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치에서 겨울올림픽이 한창입니다. 소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시베리아로 간 데카브리스트의 여인들 생각을 하곤 합니다.
 
10여 년 전, 남북한 간의 경의선 철도 연결을 염두에 두고 시베리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겨울이었고, 눈이 많았고, 추웠습니다. 새벽 한 시에 예카테린부르그 역에 내렸을 때는 영하 37도였습니다. '시베리아의 관문'이라 불리는 예카테린부르그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혁명 이후 유배됐다 처형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데카브리스트의 여인들을 알게 된 건 이르쿠츠크에 머물 때였습니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입니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바이칼 호가 이곳에 있습니다.
 
100년도 더 훨씬 전인 1825년 12월. 일군의 귀족 출신 청년장교들이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을 기화로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원로원 광장에서 봉기를 했습니다. 농노제 폐지와 전제 군주체제를 무너뜨리는 게 목표였습니다. 우리나라 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바로 이것입니다.
 
'데카브리스트'는 이 봉기에 참여한 귀족 출신 청년 장교들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러시아어로 '12월 당원'을 뜻합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은 준비 부족 탓에 맥없이 진압당했습니다. 5명은 처형당했고, 120여 명은 이르쿠츠크로 유배됐습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6천㎞가 넘는 길을 걸어서 유배를 갔고, 이르쿠츠크의 광산에서 20㎏이 넘는 족쇄를 찬 채 중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얼마 뒤 데카브리스트의 젊은 아내들과 약혼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길을 따라나섰습니다. 상당수가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에서 객사하는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난방이 잘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로 갔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마차가 우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이들 중에 예카테리나 토르베츠카야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봉기를 주도했던 토르베츠코이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이르쿠츠크에 당도했고, 혹한 속의 광산으로 남편을 찾아가 족쇄를 찬 발에 입을 맞춘 뒤 포옹을 했습니다. 그런 뒤 허드렛일을 하며 남편을 돕다 사면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습니다. 남편은 수십 년 만에 사면되었으나 이르쿠츠크와 지역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 지역의 문화를 고양하다 죽었습니다.
 
이르쿠츠크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살던 집이 보존돼 있습니다.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그마한 목조 건물입니다. 기념관 안에는 데카브리스트가 입던 옷과 안경, 책상, 필기구 같은 것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들의 발에 채워져 있던 족쇄와 투박한 삽도 보입니다. 안경과 책상과 필기구를 보니,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시베리아의 겨울 어느 날 한 데카브리스트가 호롱불 아래에서 언 손을 녹이며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제법 시렸습니다.
 
오늘 자 <김해뉴스> 5면 기사를 보니, 6·4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임박했습니다. 저마다 포부가 남다르겠습니다만, 출마를 하려는 분들과 내조(혹은 외조)를 하려는 분들이 한번쯤은 데카브리스트와 그 아내들의 이야기를 접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부디, 세상을 향해 좋은 마음들을 내 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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