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건축사회 강동민 회장이 '기본에 충실'한 대지청국장의 매력을 설명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로 시국이 어수선한데 즐겁게 밥 먹는 이야기를 신문에 내도 될까요. 꼭 내겠다면 서민들이 즐겨 찾는 단골집이 있으니 거기로 갑시다."
 
김해시건축사회 강동민(52) 회장은 삼정동에 있는 대지청국장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대지청국장은 식탁이 6개밖에 없는 자그마한 백반집이다. 주차할 곳도 없다. 그런데 식사 시간이면 빈자리가 없다. 바깥에 대기할 만한 공간도 없어 늦게 가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식탁이라 해봐야 고작 6개뿐인 백반집
하루종일 빈자리 없이 단골들 "밥달라"
소박한 밥상이지만 가족 먹이듯 차려내
밑반찬도 제철 식재료로 정성껏 마련

 
강 회장은 "오전 11시 30분까지 오이소. 더 늦으면 밥 못 먹습니다"라고 당부했다. 그가 정한 시각에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청국장 백반이 이미 밥상 위에 나와 있었다. 먼저 온 강 회장이 다른 손님들을 배려해 미리 주문을 해 놓은 것이었다.
 
청국장 백반의 상차림을 보니 그리 특별한 점은 없다. 뚝배기에 청국장이 담겨 있었고 쌈채소와 멸치젓 그리고 오이소박이 같은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김치와 생선구이, 나물 등을 하나씩 먹어보니 다들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강 회장은 "거래처가 근처에 있어서 수년 전에 우연히 들렀다. 처음에 왔을 때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밥 먹을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대지청국장을 찾게 되더라"며 "이 집은 기본에 충실하다. 청국장이 자극적이지 않고 나머지 반찬도 그렇다. 집에서 먹는 맛이다"라고 설명했다.
 
대지청국장은 가게 이름에 청국장이 들어가지만 동태찌개, 시락국밥, 된장찌개처럼 한 끼를 때우기 좋은 음식을 두루 팔고 있다. 손님들은 올 때마다 지난번과 다른 음식을 주문하는 작은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반찬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철마다 계속 바뀌므로 질릴 염려가 없다.
 
청국장은 된장처럼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음식인데 된장보다 발효되는 속도가 빠르다. 물에 불린 콩을 볏짚으로 덮어 숙성시키면 '바실러스'라는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효소를 뿜어내 끈적끈적한 청국장을 만들어낸다.
 
청국장은 발효 전의 콩보다 소화가 잘된다. 콩은 단백질과 각종 무기 영양소가 듬뿍 있지만 우리 몸에 잘 흡수되지 않는데, 청국장은 발효균이 만든 효소 덕분에 영양소 흡수율이 높다.
 
청국장은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요즘은 냄새를 크게 줄인 제품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국장을 오래 즐긴 사람들은 냄새가 적은 청국장을 청국장이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청국장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조선이 여진족과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이걸 알게 돼 '청국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청국장은 한 달씩 걸리는 된장과 달리 2~3일이면 만들 수 있고 콩을 그대로 사용하므로 제조법이 단순한 편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청국장을 말려서 보관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이런 방법은 청나라 군대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크다. 전투식량의 하나로서 '전국장'으로도 불리던 청국장은 이제 백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 됐다.
 

▲ 대지청국장이 자랑하는 청국장과 밥.
대지청국장의 이영희(49·여) 대표와 직원 2명은 항상 바쁘다. 보통 잘 된다는 백반집들은 점심과 저녁식사 때 1시간 정도씩 자리가 없는 게 통례이지만 대지청국장은 손을 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은 편이다. 오전 10시에 밥을 팔기 시작하면 늦은 아침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오고, 11시면 아침을 굶은 사람들이 온다. 오후 2시까지는 점심 손님으로 붐비는데, 그 이후에는 바쁜 시간을 피해 뜸을 들이던 택시기사들이 들어오곤 한다.
 
오후가 되어 잠시 쉰다 싶으면, 이내 두루치기 같은 요리를 반주와 함께 먹으려는 저녁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토요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일하다 말고 부지런히 찾아온다.
 
처음에는 기사가 나가길 원치 않는다며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던 이 대표는 말문을 열기 시작하자 당찬 기운을 뿜어냈다. 그는 "5년 전 문을 열기 전까지는 외식업 경력이 없었고,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은 게 전부였다. 특별히 잘하려고 한 적도 없고 그저 가족에게 하듯이 만든다"며 "음식을 만들 때 불필요한 간을 하지 않고, 반찬도 먹을 만큼만 내온 다음 더 달라고 하면 더 준다. 음식 재료는 오래 보관할 곳도 없어 매일 시장에 가서 산다.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방법과 똑같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대지청국장의 인기는 기본을 지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본을 지키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음식점이 기본을 무시하고 다른 점을 내세우는 게 현실"이라며 "음식점뿐만 아니라 건축업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많은 분야가 기본을 지키지 않아 부작용이 생긴다. 세월호 사고도 기본을 무시하는 바람에 참사가 일어났다"고 역설했다.
 
강 회장은 "건축사들은 건축물의 안전을 감리하므로 전문교육 말고도 윤리교육을 받는다. 자격시험을 쳐서 면허를 받는 직업은 공인의 성격이 있으므로 책임감이 막중하다"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전문가들이 위험성을 경고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기본을 지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참사가 일어나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처럼 바다모래를 씻지도 않고 쓰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 건축업계에는 아직까지 후진성이 꽤 남아 있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안전인력 숫자와 안전 관련 예산이 크게 차이가 난다"며 "이를테면 여기 바깥에서 짓고 있는 건물을 보자. 일본은 이처럼 건축 현장이 노출되도록 하지 않고 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 사람들이 안심하고 지나가도록 배려한다. 대지청국장에 오는 손님 중에는 건설업계에서 일하거나 근처 간이수공업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지청국장의 정신을 공감하고 본받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부산이 고향으로 1980년부터 부경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992년에 김해로 왔다. 당시 김해는 일감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1993년에 건축사 면허를 받고 이듬해 개업한 뒤 지금까지 김해에서 활동해 오고 있다.
 
그는 "나에게 김해는 제2의 고향이다. 김해에서 살면서 하는 생각은 대지청국장의 음식처럼 거리낌 없이 생활하자는 것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기본을 중시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며 "요즘 밥집에 '착한 가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게 유행인데 과연 어떤 밥집이 착한 것인지를 생각해봤다. 결국은 대지청국장처럼 기본을 지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대지청국장/김해대로2491번 길 19. 김해고 담장 옆길에 있다. 055-336-1154. 청국장, 다슬기들깨탕, 동태찌개, 된장찌개 6천 원. 김치찌개, 시락국밥 5천 원. 삼겹살 130g 6천 원. 돼지두루치기 1만 2천 원. 닭볶음탕 2만 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일요일은 쉰다.

김해뉴스 /최윤영 기자 c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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