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미국 가수 바네사 윌리엄스의 '컬러 오브 더 윈드(color of the wind)'라는 팝송을 들었다. 1995년 '포카혼타스'라는 월트디즈니 영화의 주제곡으로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이 곡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린 서로서로 이어져 있어요. 끝 없는 원 안에, 그 테두리 안에(And we are all connected to each other, In a circle, in a hoop that never ends).'
 
그렇다. 우리는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 유교에서는 끝없는 이러한 원안의 이어짐을 태극(太極)으로 설명하며, 불교에서는 이러한 이어짐을 '인연'이라 부른다. 인연이라는 어휘는 연기설에 기반한 것이다. 연기설은 불교의 우주론으로,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라는 만물의 인과 관계와 상호의존성을 강조한 이론이다. 업보란 이러한 연기설의 입장에서 '현세의 행복은 과거 선한 덕을 쌓은 업보이며, 현세의 괴로움은 과거 악행을 행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라는 위치는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현재는 과거의 업을 받는 결과의 시점인 동시에 미래의 업보를 시작하는 행위의 시점이다. 따라서 'Carpe diem, Seize the day(현재를 즐겨라)'와 같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도 하나보다.
 
불교의 연기설을 한국 속담으로 바꾸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며, '뿌린대로 거둔다'이다. 뿌린대로 거두는 인과법에서 '돈'이 대표적인 매개체가 된다. 돈에는 주는 사람의 업이 실리고, 돈을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업을 어깨에 짊어진다. 따라서 의사는 돈을 매개로 환자의 질병과 부상이라는 업을 털어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때문에 의료인의 업은 결코 가벼운 업보가 아니다. 수많은 환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통해 전달받은 업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정상적인 가정을 지키지 못한 의료인이 많고, 자녀에게 탈선이나 비행 등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의료라는 업의 공과이기도 하다. 환자의 목숨과 생명을 담보로 환자의 업이 실린 돈을 받고 개인적인 부의 축적으로만 나아간다면 무서운 과(果)를 받는다.
 
별세한 작가 최인호의 <상도>라는 소설에서 거상 임상옥은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을 유언으로 남겼다. 해석하자면 '재물에 있어서는 물처럼 공평해야 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저울처럼 바르고 정직하게 하라'는 뜻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으며, 물은 아래로 흘러 바다가 되는 법이다. 특히 돈의 속성이 그러하지 않은가. 오죽하면 '돈맥경화'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돈은 돌고 돌아야 하며, 고이면 썩게 된다.
 
따라서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환자의 업이 실린 돈으로 번 돈인 만큼 의사들의 적극적인 기부와 나눔이 이어졌으면 한다. 돈은 의료라는 인연의 매개체일 뿐 결과일 수 없다. 환자의 질병이라는 원인과 인연으로 만나 치료라는 결과를 돈이 매개할 뿐이다. 특히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가 공적인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의료비 지급 채무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게 된다. 즉 의료인의 부는 사회에서 부여한 기회를 통하여 얻은 재물이 아닌가.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은 '소의치병 중의치인 대의치국(小醫治病 中醫治人 大醫治國)'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치국'을 넓게 새긴다면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해뉴스 /이현효 활천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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