친일에 위협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풀뿌리 민중은 더 이상 섬김의 대상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며 오히려 국민들이 국가와 권력자의 눈치를 봐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극중 우석이 "국가란 국민이다"라고 한 말은 이 때문에 더욱 뼈아팠다.
 
그렇지만 이러한 답답한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오는 6월에 치러지는 지방 선거 때문이다. 김해시에서도 이미 여러 명의 여야 후보들이 시장선거 출사표를 준비하고 있고 <김해뉴스>는 그 어느 매체보다 불손하고 까다롭게 그들을 검증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의 손에서 나오듯 김해시의 권력 또한 김해시민의 손에서 비롯됨으로 풀뿌리 민중이 올곧게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섬길 줄 아는 참 지도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2014년 올해는 청마(靑馬)의 해라고 한다.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12년 마다 다섯 가지 색이 되풀이 되는데 60년을 기다려야 청마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살아 생전 또다시 청마를 보기는 힘들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 말의 신비로움 보다 청마 유치환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교육의 폐단이라고 해야 하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펄럭이며 얼마나 깨끗한 이상을 꿈꾸었던가. 여기 유치환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변호인'을 보면서 떠올렸던 가난한 시였다.
 

굶주리는 마을 위에 놀이 떴다.
화안히 곱기만 한 저녁놀이 떴다.
가신 듯이 집집이 연기도 안 오르고
어린 것들 늙은이는 먼저 풀어져 그대로 밤 자리에 들고,
끼니를 놓으니 할 일 없어
쉰네도 나와 참 고운 놀을 본다.
원도 사또도 대감도 옛같이 없잖아 있어
거들어져 있어-
하늘의 선물처럼
소리 없는 백성 위에 저녁놀이 떴다. 

<유치환, 저녁놀>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