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한 중진 국회의원에게 물었습니다. 정치, 행정(기관), 사법, 언론, 시민단체들 중에서 어느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이 의원은 의외로 '행정'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여기서의 '행정'은 중앙정부와, 김해시를 비롯한 지방정부 그리고 각 산하 기관들을 말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각 분야의 업무를 찬찬히 톺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동의했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분야는 정치도 사법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아니고 행정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행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2차적 업무 혹은 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회가 법을 만들더라도 행정이 실행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언론이 예방기사를 쓰고 비판을 하더라도 역시 행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행정의 권한과 의무와 책임은 각별해 보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앞에서 우리의 행정은 존재 의미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초동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구조의 결정적 시간(골든 타임)을 놓쳤고, 실종자 집계는 엉터리였습니다. 행정은 자주 말을 바꾸면서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지당한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냉철하게 행정(력)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출 시점이란 생각을 합니다. 비난과 공격은 잠시 접어두고 행정이 집단적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극복과 철저한 예방책 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을 추동하는 동시에, 국민 개개인이 행정의 정당한 집행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침 대한손상예방협회(KIPA) 배석주 사무총장이 제 개인 메일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배 총장은 "지금 우리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머리는 차갑게 유지해야 할 것 같다"면서 "단원고 교감선생님 같은 선택을 하는 분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평정심을 되찾아 최선의 수습대책을 마련하고 원인 분석과 함께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배 총장은 그러면서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일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연스럽게 생활화한다. 일본 학생들은 여행지의 숙박시설에 도착하면 자신의 방에서부터 직접 비상계단을 걸어 본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체험실기실습 위주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자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심폐소생술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만, 완벽하게 할 줄을 모릅니다. 화재시의 대피 요령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만, 영화관이나 비행기, 배 안에서 대피 요령이나 사고시의 대처 요령에 대한 안내 방송이 나오면 건성으로 듣습니다.
 
저는 그러면서 행정이 이런 부분을 강제하고, 개개인은 순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11 테러' 직후 미국 워싱턴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한 건물 안에서 정부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관계자는 무조건 인터뷰를 중단하고 일어섰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따라나섰더니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이 계단을 통해 밖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대피 훈련을 한 것이었습니다. 듣자니, 행동지침을 어기면 곤욕을 치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특정인들만의 잘못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참에 우리의 행정과 국민 개개인이 함께 반듯하게 섰으면 합니다.


김해뉴스 /이광우 사장(부산일보 이사)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