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서 오면 십리길, 장유에서 오면 오리길."
 
명법동은 행정동으로는 칠산서부동에 속해 있다. 명법동과 풍류동, 화목동, 이동, 강동, 전하동, 흥동 등 7개의 법정동이 모여 칠산서부동을 이룬다. 명법동은 김해서 장유로 가는 국도 53호선 왼쪽, 칠봉산 서쪽과 북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 푸조나무가 있는 언덕 오른편 위쪽에서 내려다본 명법 1통.

광복 이후 1947년 현재 이름으로 개명
300년 이상 된 시보호수 푸조나무 위용
용도 달랐던 샘도 네군데나 솟아나기도
현재 칠산서부동 속한 7개 동 중 하나

국도에서 명법 1통으로 들어서면 언덕 위에 서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거목이 먼저 길손을 반겨준다. 한겨울이라 가지만 남아 있었지만, 한여름이면 널찍한 그늘을 드리우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풍채가 좋은 푸조나무다. 푸조나무가 서 있는 자리 주소는 명법동 309. 1981년 7월에 시보호수로 지정됐다. 지정 당시에 수령이 270년이었으니 이제 300년이 넘었다. 나무둘레는 3.7m고 높이는 18m에 이른다. 나무 그늘 아래는 널찍하고 튼튼하게 짠 평상이 두 개나 놓여 있었다. 평상에 앉으니 앞이 툭 트여 마을과 칠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까지 다 보였다.
 
푸조나무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마을회관을 찾아갔다. 마을회관 앞에는 '명법1통 마을회관'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었다. 마을 할머니들이 "우리 마을에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봉우리가 일곱 개라고 옛날부터 칠봉산으로 불렀다. 칠봉산 둘레로 마을들이 자리 잡았다. 우리 마을도 그중 하나다. 원래 이름은 음법리(陰法里)였지만 명법리로 바뀌었다." 이 마을 출신인 김영숙(86) 씨가 마을 이름부터 설명했다. 칠봉산을 등지는 그늘에 위치했다고 해서 음법리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광복전까지 음법리라고 불렀는데, 이름을 부를 때 어감이 안 좋다고 해서 1947년 명법(明法)이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칠봉산 주변 마을들이 그랬듯 명법 1통 주민들도 모두 칠산 들판에서 쌀농사를 주로 지었다. 김 씨는 "사람들이 머슴을 소 등에 태워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좋은 음식을 해먹이고 하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며 어렸을 적을 회상했다. 몇 십 년 전 칠산 들판에 기대어 살던 마을들의 풍경이 연상되는 이야기였다.
 
▲ 마을 입구를 300년 이상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푸조나무. 한여름 신록이 우거지면 품 넓은 그늘을 드리운다.
비가 많이 오면 조만강이 넘쳐 논은 물론이고 큰길까지 물이 찼다고 한다. 큰물이 들고 나면 논바닥에는 미꾸라지는 물론이고 큰 잉어까지 퍼덕거렸다. 왕복 십리길을 걸어 장유국민학교를 다녔던 김 씨는 "비가 내려 물이 차면 길 옆 수로에 빠질까봐 길가 버드나무를 보며 학교까지 걸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는 힘들게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해도 공출이 심해 나락을 다 뺏기기도 했다"는 아픈 역사를 들려주었다. 부산여고를 다녔던 김 씨는 일본 경찰들이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와서 도시의 하숙집으로 가는 학생들의 짐 보따리를 조사해 곡식을 빼앗아 갔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김태자(77) 씨는 "대구 서문시장 옆에 살다 스물세 살에 이 마을로 시집왔다"며 "기와집 몇 채말고는 전부 초가집인 시골마을이었다. 좁은 길 옆에는 바위도 많았다"고 옛일을 더듬었다.
 
회관에 나와 있던 할머니들은 "예전에는 유일한 부업이 갈(갈대)로 삿갓이나 자리를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부녀자들이나 아이들은 갈을 두드리고 남정네들은 자리를 만들고…. 그걸 김해 오일장이나 장유장, 녹산까지 가져다 팔았다. 대나무로 소쿠리를 만들어 팔던 이도 있었다. 밤에는 집집마다 여인네들이 길쌈해서 식구들에게 옷을 해 입히고 다들 열심히 살았다."
 
할머니들은 옛이야기를 하며 지금은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 고생하면서 자녀들을 공부시킨 덕분에 이제는 명절 때면 외지에서 찾아오는 자녀들의 차량으로 마을 안팎이 넘쳐나 주차할 곳이 모자란다는 자랑도 했다. 요즘은 하우스에서 토마토, 상추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우리 마을에는 샘이 네 군데나 있었다. '통새미'는 빨래하는 새미, '약새미'는 먹는 새미…. 농사를 시작할 때면 밤새 새미 물을 못자리에 대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옛 이야기를 한 대목 씩 늘어놓다가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무슨 특별난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제법 사연이 있네. 이만하면 글 쓸 게 되겠제?" 마을의 옛날 일을 기억하고 계신 할머니들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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