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이행률은 85%로 높지만 실천 항목 수가 22개인 시장이 있다. 반면에 이행률은 52%에 불과하지만 실천 항목 수가 47개인 군수가 있다. 두 사람 중에서 누가 과연 일을 열심히 했고, 잘 한 것일까.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아닌가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최근 전국의 민선 5기(2010~2014년) 도지사·교육감·시장·군수들의 공약 이행 여부를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이들은 선출직 공직자들의 공약 실천 여부를 평가하는 일을 수행하는 단체다. 매니페스토란 '공약, 선언문' 등의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다. 이들이 내놓은 자료를 찬찬히 분석하면서 실천율과 실천 개수 중에서 어느 게 더 중요한지를 숙고해보자.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경남지역 선출직 공직자들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 단체는 고영진 경남도교육감과 김맹곤 김해시장, 하창환 전 합천군수를 약속이행 우수자치단체장으로 꼽았다. 고 교육감은 28개 공약 가운데 25개를 이행해 이행률 89%를, 김맹곤 시장은 26개 중 22개를 실천해 이행률 85%를 기록했다. 하 전 군수는 71개 중 64개를 실행해 86%의 이행률을 나타냈다. 고 교육감과 김 시장은 1년에 평균 4~5개씩 공약을 실천한 셈이다.
 
이제 공약 이행률이 80%대에 못 미쳤다는 다른 시장, 군수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정만규 사천시장은 이행률이 75%였다. 공약 100개 중 75개를 실천했다. 이홍기 거창군수는 이행률이 72%였지만 공약 100개 중 72개를 이행했다. 정현태 남해군수의 이행률은 52%에 그쳤지만 공약 90개 중 47개를 실천했다. 다시, 연평균 공약 이행 수를 보자. 사천시장은 1년에 평균 19개, 거창군수는 18개, 남해군수는 12개를 실천했다.
 
여기서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연간 12개씩 총 47개의 공약을 실천해 이행률이 52%에 그친 정현태 남해군수와 이행률은 85%이지만 1년에 겨우 4개씩 총 22개를 실천한 김맹곤 시장 가운데 누가 더 일을 열심히 한 것일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경남지역 시장·군수들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정은 총 38조 9천983억 원이다. 이 가운데 시장·군수들이 확보한 재정은 15조 3천27억 원으로 확보율(국비, 시·도비, 시·군·구비, 기타)은 39%였다. 이 가운데 국비가 61%인 9조 3천265억 원이었다.
 
100개 공약을 내놓았던 사천시의 경우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정이 2조 8천927억 원이었다. 확보율 39%를 적용할 경우 1조 1천271억 원을 확보한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김해시의 경우 공약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4천863억 원이었다. 공약이 26개밖에 안되니 재정이 덜 필요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1조 원이 넘는 재정을 확보한 사천시와 애당초 4천억 원 정도만 필요하다고 한 김해시를 놓고 보았을 때 어느 쪽이 일을 더 잘한 것일까. 내용을 잘 모른 채 숫자의 마력에 농락당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사족 하나 더. 김맹곤 시장이 이행했다는 공약을 한 번 살펴보자. '청년취업 본부 설치로 청년실업 해소, 교육예산 15%로 확대, 초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시, 방과후학교 지원 확대, 인터넷 학습지원센터 설치, 신어천·대청천 정비 및 공원 조성, 도심 속 쌈지공원 조성,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스템 구축, 종합치수 사업 확대, 공공디자인 도입으로 가야문화 복원, 대중교통 환승시스템 구축, 창원터널 통행료 무료화, 맞춤형 보육서비스 확대, 어린이 공간 유해물질 관리, 노인 일자리사업 확대, 장애 없는 생활환경 구축, 생활체육 종합지원조례 제정, 의생명특화단지, 봉하마을~화포천 생태테마형 관광벨트 조성, 중소기업 비즈니스센터 건립, 난개발 정비 및 주거환경 개선.'
 
독자여러분들은 이 공약들이 대단해 보이시는지?
 
이 같은 결과를 보면, 생각나는 글귀가 하나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불운한 정치철학자 한비자가 책에 남긴 내용이다. '더 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만 약속해 놓고 그만큼만 한 신하나 많이 약속해 놓고도 다 하지 못한 신하나 둘 다 벌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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